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탐사기획⑤> ‘박근혜 유산’ 혈세 먹는 창조경제혁신센터 대해부 -무소불위 센터장

감사 전에 피감기관과 술자리?

[일요시사 탐사보도팀] 박근혜정부의 유산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현재 문재인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투명한 예산 집행과 공정한 운영이 담보돼야 하지만 혁신센터를 둘러싼 잡음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여전하다. <일요시사> 탐사보도팀은 지난 6개월간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서 일어난 비리를 집중 취재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가 센터장의 제국으로 변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느슨한 감시를 틈타 센터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발 중이다. 특히 부산 혁신센터의 ‘제국화’가 두드러진다. 검찰 기소, 직원들의 내부 고발에도 조홍근 부산 센터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검찰 기소
요지부동

혁신센터는 중기부의 피감기관이다. 중기부는 2017년 산하 기관 채용 점검, 2017년 3월 대구·대전·전북·경북 혁신센터 특정감사, 2018년 7월 서울·경남·세종 혁신센터에 대한 종합감사를 벌였다. 올해는 부산·제주·강원 혁신센터가 감사 대상이다. 부산 혁신센터는 지난달 16일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감사를 받았다.

부산 혁신센터의 내부 고발인들은 중기부 종합감사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며 그 중 한 직원은 “중기부 이모 과장이 조 센터장과 친하다. 조 센터장은 이전부터 이 과장에게 ‘충성 모드’였다. 이 과장이 조 센터장을 ‘엉클 조’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취재 과정서 부산 혁신센터 종합감사 전 이 과장과 부산 센터장을 포함한 전국의 센터장들이 술자리를 가진 사실을 포착했다.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술집서 전(前) 중기부 이 과장의 환송회가 열렸다. 이날 환송회는 서울서 열린 전국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의 뒤풀이를 겸한 자리였다.


이 과장은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와 중기부 창업생태계조성과에 근무하면서 줄곧 혁신센터 업무를 맡았다. 창업생태계조성과는 혁신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부서다. 국회 관계자는 “이 과장은 혁신센터의 설립부터 지원까지 계속 관여해왔다”며 “혁신센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이날 환송회서 촬영한 사진 2장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한 사진에는 이 과장이 환송회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꽃 사진과 함께 ‘힘들었지만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시기를 보낸 분들과 함께... I am proud of you. Uncle Joe and your bros!!!’라는 글이 적혀있다. 또 다른 사진에는 이 과장과 부산 조 센터장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채용비리 혐의에도 굳건
1심 선고는 임기 후에나

이 과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Uncle Joe는 술집 이름이다. 조 센터장을 가리킨 게 아니라 패러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부산 혁신센터 사정에 대해 알고 있다”면서도 “문제로 제기된 것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중기부는 2017년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채용 점검을 실시했다. 부산 혁신센터는 직원 채용 과정서 문제점이 드러나 ‘권고’ 처분을 받았다. ▲롯데 출신 지원자에게 편파적으로 점수를 부여했고 ▲접수 기한보다 늦게 서류를 접수한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2018년 3월 부산시 감사관실은 이 문제를 조사, 6월 부산연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7월30일 부산 혁신센터를 압수수색해 채용 서류를 전부 가져갔다. 이후 조 센터장과 당시 부센터장, 파견 공무원 2명 등 총 4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이 업무방해 혐의로 4명을 기소하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중기부 감사에서는 권고 처분에 그친 사안이 검찰 기소로 이어지면서 ‘부실 감사’ 논란이 불거졌다.


조 센터장은 재판 중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음 공판 기일은 11월11일로 잡혔다. 조 센터장의 임기는 11월16일까지. 지금 상황이라면 조 센터장의 임기가 끝난 후에야 1심 선고가 나온다. 조 센터장은 혁신센터와 중기부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높다.

센터장 파워
권한↑처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 소속 장석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부산 혁신센터 규정집에 따르면 센터장 파면과 해임은 이사회를 통해 진행된다. 과반수의 재적 이사가 참석해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비리를 저지른 센터장을 내쫓을 수 있다. 문제는 이사회 구성이다. 부산 혁신센터 이사회는 당연직 이사와 선임직 이사, 감사로 구성된다.

센터장과 중기부·지자체 전담기업 관계자가 당연직 이사를 맡는다.

내부 규정은 센터장의 권능에 날개를 달아줬다. 부산 혁신센터 규정집에는 ‘센터장이 별도로 정한다’는 조항이 곳곳에 삽입돼있다. 채용과 직원 평가, 징계 등 대부분의 규정에 센터장의 ‘별도 권한’이 존재한다. 센터장에게 주어진 권한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칼끝을 막을 만큼 강력하다.

▲채용= 조 센터장이 친구 아들을 위해 ‘원포인트’ 인턴 채용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5년 12월24일 조 센터장은 대학생 현창체험 추진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기간은 한 달, 대상은 대학교 재학생 1명이었다. 12월28일 조 센터장이 직접 B를 추천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부산 혁신센터 관계자는 “B는 2016년 1월4일부터 부산 혁신센터로 출근해 한 달간 업무 보조를 한 뒤 참여 증명서를 발행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내부 문제 고발한 직원들
인사발령 내고 표적 징계

이어 “B는 인턴 일을 하면서 조 센터장의 집에서 숙식을 같이 했다고 들었다. 조 센터장이 B의 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며 “당시 혁신센터에는 현장체험 업무나 계획이 전혀 없었다. B도 1개월 동안 구체적으로 한 업무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운영= 조 센터장은 지난 7월 업무방해 혐의로 자신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전 부센터장을 기획조정팀장으로 발령냈다. 부산 혁신센터서 기획조정팀장은 센터장 바로 아래 직급으로 인사·규정·채용·평가·예산 등을 관리한다. 재판 중인 두 사람이 부산 혁신센터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조 센터장의 비리 의혹과 내부 문제를 고발한 직원들이 표적 징계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익제보자 중 1명은 9월23일까지 지난 1년6개월 동안 6번의 인사발령을 받았다. 특정인 채용에 대한 압력을 거부해 좌천성으로 발령 났다가 부산시의 점검으로 혁신센터의 문제가 드러나자 다시 복귀하는 식이다.

부산 혁신센터 측은 공익제보자가 2년 전 폭언과 직원 평정을 감정적으로 했다는 징계 사유를 들었다.


공익제보자들은 구체적 정황과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공익제보자들은 정직 1개월, 감봉 3개월 등의 징계를 받았다. 권익위는 9월 초 공익제보자 보호조치 안내 공문을 부산 혁신센터에 보냈다. 최근에도 징계 및 보복인사 발령 건으로 추가 보호조치 공문이 내려왔지만 징계는 강행됐다.

해외 출장↑
실적은 바닥

이들은 수차례에 걸쳐 중기부에 센터장 비리와 내부 문제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다시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권익위는 9월16일, 조 센터장의 금품 수수 및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경찰청과 중기부로 이첩했다고 회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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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