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컷’ 민주당 공천살생부 실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0.14 10:31:35
  • 호수 1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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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퇴 중진들 초선 안고 논개처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긴장감마저 감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천제도를 발표한 가운데 소속 현역 국회의원들은 하위 박스권에 속하지 않기 위해 분투 중이다. 기준은 하위 20%다. 여기에 속하면 20% 감점이라는 페널티를 받는다. 사실상 ‘살생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 당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살생부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 지난 5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서 21대 총선 공천제도 발표 기자간담회 갖는 윤호중 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는 현재 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 들어간 상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되는 최종평가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의 활동이 평가 대상이다. 평가위는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 각 의원실 보좌진을 불러 최종평가 제도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된 최종평가의 점수산정 분야는 크게 4가지다. ▲의정활동(34%) ▲기여활동(26%) ▲공약 이행 활동(10%) ▲지역활동(30%) 등이 그것이다.

어떻게든
피해야…

세부적으로 보면 명료한 항목도 있지만, 반대로 모호한 항목도 존재한다. 가장 반영률이 큰 ‘의정활동’은 상대적으로 명료한 편이다. 각 의원의 입법 실적과 각종 위원회서의 활동 등이 평가 대상이다. 

입법 실적에는 대표발의, 본회의 처리, 당론 채택 법안 발의 실적 등이 포함된다. 또 의원총회와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률도 반영된다. 그 외에도 대정부질문이나 긴급 현안질의, 5분 자유발언 등 본회의 질문자, 국회 상임위원장이나 간사 등 국회직을 수행한 의원들에게 가점이 주어질 예정이다.

이는 국회의원 본연의 활동을 평가하는 성격이 짙다. 이를 위해 평가위는 단순히 자구 수정에 그친 법안발의를 평가서 제외할 계획이다. 의도적 ‘실적 부풀리기’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으로 읽힌다.


지역활동과 공약이행활동은 역시 상대적으로 명료한 축에 속한다. 지역활동에는 의원의 지역구 민원 해결, 당원 모집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활동의 반영률이다. 기존 25%서 30%로 높아졌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그가 진두지휘하는 검찰개혁을 두고 여야 지도부가 치열한 샅바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대다수 의원들이 지역활동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지역 기반이 약한 비례대표에게서 두드러진다.

공약이행활동은 의원실서 중간평가 때 제출했던 공약을 현재까지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공천제 발표, 감점 페널티
10월까지? 국감과 맞물려…

반면 기여활동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한 축에 속한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평가항목이 바로 기여활동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는 당에 대한 기여활동을 의미한다. 공직윤리 수행 실적, 국민소통, 당정 기여, 수행평가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중에서 공직윤리 수행 실적은 의미하는 바가 비교적 명료하다. 최근 각 의원실은 당 윤리규범준수 서약서와 세금 및 당비 완납증명서, 보좌진들의 당비 납부확인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내 보좌진 사이에서는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의원의 평가와 보좌진의 당비 실적을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과도한 조치라는 것이다.

징계 여부도 점수로 환산된다. 윤리심판원서 경징계를 받았을 경우 10점, 기소돼 최종심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20점, 당직 정직 이상 징계를 받았으면 30점을 감점하는 식이다. 단 성희롱·갑질·음주운전·금품수수·채용비리 등 5대 비위에 해당될 경우 형 확정과 관계없이 기소만으로 감점토록 했다.


그 외 항목에 대해서는 무엇이 당에 대한 기여활동이고, 무엇이 아닌지가 모호하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시사>를 통해 “사안이 있을 때마다 중앙당에서는 관련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의원실로 공지가 온다”며 “예를 들면 ‘행사장에 가서 찍은 사진을 제출하시오’ 같은 것이다. 그런데 자료를 제출해도 해당 자료가 점수로 반영되는지는 알 수 없다. 평가에 대한 세부항목이 무엇인지 의원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천과 관련한 평가 때마다 여러가지 의혹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공정성에 대한 불만도 있다. 대부분의 평가 항목서 법안 실적, 의원총회 출석률, 본회의 출석률, 상임위 출석률 등 정량평가 항목도 있지만, 정성평가 항목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 과연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도 불만의 한 축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정성평가 항목이 중진 물갈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하위 20%가 돼 감점을 받더라도, 정성과 정량평가 중 어떤 부분이 영향을 미쳤는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료한 것도
아닌 것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실적이 평가 항목에 추가된 점이 특기할 만한 사안이다. 이는 디지털 소통실적에 해당한다. 반영률은 최종평가서 전체의 6%다. 해당 실적은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SNS 집중 현상을 불러왔다. 당 일각에선 의원의 ‘유튜브 활동’까지 평가에 반영된다는 소문이 나도는 상황이다.

특히 이석현(6선)·이종걸(5선)·송영길(4선)·민병두(3선) 의원 등 중진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이중 이석현·이종걸·민병두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장관을 지지하는 글을 다수 게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검찰 개혁’에 방점을 둔 다른 의원의 글과 결이 달라 친문 지지자들 사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이 의원은 “검찰 개혁이 목적이지 ‘조국 수호’가 목적이냐는 분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며 “검찰 개혁 투지를 안 놓고 버틸 사람, 조국 말고 또 있으면 말해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일에는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촛불 하나 켜는 것도 큰 축복”이라며 “(국회)의원이니 조국수호 검찰 개혁에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걸 의원은 ‘조국 사태’가 본격화됐던 지난 8월부터 SNS에 조 장관을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은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저격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민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8일 “‘태산명동서일필’(요란하게 일을 벌였으나, 별로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를 의미)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조 장관 수사는 태산명동표창장이다. 결국 증거도 없는 표창장 하나, 이것도 하다하다 안 되니까 코링크로 전환했는데 이 역시 ‘태산명동노링크(no link)’다. 조 장관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송영길 의원도 지난달 말 자신의 SNS에 ‘국회의 법안 통과 없이 법무부 차원서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을 말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없애야 한다. 검찰 특수부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형법의 보충적 성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치가 살아나야 한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도부
눈치에…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중진들 사이서 SNS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이유가 ‘친문 진영을 향한 구애’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서초동에 모여드는 다수의 친문 지지자들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공교롭게도 SNS 활동이 활발해진 의원들 중 많은 수가 비문·범친문에 속한다. 


설상가상 당내에서는 ‘중진 물갈이론’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이는 핵심 친문 인사들이 연이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불거졌다. 

시작은 이해찬 대표였다. 이 대표는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친문 인사들의 불출마 의사가 직간접적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 역시 불출마 의사를 주변에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백 부원장은 경기 시흥갑 출마가 거론될 정도로 출마가 유력시됐으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입각한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역시 총선에 불출마한다. 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5선의 원혜영 의원도 불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영입인사 1호로 꼽혔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다.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 같은 릴레이 불출마 선언은 ‘중진 용퇴론’과 함께 혹시 모를 당 지도부의 물갈이 작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측근부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당내 반발을 잠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21대 국회서 유력한 차기 국회의장으로 꼽혔던 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당내 중진 의원들을 향한 물갈이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실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표는 양 원장과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자신의 핵심 측근들에게 불출마를 권유하고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에 착수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물갈이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물갈이론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나는 ‘중진 의원 불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다” “이상한 뉴스에 흔들리지 말라” 등의 말로 당내 민심을 다잡고 있다. 민주당 평가위는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오는 11월4일까지 불출마 의견을 접수받을 예정이다.


발등에 불떨어진 현역들
벼락치기 의원들도 속출

민주당 평가위는 복수의 동료 의원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무기명 설문조사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보안을 위해 무기명 지필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봉투에 밀봉해 수거해가는 방식이다. 설문지는 상임위원회, 겸임위원회, 의정활동 전반, 당직·정부직 수행, 당 기여도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구성할 방침이다.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는 총 128석으로 26명이 필연적으로 하위 20%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규모다. 26명이 20% 감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 감점은 공천 탈락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을 정도로 직격탄이다.

이에 현역 의원들은 하위 20%에 속하지 않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벌이고 있다. 벼락치기 대표법안 발의가 그것이다. 의정활동 항목서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이다. 10월까지의 활동이 평가 대상이라 가능한 일이다.

실제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 64개 중 38개 법안을 올해 8월부터 현재까지 집중적으로 발의했는데 전형적인 벼락치기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민주당의 공천평가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다수 들려온다. 굳이 국정감사(이하 국감)와 맞물려 평가를 예고한 점도 불만 사항 중 하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7일 “국감 시작 한 달 전부터 의원실이 업무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당 지도부서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그런데도 평가라는 민감한 사안을 꺼내든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원들은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당내 일각서 나오는 “총선 경선서 청와대 근무이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아직 내부 총질을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견제는 시작됐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평가위는 내달 5일부터 14일까지 다면평가, 같은 달 18일부터 28일까지 자료 제출·등록 및 검증·보완을 실시할 예정이다. 12월 초에는 자동응답시스템(ARS) 안심번호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최종평가는 오는 12월23일 완료되며,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앞서 평가위는 중간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최종평가에 앞서 실시한 중간평가 결과를 합산하며 반영률은 중간평가 45%, 최종평가 5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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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