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탐사보도팀] 박근혜정부의 유산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현재 문재인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만큼 투명한 예산 집행과 공정한 운영이 담보돼야 하지만 혁신센터를 둘러싼 잡음은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여전하다. <일요시사> 탐사보도팀은 지난 6개월간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서 일어난 비리를 집중 취재했다.
‘톱니바퀴 사이의 먼지.’ 한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 직원이 말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혁신센터의 현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와 지자체의 느슨한 관리·감독에 혁신센터는 ‘먼지 덩어리’로 전락했다.
세금 쓰는데
감시 안 받아
혁신센터는 박근혜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주도로 설립·운영됐다. 창조경제운영위원회와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지시로 운영된 혁신센터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도 명확한 내부 규정이 없었다.
문정부는 출범 직후 혁신센터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 작업에 돌입했다. 2017년 7월 형식상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던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폐지했다. 중기부는 창업진흥원(이하 창진원)에 혁신센터의 예산집행을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맡겼다.
담당 주체가 바뀌었지만 혁신센터의 내부 사정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2018년 7월 중기부는 서울과 경남, 세종 혁신센터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감사 결과 3곳의 혁신센터는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문정부 들어서도 완비하지 못한 규정은 솜방망이 조치로 이어졌다.
중기부 감사서 경남 혁신센터는 9건, 세종 혁신센터는 13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중기부는 경남 혁신센터에 통보(2건), 개선, 주의(3건), 시정(3건), 기관주의(3건) 등의 처분을 요구했다.
세종 혁신센터에는 통보(5건), 개선(2건), 주의(4건), 시정(4건), 경고(2건), 문책, 기관주의(3건), 기관경고(2건) 등의 조치를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총 35건의 처분요구 중 세종 혁신센터 센터장에 대한 문책 요구가 가장 엄중한 조치였다.
감사 때마다 문제 쏟아져
정작 조치는 가벼운 처분뿐
중기부가 혁신센터의 채용비리를 적발했을 때와 판박이다. 2018년 중기부 조직혁신 태스크포스(TF)는 산하 공공기관과 공직유관단체의 채용 전반(2013∼2017년)을 특별점검했다.
그 결과 31개 기관서 총 140건의 지적사항이 나왔고, 그중 57건이 혁신센터서 적발됐다. 당시 중기부는 대부분 통보·시정·주의 등 가벼운 처분만을 요구했다. 울산 혁신센터서 부서장이 받은 문책 요구가 그나마 가장 센 조치였다.
채용비리는 혁신센터가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 대부분이라는 ‘변명’이 통했다. 공직유관단체는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재정지원과 임원 선임 등의 승인을 받는 공공성이 있는 기관·단체로, 공직 윤리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혁신센터는 2017년 1월1일부터 공직유관단체로 분류됐다. 앞서 2016년 10월 박근혜정부는 17개 혁신센터 센터장을 모두 ‘공직자’로 분류했다. 공직자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2018년 중기부 감사 때는 이미 혁신센터에 공공성이 부여돼있던 셈이다.
2017년부터
공직유관단체
▲외부강의 미신고= 공직유관단체 임직원들은 외부 강의를 하려면 사전에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사례금도 기관장 40만원, 직원 20만원으로 시간당 상한 규정이 있다. <일요시사>가 분석한 종합감사 처분요구서에 따르면 경남 혁신센터서 외부 강의 사전 신고 누락 5건, 출장신청 누락 3건, 사례금 초과 수령 1건 등이 적발됐다.
한 직원은 다른 목적으로 출장을 신청한 뒤 외부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받았다. 중기부는 출장 신청을 누락한 직원 3명에게 주의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 교육과 제도 개선도 요구했다.
인사혁신처서 공개한 ‘공무원 징계 사례’ 자료에 경남 혁신센터와 비슷한 사안이 소개됐다. 공무원 A는 사전 결재나 신고 없이 근무시간과 연가, 휴일 등을 이용해 외부 강의와 자문을 하고 사례금을 받았다. 심지어 공무수행을 위한 출장명령을 받고 출장지가 아닌 곳에서 강의했다.
감사원 감사서 중징계 의결을 요구받은 A는 결국 강등(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공용차량 사적사용= 공무원 B는 허위출장으로 여비를 부당 수령하고 공용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공직기강 점검서 적발돼 중징계와 징계부가금 1배 부과 의결을 요구받았다.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청렴의 의무를 위반한 B는 최종적으로 감봉 3개월, 징계부가금 1배의 징계를 받았다.
혁신센터도 공용차량을 운용한다. 경남 혁신센터는 ‘법인차량 운영지침’을 통해 차량을 관리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관리자에게 미리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차량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2017년 관리자의 사전 승인 없이 7회에 걸쳐 차량을 이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운행거리, 동승자 등 차량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중기부의 처분 요구는 ‘기관주의’에 그쳤다.
공무원 중징계
센터장 경징계
세종 혁신센터는 센터장이 공용차량을 자신의 출퇴근에 사용했다. 2015년 6월 취임한 최길성 센터장은 2015년 8월11일부터 2017년 12월18일까지 총 41회에 걸쳐 공용차량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자신의 개인차량은 조치원에 있는 혁신센터에 두고 공용차량으로 서울 송파구 자택을 오갔다.
다음날 회의 참석 등의 이유를 들어 혁신센터서 자택으로 귀가, 다음날 회의에 참석한 후 당일이나 그 이후에 복귀하는 식이다. 이 과정서 차량 배차나 출장등록 절차를 밟지 않았다.
세종 혁신센터서 2016년 11월 개정한 임직원 행동강령 14조에는 ‘임직원은 차량 등 센터 소유의 재산을 정당한 사유 없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 센터장이 3년에 걸쳐 사용한 공용차량 운행거리는 6000㎞에 이른다. 유류비 54만1372원, 하이패스 이용료 36만6740원 등 총 90만8110원의 부당 지출도 발생했다. 최 센터장은 중기부 감사서 “정상적인 출장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증빙자료는 제출하지 못했다.
중기부는 최 센터장에 대한 엄중 문책을 요구했지만 최 센터장은 2017년 연임에 성공, 여전히 기관장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공용차 출퇴근 ·출장비 더 받아도
연임 성공해 여전히 센터장 업무
▲국외출장 관리= 인사혁신처는 2015년 10월 공무원 국외 출장의 철저한 사전·사후 관리를 내용으로 ‘공무 국외여행 관련 복무관리 강화 지침’을 신설, 각 부처에 전달했다.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는 공무원 국외 출장을 확실히 관리하자는 취지다. 외유성 출장으로 적발될 경우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고 소속기관에도 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공무 국외출장을 두고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서 총체적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경남 혁신센터 임직원들은 2015년부터 2018년 1월까지 총 22건의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이 과정서 ①출장비는 초과 지급됐고 ②비자발급 비용은 비싸게 지급했으며 ③출장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보·시정요구·기관주의 처분으로 끝났다.
세종 혁신센터의 국외출장 관련 문제는 시의회서도 비판이 나왔다. 윤형권 세종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7월 시의회 본회의서 “(최 센터장이)글로벌펀드 유치사업 명목으로 2017년 11~12월 룩셈부르크와 핀란드로 출장 갈 때 퇴사한 직원, 민간인과 함께 갔다”며 “사업 담당자였기 때문에 멘토로 동행했다는데, 그를 위해 예산을 쓴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항공료 명목으로 각각 200만원만 부담했다. 최 센터장은 나머지 비용을 행사용역비서 지원하도록 했다. 또 최 센터장은 해당 출장서 기존 여비산정기준이 아닌 장관급에 해당하는 공무원 여비 규정을 적용해 숙박비와 식비를 계산했다. 출장비 237만7000원이 추가로 지급됐다.
감사 전까지
규정 없었다
경남 혁신센터는 2018년 7월까지 여비 규칙·회의수당 등 지급지침·임직원 행동강령·법인카드 관리 및 운영지침 등의 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여비지급 기준을 임의로 높게 정해 초과 지급하고, 상위법에 근거해 규정을 개정해야 하지만 기존 내용으로 계속 운영했다. 법정공휴일, 주말, 근무지 외 지역, 비정상 시간대(23시 이후)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도 없었다. 중기부의 처분은 ‘개선 요구’였다. 경남과 세종 혁신센터 관계자는 “중기부 감사 처분 요구를 모두 이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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