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허물어진 경계’

메가폰 들고 안방극장으로 ‘고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드라마를 두고 ‘안방극장’이라고들 한다. TV를 보는 각 가정의 안방을 극장으로 비유하는 말인데, 최근 드라마의 퀄리티를 보면 안방극장이 꼭 비유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만큼 세련된 영상미와 몰입도 높은 스토리,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버무려져 있다. 뚜렷해 보였던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오래 전에 희미해졌다. 집에서 자유롭게 보는 드라마 콘텐츠가 영화의 수준으로 높아진 이유와 미래에 대해 짚어봤다.
 

▲ 박찬욱·이경미 감독

과거에는 드라마와 영화에는 보이지 않지만 뚜렷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배우와 드라마 연기자라는 구분이 있을 정도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은 드라마에만,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영화에만 출연하는 풍토가 있었다. 가끔 영화 위주의 작품활동을 했던 배우가 드라마에 나오면 커다란 이슈가 되기도 했다. 

드라마를
영화처럼

배우 장동건과 신하균, 김혜수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감독과 스태프의 경계는 더욱 분명했다. 간혹 드라마 PD 중에 능력을 인정받은 PD가 영화를 연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경계가 허물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약 10년 사이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오고 가며, 자유롭게 작품을 선정해왔다. 최근 두드러진 현상은 영화감독들이다. 특히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영화 감독들이 드라마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 <내 안의 그놈>의 강효진 감독을 비롯해 <공작>의 윤종빈, <터널>의 김성훈 등 걸출한 영화감독 대다수가 10부작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2011년 장항준 감독이 SBS <싸인>을 연출한 예도 있었지만, 이는 특이한 경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는 없었다.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CJ 계열의 채널부터 바람을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나선 감독은 영화 <역모-반란의 시대>의 김홍선 감독이다. tvN <손 더 게스트>가 공포 장르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로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한지승 감독이 OCN <미스트리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김종현 감독이 OCN <프리스트>를 연출했다.

비록 흥행면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존 드라마와 다른 수준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OCN은 더 깊은 영화계와의 협업을 선언한 후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내건다. OCN 관계자는 “OCN 드라마가 영화 같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강점을 부각하기 위해 드라마 시네마틱이라는 테마를 걸었다”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과 협업하는 흐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첫 작품은 <트랩>으로 <분노의 역류>의 박신우 감독이 연출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날선 연출과 밀도 높은 스토리라는 측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번째 드라마 시네마틱 작품인 <사라진 밤> 이창희 감독이 OCN <타인은 지옥이다>를 연출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세 번째 작품은 차태현과 이선빈, 정상훈 등이 출연하는 <번외수사>다. 

달라진 브라운관의 위상
전진하던 스크린 ‘답보’

최근 연상호 감독이 집필하고 김용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방법>은 오컬트 장르임에도 불구, 6%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엄청난 화제성을 갖고 있다. 연기파 배우들과 아역 배우인 정지소를 통해 얻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CJ 계열뿐 아니라 JTBC도 영화감독들을 기용하고 있다. JTBC의 자회사인 JTBC 스튜디오는 배우 하정우와 그의 동생 김영훈, 강명찬 대표를 주축으로 세운 영화제작사 퍼펙트스톰과 <악인전> 등을 제작한 비에이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극한직업>으로 흥행 감독이 된 이병헌 감독은 JTBC <멜로가 체질>을 연출했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이 감독 특유의 말장난은 빛났다는 평가다.

MBC는 영화감독조합(DGK)과 손을 잡고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제작한다. 제목은 <SF8>. 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 감독이 각 러닝타임 40분인 총 8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오리지널’과 ‘감독판’ 2가지 버전으로 제작되는 <SF8>은 MBC와 wavve를 통해 각각 방영된다. SF팬을 위한 오리지널 버전은 오는 8월 MBC서 방송 예정이고, 영화 마니아를 위한 감독판은 방송에 앞서 OTT서비스플랫폼 wavve에 한 달간 독점 선 공개할 예정이다. 
 

▲ (사진 왼쪽부터)연상호·황동혁·이병헌 감독

작품 기획은 물론 연출도 맡은 민규동 감독은 “SF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SF8>은 8인 감독이 만드는 사이언스 픽션 장르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포, 미스터리, 액션,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향연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OCN <번외수사>(강효진 감독)와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과 <킹덤2>(박인제 감독)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렇듯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배경은 드라마 시장이 커진 것에서 기인한다. 드라마 시장은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판권을 팔며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드라마 제작 편수는 한 해 150편에 달한다. 아울러 넷플릭스나 wavve와 같은 OTT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콘텐츠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콘텐츠 자체에 수요가 높아진 것.

콘텐츠 품귀 현상이 크리에이터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영화 감독이 드라마에 진출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됐다. 해외 판권이나 OTT 플랫폼 덕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사이즈가 커졌다. 그런 만큼 연출가나 스태프에 대한 품귀 현상도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으로 눈이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몸집 키운
안방 시장

드라마 시장이 글로벌화 됨과 동시에 국내 드라마의 경쟁상대는 타 방송사가 아닌 해외의 드라마가 됐다. 영화 제작 방식이 필름서 디지털로 바뀌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두 현장의 촬영 장비 및 기법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영화계서 몸담았던 스태프들도 대거 투입하게 됐다.

과거 ‘생방 제작’이라고 불리는 등 몇 달 내내 밤을 새워가면서 만들었던 드라마 환경도 ‘반 사전 제작’ 형태로 바뀌는 등 여러 부문서 드라마와 영화의 현장 환경의 간극이 좁혀졌다. 드라마 촬영 환경의 변화가 영화와 드라마 사이에 인력 교류가 원활해진 배경이다.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현재 드라마와 영화 촬영 현장은 거의 비슷하다. 촬영 방법과 기법, 장비의 구분이 사라졌다”며 “영화에서밖에 표현할 수 없던 기술이 드라마서도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스태프들 사이서도 변화가 생겼다. 드라마 스태프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영화를 넘어섰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화 스태프들의 수익이 더 컸는데, 이제는 그 차이가 불분명해졌다. 드라마만 전문으로 하는 스태프 중에 월에 1000만원가량의 수익을 얻는 경우도 많다”며 “스태프들의 수익만 봐도 드라마의 달라진 위상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야기에 어울리는 플랫폼을 선택하고자 하는 감독들의 개인적인 욕심도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로 진출한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 <터널>에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2시간에 담지 못한 서사가 분명 있다.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놀이터이자 일터가 새롭게 늘었다”고 말했으며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이제 어떤 플랫폼인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7∼8년 전부터 드라마 연출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배우 도경수와 6부작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국서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역시 “원작 내용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고 ‘긴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콘텐츠
품귀 현상

드라마 시장이 일취월장하는 사이 영화 시장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유다. 드라마가 글로벌화 됐음에도, 영화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다. 영화 수익의 대부분이 국내 관객으로만 채워진다. 전 세계서 각광받은 <기생충>이 해외 시장서 큰돈을 거둬들였을 뿐이다. 

대규모 투자 영화에만 집중되는 현상과 함께 작가주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하는 점, 클리셰로 점철된 양산형 영화만 대다수 만들어지는 풍토가 생겨나면서 창작자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면서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는 창작자가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서 창의성을 고수하는 것이 드라마보다 어려워진 현실이 됐다. 성공한 적 없는 장르나 내용의 시나리오가 영화서 선택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오히려 드라마가 더 유연하다. 연출가 입장에선 드라마가 영화보다 나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 (사진 왼쪽부터) 영화 &lt;리틀 드러머 걸&gt; &lt;멜로가 체질&gt; tvN 드라마 &lt;방법&gt;

영화 감독들의 진출은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 일조한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 경우에든 사랑을 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극 전개와 상관없는 ‘러브라인’은 거세된 장르물이 늘어나면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꼭 영화감독 출신의 연출가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포진한 실력파 스태프들 덕에 지상파와 JTBC, CJ 계열의 6채널의 드라마 수준은 이전보다도 훨씬 더 높아졌다. 

신파가 강하게 섞였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엔딩이 더러 있었으나 이젠 그마저도 보완된 수준의 작품들이 대거 보인다. tvN <호텔 델루나> OCN <왓쳐> <구해줘2> <타인은 지옥이다>, KBS2 <동백꽃 필 무렵>  SBS <스토브리그> <낭만닥터 김사부> JTBC <검사내전> 등이 호평을 받았다. 

특히 <타인은 지옥이다>는 걸출한 수작으로 꼽힌다. “드라마와 영화의 강점을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연출자로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1시간짜리 영화 10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 이창희 감독의 연출력에 극찬이 쏟아졌다.

웹툰이 갖고있는 고유한 주제의식과 정서를 완벽하게 묘사한 것은 물론 원작과 다른 충격적이고 끔찍한 엔딩까지, ‘진일보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동명 웹툰을 드라마화시킨 만큼 10∼30대 젊은 원작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고, OCN만의 스릴러 감성이 취향인 20∼30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한자 이름과 사진, 소지품으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가진 10대 소녀와 사회부 기자가 대기업의 숨은 악과 맞선다는 내용의 <방법>도 높아진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오컬트 장르임에도 워낙 탄탄한 개연성과 빠른 이야기의 전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력 등으로 신선함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된다. 

플랫폼보다 중요한 서사
OTT의 발전, 다양성 확대

연상호 감독은 시청률 3%만 넘겨도 시즌2 제작을 약속했는데, 10회가 6%를 넘겼다. 오컬트 장르로서는 눈에 띄는 결과다. 

<방법>은 영화 및 드라마 시즌 2로도 제작된다. 영화는 드라마 시즌 1을 잇는 내용이 담기며, 시즌 2는 영화의 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드라마→영화→드라마 순으로 매체를 바꿔가며 <방법>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계획이다. 영화 메가폰은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가 잡는다. 작품 내외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모색되고 있다. 

OCN 드라마 시네마틱의 첫 번째 주자였던 <트랩>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에 리메이크 제안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가 로맨스물이 아닌 장르물로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드물다. 시청률을 공개하지 않는 넷플릭스서 나온 <킹덤>은 국내만큼 해외서도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서 ‘킹덤’의 연관검색어는 ‘킹덤 모자’ ‘킹덤 레딧(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있는 것을 봐서 킹덤에 대한 반응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희미해진 가운데 드라마 시장은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 배경은 플랫폼 OTT의 발전 때문이다. 대표적인 OTT기업이 넷플릭스는 2019년 1분기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2% 증가한 45억 달러(한화 약 5조3752억5000만원)다.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꾸준히 한국 드라마와 손을 잡고 있다. JTBC <스카이 캐슬> <비밀의 숲>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이 그 예다. 신원호 PD의 신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OTT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드라마 성공 문법 역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시청자 조사기관에 의존했던 시청률 집계 방식이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앞서 각 방송사는 화제성으로 현재 인기의 척도를 알아본다. 비록 시청률이 낮다 하더라도 각종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며,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 시청률이 인기의 척도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등의 발전으로 시청률과 무관하게 실제 화제성에 기인한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예견이 나온다.

시청률
무용지물

한 OTT 관계자는 “OTT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시청률이 아니라 취향으로 선택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며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생길수록, 시청률은 분산되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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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이 지뢰밭’ 9월 정기국회 관전포인트

‘곳곳이 지뢰밭’ 9월 정기국회 관전포인트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번 9월 정기국회는 여야 모두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에는 국정 동력을 재충전하고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무대인 반면, 국민의힘에는 정권의 허점을 공략해 국정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정국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는 결정적 기회다. 양당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만큼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날 선 대립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 여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제22대 국회의 후반기 첫 정기국회가 초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양당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시작으로 대정부질문과 인사청문회가 잇따라 예정되면서 대치 전선이 급격히 확대되는 모양새다. 이번 정기국회는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어느 쪽이 쥐게 될 것인가를 가름할 분수령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바닥 친 민심 정기국회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역대 최하를 기록한 시점에서 시작됐다. 지난 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510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31일부터 9월4일까지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8주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 또한 동반 하락해 국민의힘과의 격차가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37.4% ▲부정 59.5%인 것으로 집계됐다.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5%p 하락한 반면 부정 평가는 전 주 대비 0.8%p 상승했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7월2주 차 정기 여론조사에서 48.9%를 기록한 이래 8주 연속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 RDD 표집틀 기반 ARS 자동응답조사이며 응답률은 4.2%이다.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2.0%p로 자세한 조사 내용과 개요에 대해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을 조건으로 내걸며 개헌으로 정기국회의 포문을 열었다. 여당이 신중한 개헌을 앞세워 국민 의견 통합을 시도하려 했으나,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정국은 급격히 냉각됐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현행 헌법과 법률의 절차적 정신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와 국민 요구를 반영해 현실 가능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5·18, 부마항쟁 등의 헌법 전문 수록은 개헌의 출발이고, 권력구조 개편은 국민이 원하는 선까지 가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울러 김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전두환·노태우를 단죄하며 하나회를 척결하고, 5·18을 문민정부의 정체성으로 삼은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은 국민의힘도 결국은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역사적 성찰을 마치고 함께 개헌의 길에 나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당의 개헌 카드는 지난 7월 조정식 국회의장의 “현직 대통령 연임의 개헌 문제는 결국 국민 선택의 문제”라는 발언을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열어둔 듯한 조 의장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킨 만큼 민주당이 ‘국민 공감대’를 중심에 두고 개헌을 추진하는 등 진화 작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필 지금? 또 다시 나온 ‘개헌 카드’ “반대·보완수사권 부활” 맞불 놓는 야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발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다음 날인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번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 명백하게 위헌을 저지르고, 개헌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과 절대로 개헌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고 봤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중임제 개헌도 언급했다. 그런데 ‘연임 안 한다’ ‘재판받겠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며 “혹시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하고, 이를 통해 재판을 미루겠다는 의도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금 정부와 여당의 국정과제 1호는 대통령의 자기 죄 지우기”라며 “개헌마저 자기 죄 지우기의 도구로 쓰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현재 이 대통령의 장기집권은 불가능하다. 헌법 제70조 등에 따르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연임이나 중임이 불가하다.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더라도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는 규정(제128조)이 있기 때문이다. 즉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 헌법을 개정해 자신의 임기를 연장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개헌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히 민주당의 장기 집권 시도 때문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헌법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배출되는 것을 국민의힘이 지지할 리 없다”며 “국민의힘을 설득해야 개헌 논의가 진전되는데 지금처럼 여야 협치가 꽉 막힌 상황에서는 오히려 개헌 카드가 반발을 일으켰다”고 우려했다. 늘어지는 국민의힘 현재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 등 정부·여당발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더 이상의 약점 노출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 점을 파고들어 정부의 동력에 제동을 걸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정기국회를 무대로 이정부의 실책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여당 압박에 나섰다. 정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겠다”며 야당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먼저 6·3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 부족에서 비롯한 참정권 침해 사태를 정조준했다. 정 원내대표는 “방만하고 오만한 선거관리위원회를 제대로 감시하겠다”며 “관리도 못하는 사전선거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의 주도로 이뤄진 검찰개혁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전당대회 득표를 위한 탐욕으로 지옥문을 기어이 열고야 말았다”며 “사법 체계의 왜곡은 수사 부실로 이어지고 부실한 수사는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무너진 치안부터 바로 세우겠다”며 “보완수사권을 부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주요 원인인 부동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은 부동산이 아니라 국민을 잡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집권 후 정책은 정반대다. ‘공약 사기’”라며 전세에 대해서도 “우리가 누렸던 제도의 혜택을 왜 청년세대는 누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주거 사다리를 지키겠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부터 폐지해 주택 공급부터 확 늘리겠다. 1가구 1주택자는 세금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청년·신혼부부의 생애최초주택은 취득세를 감면하고 초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용 난타전 힘 빠지는 민주당 ‘롤러코스피’ 원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서는 “투자 손실은 54조원에서 56조원 이상까지도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까지 해야 한다. 상품 도입에 권력의 압박이 있었는지, 그 압박이 김용범 전 정책실장의 독단인지 윗선이 따로 있는지, 왜 지방선거 직전에 출시됐는지 모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이어진 대정부질문에서도 여야는 격돌했다. 국회 최대 쟁점인 이정부의 ‘2기 개각’ 인사 논란과 주요 정책을 놓고 공방을 벌인 것. 여야 모두 중진급 의원을 배치하면서 첫날부터 팽팽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졌다. 지난 9일 진행된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내각 인사 참사” 대 “수사자료 상납 게이트”가 충돌하면서 정기국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국민의힘은 나경원 의원은 이정부를 향해 “암장과 인멸의 1년, 파탄과 박멸의 1년”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성숙 국무총리를 향해 “준연동형 비례제로 1년에 11억원씩이나 받고 꼼수로 의원이 되는 것이 정당한가.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 건 총리가 할 일”이라고 질타했다. 용혜인 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의 비례대표 연임 및 겸직 논란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한 총리가 “정부에서 고쳐야 하는 제도인가”라고 답변하면서 장내 소란이 일기도 했다. 아울러 나 의원은 “(2차 개각에서) 주요 인사 내각이 전과(를 전부 합치면) 총 34범”이라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참사”라고 꼬집기도 했다. 검증의 날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도 향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신약 청탁 의혹’ 폭로전에 나섰지만 오히려 여당은 제보 출처를 문제 삼으면서 방어에 나섰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검찰이 내부 수사 자료를 특정 정치인에게 갖다 바치며 검찰 출신 국회의원의 정치 생명을 연장해주는 ‘정치 스폰서’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한 의원이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진사퇴’ 용혜인 ‘사면초가’ 김승원 청문회가 빨아들인 정기국회…민생은 뒷전 전 의원은 이진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을 향해 “과거 한 의원이 장관 후보자 시절 개인정보가 유출돼 국회 사무처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즉시 이뤄졌었다”며 “이 사건도 똑같이 신속히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사자인 김 후보는 폭로된 녹취록이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순서를 바꾸는 등 악의적으로 왜곡·조작됐다고 주장했다. 두 후보를 둘러싼 관심이 뜨거운 만큼 대정부질문에 이어 진행될 인사청문회서 여야의 공방 수위가 최고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14일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15일에는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잇따라 열린다. 16일에는 ▲강신철 국방부 장관 후보자 ▲홍지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예정돼있다. 뜨거운 감자였던 용 전 후보는 결국 자진사퇴를 택했다. 지난 13일 용 전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정부의 성평등부 장관 후보자로서 모두를 위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결심과 함께 장관 후보직을 오늘로써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성평등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지 14일 만이다. 이날 용 전 후보는 “민주당으로부터 후보자와 기본소득당이 처한 상황을 존중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을 두고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후보자가 결단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무위원은 국회와 정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여당도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그 직을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앞서 용 전 후보는 지난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에 여권에서조차 “국민과 싸우는 듯한 모습”이라는 우려가 나왔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용 전 후보 역시 자신의 반박 기자회견에 대해 “국회의원이 아닌 '국무위원 후보자'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전해주셨다. 제 부족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닫힌 귀? ‘레드팀’ 어디? 그러자 야당은 김 후보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그에 대한 지명 철회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청와대는 “소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정부 2기 내각과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나 김민석 대표는 ‘왜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봤다. 이 관계자는 “그들에게 있어 이번 인선은 틀린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 여론과 사태의 심각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민 여론은 두 후보자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지 않나. 중요한 건 국민 의견에 떠밀려 가는 게 아니라 의견을 수렴해 전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김 대표가 민주당의 레드팀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임 논란’ 진화 나선 이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을 둘러싼 연임 논란에 직접 입을 열었다. 프랑스에 국빈 방문 중인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파리 현지 동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있다”며 개헌 연임 의혹에 대한 우회적인 입장을 전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연임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미 헌법적인 질서 속에선 (대통령) 임기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항간에서 이야기하는 연임 자체는 아예 불가능한 사안이고 검토될 수도 없는 사안이라는 말씀을 한 걸로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이 ‘연임 안 한다’, 이 말은 결국 안 하고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