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거문고 소리의 여운이 사라지자 매창이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는 허균의 얼굴을 주시했다.
별로 편안해보이지 않았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오, 언짢은 일은 아니고. 그 시를 생각해보고 있었던 참이오.”
“아 제가 읊은 시 말씀이로군요.”
떠나달라고?
“그래요. 그 시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꺼림칙해서 말이오.”
매창이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앙증맞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리께서는 지금 제가 읊은 시가 나리를 상대로 읊은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계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어허, 누가 그렇다고 했소. 다만 그 시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해서 그것들을 찾아 생각에 잠겼던 것이라오.”
“나리, 예전에 지었던 시를 읊어본 것이옵니다.”
“예전에.”
“언젠가 이곳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저의 소문을 귀동냥으로 들었던 모양이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시 재주를 뽐내고 급기야 저에게 치근덕거리기에 이 시를 지어 바로 그 자리에서 읊었었지요.”
“그래서.”
“그 나그네가 이 시를 듣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으로 나가고 말았지요.”
그 소리에 허균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나보고 자리를 떠나달라 이 말이로군.”
“네!”
매창이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나리, 그 시가 나리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소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일 없소이다!”
허균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말소리 또한 올라갔다. 매창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간절한 시선으로 허균을 바라보았다.
“나리, 어찌 소녀가 나리께!”
“그러면 나보고 나가란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나리, 소녀가 어찌……천하의 나리를…….”
허균이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매창이, 그러면 나보고 이 자리에서 소피를 보라는 말이오.”
“네!”
능글맞은 웃음이 허균의 얼굴 위에 번지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서 소피를 해결해야 한다 이 말인데.”
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허균의 손이 바지춤으로 향했다.
진짜로 바지를 벗어 내릴 태세였다.
“나리 너무하시옵니다. 소녀를…….”
마치 매창의 눈에서 눈물이 어리는 듯했다.
“이보시게, 매창. 내 조금 놀린 것 가지고 너무 상심해하지 마시게. 그나저나 급한데 이대로 있으란 말이오.”
순간 매창이 정색했다.
매창을 놀리려다 오히려 당한 허균
어느새 친해진 둘, 자연스러운 행동
“밖에 별이 있느냐?”
이번에는 허균의 얼굴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그 아이는 왜 찾소.”
“이곳에서 소피를 해결 하겠다 하시니 당연히 요강을 준비해야 할 듯해서요.”
“무엇이라!”
말을 마친 허균이 호탕하게 웃어 재꼈다.
“역시 매창이로고. 매창이야.”
허균의 웃음소리가 사라지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씨, 찾으셨는지요.”
“나리께서 측간을 가신다고 하시니 뫼시어라.”
허균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그럼 내 급히 다녀오리다.”
웃으며 나서는 허균에 뒤에서 매창이 밉지 않게 눈을 흘기고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구름 속에서 나타난 달이 허균을 맞이했다.
그 달을 바라보며 시선을 정면으로 주었다.
별이 황당하다는 듯이 몸을 비비꼬며 균을 맞이했다.
“어서 앞장 서거라.”
“정말로 측간을 가신다고요. 그리고 제가 앞장서라고요.”
별이 매창의 말 또 허균의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균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어서 앞장서도록 해라. 그러지 않으면 여기서 그냥 해결해버릴란다.”
방금 전처럼 균의 손이 다시 허리춤으로 이동했다.
금방이라도 바지를 벗어 내릴 태세를 취했다.
별이 급히 고개를 돌리고 앞서 나갔다.
허균의 손이 허리에서 자신의 가운데로 이동했다. 뻐근했다.
이미 한번쯤은 일을 보아야 했건만 너무나 참았던 데에 다른 생리적 현상이었다.
그 상태에서 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별의 뒤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달을 바라보았다.
두 물체가 마치 하나인 듯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이나 앞서 걷고 있는 별이 마치 하나인 듯 교차되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별이 슬그머니 뒤를 바라보았다.
허균이 이상한 자세로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하고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급히 걸음에 속도를 더했다.
“어허, 무엇이 급하다고 그리 서두르노.”
허균의 괴이한 모습에 별의 얼굴색이 달빛 아래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 험.”
허균이 헛기침 한 번 하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매창이 허균을 처음 대하듯 다소곳하게 맞이했다.
“이렇게 시원한 것을 두고…….”
매창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나리, 이곳이 나리의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히 쉬도록 하시옵소서. 조금도 불편해 할 일이 없사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고. 그러면 내가 매창을 나의 부인 대하듯이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이오.”
허균의 엉뚱한 소리에 매창이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균을 바라보았다.
“나리, 너무 하시옵니다.”
부인 대하듯
“너무 하다니요. 내 집이면 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거늘. 그러니 매창도 나의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고 거절할 소녀도 아니옵니다.”
매창이 더 이상 수세에 몰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허균이 자신의 무안함, 중간에 측간을 다녀온 사실을 그리 풀어버리려는 듯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매창의 답변에 허균이 큰 소리로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