[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권만 성적표를 받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 기관도 선거가 끝날 때마다 ‘쪽박’ 혹은 ‘대박’ 성적표를 받아든다. 의석 수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여야처럼 여론조사 기관도 얼마나 실제 결과에 근접했는지를 두고 비난과 칭찬이 나뉜다. 지난 20대 총선서 여론조사 기관들은 낙제점을 받았다.
4·15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후보들은 막바지 선거운동에 매진 중이다. 지난 9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되면서 ‘깜깜이 선거’에 돌입했다. 유권자 입장에선 선거가 끝난 이후에야 투표 직전 판세를 알 수 있다.
족집게냐?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는 이기고 있는 후보에게 표가 몰리는 ‘밴드왜건’ 효과, 혹은 지고 있는 후보로 지지가 이어지는 ‘언더독’ 효과를 차단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없앤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선거 막판 국민의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선거 국면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4년 전 20대 총선서 여론조사 기관들은 ‘망신살’이 뻗쳤다. 20대 총선 때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이 157∼175석,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83∼100석, 국민의당이 25∼32석, 정의당이 3∼8석을 차지할 것이라 내다봤다.
새누리당은 대박, 민주당은 쪽박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기간 내내 나왔다. 하지만 오후 6시 투표시간이 끝나고 각 방송사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한 순간 여야의 희비가 엇갈렸다. 방송 카메라에 잡힌 여야 지도부의 표정은 이후 두고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서 회자됐다.
실제 선거 결과는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이었다. 민주당의 1당 등극, 새누리당의 과반 실패, 국민의당의 녹색돌풍 등을 맞힌 여론조사 기관은 거의 없었다.
전체 판세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구서도 오류가 나왔다. 서울 종로·노원병·용산·영등포을 지역도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특히 종로는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여론조사서 민주당 정세균 후보를 줄곧 이기던 지역이다. 오차범위 내 격차도 아니고 10%포인트 내외로 앞서던 차였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정세균 후보가 52.6%를 얻어 오세훈 후보(39.7%)를 크게 이겼다.
전문성 없는 여론조사 기관
전체 판세·지역구 다 틀려
이 같은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전문성 없는 여론조사 기관의 난립이 첫 손에 꼽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대 총선서만 186개 업체가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6대 지방선거(83개)와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중 82.8%에 달하는 154개는 한국조사협회 혹은 한국정치조사협회에 가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업체서 진행한 여론조사는 1873건으로 20대 총선과 관련된 전체 여론조사의 64.4%에 달했다.
6대 지방선거부터 20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기 위해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에 등록한 기관은 213개다. 이 중 126개는 공표용 여론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선거일을 6개월 앞두고는 업체가 96개나 생겼다. 선거특수를 노리고 ‘떴다방’ 식으로 나타난 업체가 100개에 육박했다는 뜻이다.
중앙선관위는 여론조사 업체를 설립할 때 사업자등록 외에 별다른 절차가 없기 때문에 전문성 없는 조사기관이 난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조사비용이 저렴한 점을 이용해 전문 인력이나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업체가 전화기 1대만 놓고 단순 영업을 수행한 후 실사와 분석을 저가 부실 외주업체에 하청, 재하청을 주는 사례가 발견되는 등 업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들은 21대 총선은 20대 총선 때와 사뭇 다를 것이라 보고 있다. 20대 총선서 드러난 여론조사 ‘흑역사’를 지우려는 노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 20대 총선 이후 일부 개정된 공직선거법을 통해 여론조사가 까다로워졌다.
먼저 공직선거법 제108조가 개정됐다. 제108조 12항에 따르면 ‘정당 또는 후보자가 실시한 해당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경우 선거일의 투표 마감 시각까지 공표 또는 보도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전 서면신고 절차도 강화됐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언론이나 정당의 여론조사는 사전 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외의 대상자가 의뢰하는 여론조사는 사전에 목적, 표본의 크기, 조사 지역·일시·방법, 전체 설문 내용 등을 조사 실시 이틀 전까지 여심위에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후보자가 의뢰하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안심번호로 정확도 오를까
코로나19 변수에 물음표
또 가중값 배율이 강화됐다. 이전에는 공표용 여론조사 성·연령·지역별 가중값 배율이 0.5∼2.0 이내로 허용됐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0.7∼1.5로 강화된 기준이 도입됐다. 가중값 0.7은 조사해야 할 인원의 70%는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20대 100명 조사서 기존에는 50명으로 가능했지만, 이젠 70명을 채워야 한다. 당연히 선거 비용도 더 든다.
이뿐만 아니라 후보자들은 예비후보자등록신청개시일인 지난해 12월17일부터 4월15일 선거일까지 4회만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이 횟수를 넘어서면 여론조사 비용은 선거비용에 강제 산입하게 된다. 빠듯한 법정 선거비용 내에서 여론조사를 여러 번 진행하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이번 총선이 20대 총선보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 간의 간극이 작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 안심번호가 있다. 2017년 2월 안심번호가 도입되면서 집전화를 통해 조사했던 기존 방식보다 민심을 더 정확하게 잡아낼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안심번호는 조사 대상자의 실제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지 않는 일회용 가상번호다. 여론조사 기관서 돈을 내고 성·연령·지역별 번호를 통신사에 요청하면 안심번호 형태로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먼저 투표율에 따라 여야 간 유불리가 갈릴 수 있다.
서울경제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 8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4·15총선서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81.7%에 달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어떤 유권자 그룹에 영향을 미칠지 쉽게 가늠할 수는 없는 상태다.
헛다리냐?
여론조사는 실시할 수 있지만 결과를 공표할 수 없는 막판 6일도 변수다. 선거판서 6일은 매우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실제 투표 민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론조사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또 표본을 구성하는 과정서 유선과 무선의 비율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갈릴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결과와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