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스갯소리를 먼저 하고 넘어가자. 요즘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하다 보면 문재인 대통령 하야 서명운동에 동참을 요구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하루는 그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 다가와 서명을 요구했다. 필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 이유를 묻자 마치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라도 된 듯 거침없이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미에 당당하게 재차 서명을 요구했다.
필자가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응답했다. “당신이 설명한 그런 이유 때문에 서명할 수 없다”고.
상대방은 망치로 뒤통수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그 사람에게 필자는 시사칼럼을 연재하는 소설가인데 끊임없이 글거리를 제공해주는, 내게는 고마운 대통령인데 내가 어떻게 하야 운동에 서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그 사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섰다.
이에 부연해 사족을 달아보자. 어느 정도 인간사에 욕심을 버려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필자에게는 요즈음 작은 고민이 일어나고는 한다. 필자가 원하는 공명정대한 세상이 이뤄진다면 과연 그 사회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만일 그런 사회가 이뤄진다면 상당히 무미건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도 그 사회가 과연 인간에게 바람직한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각설하고, 최근 문 대통령이 청와대서 부패방지 관련 기관장 및 관계 장관 등과 ‘공정사회를 향한 반(反)부패 정책협의회’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서 “반부패 개혁과 공정사회는 우리 정부의 사명”이라며 “적폐 청산과 권력기관 개혁서 시작해 생활 적폐에 이르기까지 반부패정책의 범위를 넓혀왔다”고 했다.
또 “권력기관 개혁은 이제 마지막 관문인 법제화 단계가 남았다”며 “공수처 신설 등 입법이 완료되면 다시는 국정 농단과 같은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고 국민이 주인인 정의로운 나라로 한발 더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적폐 청산과 권력기관을 개혁한 연후에 생활 적폐를 청산하고, 권력기관 개혁은 마무리 단계인데 공수처 신설로 정점을 찍겠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황당하다. 물론 권력기관, 즉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다. 문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공수처가 존재했었다면 국정 농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고 국민이 주인인 사회가 됐다는 의미로 비쳐진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공수처란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발생했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이 정도면 나가도 한참 나간, 나아가 공수처가 무엇이기에 이런 해괴한 발언을 토해냈을까하는 의문까지 일어난다.
공수처와 관련해 필자는 수차례에 걸쳐 명확하게 언급했었다. 공수처는 검찰개혁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꼼수에 불과하고 진정한 의미의 검찰 개혁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고 말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이라는 구실하에 권력 유지에 위해요소로 작용할지도 모른 고위공직자들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공수처를 신설해 정권 유지의 홍위병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