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리, 이곳에서의 일정이 어찌 되시는지요.”
“이곳에서 일정이라.”
“아까 말씀하시기를 이곳에 그다지 오래 머물러 계시지 못할 것이라 하신 듯해서요.”
허균이 매창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매창도 회피하지 않고 얼굴을 들어 허균의 시선과 마주했다.
첫날밤의 경험
“아무래도 내일 중으로 고부로 넘어가야 할 듯하오. 아니, 이미 그곳에 가 있어야 할 일인데 내가 미루고 있는 중이지.”
“이 일로 곤경에 처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허균이 웃었다.
“매창, ‘천하의’라고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물론 그를 알고 있지요. 그런데 제 경우도 그에 해당 될 수 있는지요.”
“글쎄, 여하튼 우리 그 일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시게.” “시간이 아깝습니다. 한 잔 드시지요.”
말과 동시에 매창이 안주를 집어 들었다.
“허 허, 자신은 술을 마다하고 나에게는 술을 권하다니.”
“나으리, 술도 나리의 소유물인 듯하옵니다.”
“소유물이라.”
“혹자는 술에 지배당하지요. 평소에는 전혀 시도하지도 못하는 일들을 술기운을 빌려서 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리께서는 술을 마시는 일도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씀이옵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술을 마심으로 인해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 이 말로 해석해도 된다 이거로군.”
말을 마친 균이 잔을 들어 한 번에 비워내자 매창이 안주를 들고 있는 손을 허균의 입을 향해 움직였다.
그 손을 허균이 가만히 잡았다.
이제는 매창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매창, 고맙구려.”
매창이 조용히 웃고 있었다.
허봉이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균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유배 생활을 끝내고 영의정 노수신에 의해 다시 조정에 기용되려던 형이 그를 거절하고 유랑의 길을 선택했다.
그 무렵 허균은 혼인했다.
안동 김 씨 집안의 규수로 수더분하기 그지없는 여자였다.
누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보다 못하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그 여인을, 자신의 부인을 통해서 누나에 대한 고통을 치유하고자 했으나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형의 일도 그러려니와 초시에 합격한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다.
“나리!”
매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균의 말을 잘랐다.
“왜 그러오.”
“갑자기…….”
“주저하지 말고 말해보시오.”
허균의 시선이 의아하다는 듯이 변해갔다.
“나리의 부인되시는 분과의 첫…….”
“지금 첫날밤 경험을 묻는 것이오.”
“나리의 경우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살며시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균이 가만히 미소 지었다.
“아마도 지체 높은 양반집 도련님 같으신데 그러고 서 계시지 마시고 옷을 벗으시지요.”
“술도 나리의 소유물” 하나의 놀이일 뿐
허균의 첫날밤 이야기…사전 답사 실패
자신의 이름을 미연이라고 밝힌 퇴기에 가까운 여인이 다가서고 있었다.
몸을 가리고 있는 얇은 천 안으로 초롱불에 비친 그녀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눈은 그녀의 몸매에 고정되고 쉬지 않고 가슴이 뛰고 있었다.
“여자가 처음인 모양이지요.”
허균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여인을 향해 헛기침을 해댔다.
그렇다고 허균 자신이 그곳을 찾은 이유, 혼례에 앞서 여체에 대한 실습을 하기 위해 그곳에 왔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밤이고 낮이고 글공부 하다 보니 이런 곳에 올 겨를이 없었…….”
“그래요.”
허균의 전신을 훑던 여인이 한 뼘의 사이를 두고 마주섰다.
“호호, 오늘 제가 횡재하려는가 봅니다.”
“횡재라니요.”
“숫총각의 딱지를 떼어주는 횡재 말이지요.”
“어 허, 누가 숫총각이라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인의 손이 허균의 옷고름을 잡았다.
“이렇게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숫총각이 아니라고는 못할 테지요.”
여인의 이죽거리던 웃음이 기쁨의 웃음으로 변해갔다.
밖에서 자꾸 소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자신이 어떻게 첫날밤을 보낼지에 대해 술렁이고 있을 터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허균이 초롱불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많은 관객들을 위해 그냥 초롱불을 밝히고 일을 벌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신부를 바라보았다.
두터운 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몸을 가리고 있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 한 송이가 바람에 떨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가느다랗게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네.’
혼자만의 소리를 목으로 삼킨 허균이 초롱불을 껐다.
초롱불을 끄자마자 신부에게 다가섰다. 당당하게 손을 뻗었다.
신부가 떨고 있는 소리와 방으로 스며드는 달빛이 어지러웠다.
“도련님이 옷을 벗으시지 않으면 제 손으로 벗겨 드려야겠지요.”
다가온 여인이 급하게 고름을 잡아당겼다.
순간 저고리의 양쪽이 갈라지면서 맨살의 가슴이 드러났다.
“어 허, 내가 벗을 것이거늘.”
말뿐이었다. 이상하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여인의 손길이 허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꾸만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손이 배꼽에 이르자 한쪽으로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린 여인이 허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허.”
이상하게 몸이 자꾸 전율을 일으키고 있었다. 얼굴은 괜스레 달아오르고 호흡은 가빠지고 있었다.
허균이 손을 뻗어 신부의 얼굴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그 순간까지 마치 죽어있었다는 듯이 조용하던 어린 신부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거칠어져 있었던 호흡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모른 체 하고 손을 뒤로해서 신부를 안았다.
허균의 얼굴 위로 신부가 거친 숨을 뜨겁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 열기에 잠시 뒤로 물러난 허균이 가슴 부근으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신부가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살짝 옆으로 꼬았다.
허균은 그 동작을 빨리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손을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순간 몸을 떨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자신의 몸 위에서 놀던 여인을 밀쳐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망했다.
그저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 하려고 이곳에 왔는지 후회가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순간이 지나자 자신의 아래에 일렬로 몸을 마주하고 있는 신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애틋함이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고 있었다.
정성을 다해 신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다 손을 신부의 등으로 집어넣고 다시 한 번 힘차게 껴안았다.
나의 신부, 평생 이렇게 함께 해야 할 허균의 여인이라는 뿌듯함이 솟아나고 있었다.
재촉하는 신호
“그랬군요.”
허균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이 매창을 쳐다보았다.
“역시 기생보다는 부인이지요.”
허균이 대답 대신 매창에게 가벼이 미소를 보내고는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잠시 사이를 두다 말을 이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