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삼복이 저만치 앞에 있는 숲으로 고개 돌렸다.
“꼭 이놈이 네놈과 닮았구나.”
바지를 입던 허균이 자신의 가운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삼복의 시선 역시 함께했다.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냐?”
잠시 허균의 가운데를 주시하던 삼복이 더 이상 두려움에 떨 이유가 없음을 확실하게 알아챘는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사라진 두려움
“저 앞에 갈라지는 곳이 부안현과 고부로 향하는 갈랫길이옵니다. 고부로 가자면 바로 가야 합지요.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부안현이옵구요.”
“아니, 이렇게 팔팔한 놈이 그깟 벼락이 무서워서 그리 안절부절못했단 말이냐! 한심한 놈이로고. 그건 그렇고 네놈의 심사는 어떠냐?”
“소인의 심사라니요?”
방금 전에 사로잡혔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진 듯 말하는 표정이 당당했다.
“이놈아, 네가 방금 전에 쉬어가자고 하지 않았더냐?”
삼복이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은….”
“그래, 지금은 방금 전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지체 없이 길을 가자, 이 말이냐?”
“고부까지 가려면 여기서 한가하게 시간을 죽일 겨를이 없습지요. 서둘러 가야 날이 어둡기 전에 도착할 듯싶은데요.”
말을 마친 삼복의 얼굴로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예라, 이 잡놈아!”
허균이 내뱉은 소리가 다시 벼락 속으로 감겨들었다.
삼복이 마치 허균의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바짝 다가섰다.
“나리, 부안현에서 잠시 쉬었다 가셔야겠지요?”
“이놈아, 잠시가 무어냐. 네놈이 원하는 대로 비가 그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러야지.”
삼복의 얼굴이 능글맞게 변해갔다.
“그러면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
“이놈이!”
허균의 짤막한 일성에 삼복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부안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될 거 아닌가요.”
“내가 다 너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부안현으로 길을 잡도록 해!”
잠시 쭈뼛하던 삼복이 허균의 아랫도리로 시선을 던졌다.
“거참, 묘한 일입니다요.”
곁눈질로 허균을 응시하는 삼복이 은근히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그러게 말입니다, 나리. 제 머리는 분명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놈의 주둥이가 제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하니 말입니다.”
삼복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자신의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서 은근히 힘이 솟고 뿌듯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잠시 그곳을 주시하던 허균이 거세게 내리는 빗소리를 압도할 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미련한 놈아, 그럼 네 주둥이가 내 물건이란 말이냐!”
매창은?…알 수 없는 허균의 속내
마을에 들어서다…눈치 빠른 삼복
삼복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균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리, 그리는 아니 되지요.”
“안 되긴 무에 안 된다는 말이냐. 지금 네놈이 내 물건을 두고 한 이야기가 아니더냐.”
“그게…. 그러니까….”
말을 맺지 못한 삼복이 어찌 할 바를 모르며 뒷덜미를 긁적거렸다.
“그러니 결국 네 주둥이가 내 물건과 같다는 이야기 아니더냐!”
삼복이 더 이상 말이 궁색했는지 허균에게 바짝 다가섰다.
“나리, 이번에는 누구인지요?”
“이 놈이 갈수록 태산이네. 누구라니 이놈아, 다 네놈 걱정해서 비 그칠 때까지 쉬었다 가고자 함이거늘.”
삼복이 허균을 힐끗거리며 능글맞게 웃었다.
“나리, 저에게 그러지 마시고….”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삼복이 시선을 다시 허균의 가운데로 주었다.
“예라, 이 잡놈아!”
말을 마친 허균이 부안현을 바라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나리, 누구….”
허균이 입가에 떨어진 비를 핥았다.
“네가 취할 것도 아니거늘 왜 그리 관심을 가지는 게냐.”
“만약 나리께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저의 목은….”
삼복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아무 소리 말고 그냥 앞장이나 서. 네놈 죽이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삼복이 더 이상 추궁해봐야 소용없다는 듯 휑하니 돌아서서 앞서 걸어가자 그 뒤를 허균이 갈지자를 그리며 걷기 시작했다.
삼복의 뒤를 따라 걷던 허균이 하늘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태양의 기운이 비추기 시작한 모습으로 보아 거세게 내리던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 듯 보였다.
그 모습을 삼복도 본 모양이었다. 얼굴에 한껏 미소를 머금고는 허균에게 몸을 돌려 외쳤다.
“나리, 혹시, 그 매… 창이라는….”
“그놈 눈치 한번 빠르구나.”
“그러면 그렇지. 나리께서 그 좋은 홍시를 그냥 두고 갈 리 없지요.”
“홍시라.”
“홍시고 말고요. 살짝 물기만 해도 자르르르….”
삼복의 입가에서 침이 비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에 어우러진 삼복의 모습이 전혀 추하지 않고 오히려 정겨워 보였다.
“그래, 이놈아. 내 그 홍시 맛을 보기 위해 부안현으로 가고자 하니 네 몸은 부안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대령하도록 해야 할 일이야.”
“나리, 그러다가 홍시가 터져버리면….”
“이 잡놈이!”
도끼눈을 뜬 허균이 손을 치켜들자 삼복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제가 터지지 않도록 철저히 해야겠습지요!”
“터지지 않게”
허균 일행이 객사에 들었을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양빛이 가득했다.
천지를 호령했던 회오리를 질타라도 하듯 더욱 강렬하게 내리쬐었고, 저 멀리 나지막한 산등성이 뒤로 칠색 영롱한 무지개가 세상을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나리, 날도 갰는데 이제 그냥 길을 떠나심이….”
“이런 실없는 놈이 있나! 그렇게 가고 싶거든 네 몸이나 먼저 가라!”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