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아니, 꿈이었단 말인가! 정말 요상한 꿈이구나.’
매창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옷고름은 여전히 풀어 헤쳐져 있었고, 베개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거문고는 침실 중앙에 덩그마니 놓여 있고 방문은 열린 채 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 발 뒤로 밤이슬이 거문고 가락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가락 사이사이를 간간이 달빛이 비추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매창은 중얼거렸다.
꿈속의 꿈
‘내가 거문고와 놀다 살폿 잠이 들었던 게로구나.’
정신을 가다듬고 주변의 익숙한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매창아 ! 매창아!”
몸에서 소름이 돋아나고 있었다.
꿈속에서의 아쉬움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꿈이 바로 현실로 이루어진 데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매창이 확신에 가까운 기대에 몸을 떨면서 밖으로 나갔다.
“매창아! 나의 사랑, 매창아!”
목소리는 들려오는데 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네, 나으리. 소녀 여기 있사옵니다.”
애타게 연인을 찾으며 매창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하늘에 환한 둥근 달 두 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괴이한 그 현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부른 실체가 바로 그 달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을 부르던 그 두 개의 달이 빠르게 흘러와 하나로 합쳐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매창의 구멍 난 가슴으로 쑤욱 들어왔다.
“아!”
매창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마음뿐이었다.
눈동자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시선을 천천히 가슴으로 옮겼다. 속이 메스꺼웠다.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닫혀 있었다. 다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문고도 늘 있던 자리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자 땀으로 흥건했다.
손으로 찬찬히 온몸을 쓸어보았다.
얼마나 용을 썼는지 옷고름이 풀려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꿈이로고.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니.’
아무래도 일어나야 할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나타났다. 그러기를 잠시 후 그 보름달이 자신의 연인 유희경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나리!’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아씨!”
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자신의 얼굴을 살짝 꼬집어보았다.
기별이 전해지는 상태로 보아 더 이상 꿈속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선을 문가로 주었다.
“아씨!”
이상하게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씨, 무슨 일 있어요!”
꿈속의 꿈…두 개의 보름달이 가슴으로
현실로 돌아온 매창…찾아온 귀한 손님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별이 급히 방문을 열었다.
누운 상태서 별을 바라보는 매창과 시선이 마주쳤다.
“아씨!”
매창의 멍한 눈에서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바라본 별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급히 매창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만지는 손에 땀으로 흥건하게 적셔져 있는 몸이 뭉클거렸다.
“아씨, 어쩐 일이에요. 왜 그러세요.”
“별아, 물……물을 다오.”
별을 보자 갑자기 갈증이 일어났다. 아니, 땀으로 내보낸 자신의 몸 속 수분을 보충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면 그것이 마치 생명수가 되어 생기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별의 부축으로 몸을 비스듬히 세우고 물을 마셨다. 걸신들린 사람처럼 물을 마시고 나자 정신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씨, 새삼스럽게 낮잠은 무엇이고 무슨 몹쓸 꿈을 꾸셨기에.”
가만히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을 생각해보았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임을 본 꿈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그 임이 자신을 몰라라하고 도망가 버리고 또 이어서 두 개의 달이 하나로 합쳐져 자신의 가슴속으로 들어온 그 꿈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 내가 얼마를 잤다는 말이냐?”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아씨도.”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 올 무렵 거문고에서 손을 놓았다.
잠시 임을 생각하다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열려진 방문 사이로 밖을 바라보았다. 비와 바람은 그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아씨답지 않게 낮잠은.”
“그런데 네가 어인 일로 이곳에 왔느냐.”
자세를 바로하고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지런히 하며 별에게 시선을 주었다.
“고 생원께서 한양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아씨께서 맞이해야 한다며 아씨를 모시고 오라 하셨어요.”
“한양에서!”
외마디 반응과 함께 표정이 밝게 변해갔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매창의 얼굴이 다시 어둡게 변해갔다.
자신의 임이라면 별이 기별을 가지고 오지 않을 터였다.
별보다 먼저 자신을 찾을 임이었다.
“그래, 누구시라고 하던.”
심드렁하니 말을 받았다.
“누구라고는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고 반드시 아씨께서 맞이해야 할 손님이라고만 하던데요.”
“반드시 내가 말이냐?”
“네. 다른 사람은 안 되고 반드시 아씨께서 맞이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다시 한 번 꿈을 생각해봤다.
최초로 자신의 마음을 허락했던 연인 촌은 유희경 그리고 인근 지방인 김제의 군수로 있다가 다시 한양으로 올라간 이귀의 얼굴이 교차되고 있었다.
꿈에 나타난 보름달 두 개가 그 두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보름달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가슴속으로 들어 온 하나의 보름달이란 말인가.
달은 누구?
매창이 고개를 저었다. 차마 그리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로지 달님 하나만을 그리던 매창에게 두 개의 달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씨, 그만 일어나셔서 땀도 닦으시고 몸을 정갈하게 하셔야지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