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무리수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일진그룹이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계열사 노조는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일감 몰아주기는 계속되고 있다.
 

▲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

2020년 일진그룹 경영방침은 ‘양적 확장’이다.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2일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국내 산업계는 격변의 한 해를 보냈다”며 “일본 무역보복, 미중 무역분쟁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련 속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고자 지난 2년간 ‘생각과 행동을 바꾸자’며 쉼 없이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경자년
양적 확장

허 회장은 “올해 국내외 경영환경과 경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며 국내 경제연구소 기관장들이 사자성어 ‘오리무중’을 선택한 점을 언급했다. 허 회장은 ‘매출 증대’ ‘중장기 먹거리 창출’ ‘경쟁을 통한 개인과 회사 발전 도모’ ‘새로운 일진문화’ 등을 주문했다.

그룹은 새해부터 소란스러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충북 지역 3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충북도청 브리핑룸서 “일진다이아몬드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철회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룹 계열사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 노동자들은 파업 200일을 넘겼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는 지난해 6월26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발단이었다.


노조측 주장에 따르면 사측은 2015년까지 기본급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정기상여금 600%로 부족한 임금을 맞췄다. 문제는 2016년과 2018년이었다.

회사는 상여금 600% 중 400%를 기본급과 고정수당으로 변경했다. 최저임금 인상분은 상쇄됐다. 임금은 2014년부터 5년째 동결상태였다. 임금 수준은 크게 하락했다. 신입직원과 10년차 직원 임금 차이는 미미했다.

사측과 노조 측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8억23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주노총 등 단체는 “청구 내용은 본사 경비인력 추가, 보안시설물 설치, 로비 임대료 및 관리비, 입주 업체 피해, 조형물 훼손 등”이라며 “손해를 본 데 대한 배상 요구가 아니라 조합원들을 겁박하기 위한 소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은 열린 마음으로 성실한 교섭을 통해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진다이아몬드, 올해도 파업 계속
장·차남 그룹 지배 승계 과정 ‘찝찝’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률은 최근 5년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10% 이상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일진다이아몬드 영업이익(2014∼2018년)은 ▲10.54% ▲16.12% ▲5.51% ▲15.08% ▲13.20% 등이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영업이익은 7.42%다.

그룹은 재계 50위권 중견기업으로 매출액만 조 단위다. 그룹 내에는 모두 40여개 계열사가 포진해있다. 일진은 2세 체제로 전환됐다. 창업주 허 회장 슬하에는 2남2녀가 있다. 이 중 장남과 차남이 큰 줄기를 쥐고 있다.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은 ‘일진홀딩스’ 최대주주다. 29.1% 지분이 있다. 사실 허 부회장은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 중이다. 일진홀딩스 2대주주는 ‘일진파트너스’다. 24.6% 지분이 있다. 허 부회장은 이곳 최대주주다. 보유 지분만 100%다. 결국 허 부회장이 일진홀딩스서 차지하는 지분은 53.7%로 분석할 수 있다.
 

▲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2세 승계 창구’로 알려졌다. 허 부회장이 절반 넘는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 때문이다.

일진파트너스는 그룹 내부거래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이후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했다. 허 부회장은 간접적으로 일진홀딩스 지분을 쥐게 됐다. 결국 지배구조는 ‘허 부회장→일진파트너스→일진홀딩스→이하 계열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일진파트너스는 지난 1996년 설립됐다. 첫 시작은 금융 회사였다. 당시 주요 주주는 허 회장과 그룹 계열사였다. 이후 사명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주요 사업도 금융업에서 운송업으로 변경됐다.

본격적인 지분 변동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허 부회장은 그 해 일진파트너스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허 부회장 지분은 69.1%였다. 나머지 30.9%는 일진다이아몬드에게 있었다. 다음해인 2007년 허 부회장은 일진파트너스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하게 됐다.

노조 갈등
내부거래

비슷한 시기 매출도 상승했다. 2006년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1억8000만원이었다. 허 부회장이 모든 지분을 소유했던 2007년에는 6억8000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8억원 정도로 비슷했다.

문제는 2010년부터였다. 일진파트너스 매출은 무려 33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2011년에는 90억원으로, 2012년에는 135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눈길이 가는 건 매출처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일진파트너스는 그룹서 매출을 보장 받았다. 3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100%였다.

일진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정한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아니다. 결국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진파트너스가 일진홀딩스 주식을 매입한 때는 2013년이다. 일진파트너스는 허 회장 지분 전량(15.27%)을 매입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지분 24.64%까지 소유하게 됐다.

이후 매출은 지난날과 비교했을 때 미미한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12억원, 18억원, 13억원, 15억원, 19억원 등이었다. 내부거래 비중 역시 78.73%, 74.27%, 65.80%, 78.48%, 43.61% 등으로 감소했다.

일진파트너스는 이후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는 외부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다. 일각에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유한회사로 바뀌었다고 해석한다.
 


잠잠하던 일진파트너스는 일진홀딩스 계열사를 품에 안았다. 일진홀딩스 자회사 ‘아트테크’는 지난해 4월 일진파트너스에 편입됐다. 아트테크는 부동산개발 및 매매임대 분양컨설팅을 영위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일진홀딩스를 정점으로 이하 계열사에 지배력을 갖게 됐다. 계열사는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알피니언 ▲일진디앤코 ▲전주방송 ▲마그마툴 ▲일진복합소재 ▲매직드림 등으로 압축된다.

장·차남
그룹 지배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간접 지배한다. 허 대표는 일진머티리얼즈 최대주주(53.30%)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유니스코 ▲일진건설 ▲아이알엠 ▲삼영지주 ▲오라진앤코 등을 지배하고 있다. 결국 일진그룹은 일진홀딩스와 일진머티리얼즈를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셈이다.

허 회장 장녀와 차녀도 계열사 지분이 있다. 장녀는 허세경 일진반도체 대표다. 허 대표는 조명장치 제조·판매 기업 ‘루미리치’ 최대주주(25.54%)이기도 하다. 차녀 허승은씨는 일진자동차 최대주주(55.56%)다. 나머지는 남편 지분이다. 사실상 일진자동차는 허씨 부부회사라고 볼 수 있다.

일진그룹은 최근까지 일감 몰아주기 논란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일진파트너스 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사서 내부거래가 이어진다.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일진반도체 등이 대표적이다.


일진다이아몬드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다. 50.07% 지분이 있다. 다시 말해 허 부회장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계열사 중 하나다. 최근 5년간 일진다이아몬드 별도 기준 매출액은 2014년 802억원, 2015년 869억원, 2016년 856억원, 2017년 925억원, 2018년 985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 중 상당한 매출이 그룹 내부서 발생했다. 같은 기간 일진다이아몬드 내부거래액과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458억원(57.12%), 2015년 498억원(57.28%), 2016년 545억원(63.68%), 2017년 630억원(68.13%), 2018년 705억원(71.66%) 등이다. 매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일진다이아몬드는 지난 3분기 54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내부거래에서 비롯된 매출은 408억원이다. 비중은 75.46%에 달한다. 직전년도 3분기 일진다이아몬드 매출은 750억원이었다. 이 중 내부거래 매출은 539억원. 비중은 71.85%였다. 내부거래는 소폭 상승한 셈이다.

그룹 일감 몰아주기 여전
공정위 내부거래 제재 강화

일진디앤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는 부동산업과 건설업을 영위한다. 최대주주는 일진홀딩스(100%)다. 일진디앤코 역시 허 부회장 지배력을 받고 있다. 최근 5년간 일진디앤코 매출액은 2014년 67억원, 2015년 68억원, 2016년 70억원, 2017년 75억원, 2018년 73억원 등이다.

매년 매출이 상승할 때마다 내부거래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진디앤코 내부거래 매출과 비중은 2014년 26억원(38.46%), 2015년 27억원(40.05%), 2016년 30억원(42.82%), 2017년 31억원(41.23%), 2018년 31억원(42.23%) 등이다.

일진반도체는 허 회장 장녀 회사다. 최근 5년간 일진반도체 매출액은 2014년 10억원, 2015년 11억원, 2016년 5억원, 2017년 7억원, 2018년 6억원 등이다. 2014년과 2015년 매출 100%는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이후 2016년 3억원(62.66%), 2017년 3억원(47.92%) 등으로 감소했다. 2018년에는 8500만원(12.75%)까지 줄었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를 중견기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자산 5조원 미만 중견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은 부당지원금지 규제를 적용받는다. 다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는 받지 않는다.

조 위원장은 그달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서 열린 CEO 조찬 간담회서 ‘공정한 시장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공정위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5조원 미만 기업집단서 사익편취 내지는 일감 몰아주기, 부당한 내부지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며 “5조원 미만 기업집단에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내부지원이 있는 경우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공정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 해 3월 업무계획 발표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거래에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을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익편취와 부당 내부거래를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기조
계속될 듯

실제로 공정위는 중견그룹을 대상으로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나섰다.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아모레퍼시픽과 SPC에 검찰 기소장와 유사한 성격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아모레퍼시픽과 SPC 등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정상 가격보다 비싼 비용을 치른 혐의다.

<일요시사>는 일진그룹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홍보팀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진그룹 재계 50위권인데 기부엔 ‘짠돌이’

일진그룹은 지주사인 일진홀딩스와 전기차 2차전지 소재를 주력으로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해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전기, 일진다이아, 일진복합소재 등 국내외 4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재계순위 50위권의 중견그룹이다.

연매출은 3조원대인데 기부는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그룹 지주사인 일진홀딩스는 2018년 1억20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액(72억원) 대비 1.67%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2017년엔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당시 일진홀딩스는 매출 48억원을 올렸다.

일진전기는 2018년 매출(7341억원)의 0.006%인 4040만원만 기부했다.

2017년에도 매출 대비 기부율은 0.006%(매출 7622억원-기부금 4480만원)에 그쳤다.

일진다이아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매출 985억원을 낸 2018년 기부금은 고작 180만원(0.002%)뿐이다.

2017년에도 180만원(0.002%)을 기부했는데, 매출은 926억원이나 됐다.

나머지 3사의 경우 기부 내역이 없다.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디스플레이, 일진복합소재 모두 2018년 기부금은 ‘0원’이었다.

이들 계열사는 같은 기간 각각 3189억원, 2064억원, 286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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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