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총선 키맨’ 사생결단 영입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7.22 09:26:53
  • 호수 1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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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진주? 까보면 짱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총선 승리의 핵심, 키맨 영입전이 시작됐다. 누구를 ‘총선 키맨’으로 데려오느냐에 따라 선거의 당락이 좌우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다. 당 지도부 입장에선 키맨 영입만큼 효과적인 총선 전략도 없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여야의 키맨 영입전을 집중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공천룰을 가장 빨리 정하는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1일 민주당은 중앙위원회를 열고 현역 의원 전원 경선 및 여성·청년·정치 신인에게 가산점을 강화하는 내용의 21대 총선 공천룰 원안을 최종 확정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여성과 청년, 장애인, 당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출마자에 대한 가산점이 최고 25%로 상향됐다. 정치 신인에 대해서는 공천심사 때 10∼20% 범위 내에서 가산점을 받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신인에게
혜택 가득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바로 정치 신인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이다. 내년 21대 총선에선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예상된다. 이들을 정치 신인으로 볼 수 있느냐가 또 다른 문제다.

어디까지를 ‘신인’으로 봐야 하느냐는 총선 때마다 불거지는 논란이다. 명함이 주는 무게가 큰 영향을 미치는 선거판서 출마 경험은 없지만, 정치 신인이더라도 인지도가 높으면 전현직 의원들의 경계 대상이다.

해외 나간 양정철 왜?
'포스트 심상정’ 찾기


민주당 당헌을 보면 정치 신인서 배제되는 조건은 ▲이전 각급 선거서 후보자로 등록했던 자(당적 불문) ▲당내 경선에 출마했거나 타당의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출마했던 자 ▲시도당위원장 및 지역위원장 등이다.

즉 이 같은 조건에만 해당되지 않으면 아무리 공직 경험이 많고 인지도가 높아도 정치 신인으로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출마한다면, 정치 신인에 해당한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민주당 21대 총선의 키맨이다.

관료 출신들도 민주당 총선의 키맨이다. 문정부의 집권 초기를 책임졌던 1기 장관들이 대상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장관, 김용진 전 기재부 2차관 등이 대표적이다. 또 개각 이후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총선에 출마할지의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키맨 영입 키워드는 ‘글로벌’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글로벌 인재를 발굴하는 콘셉트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무대서 경쟁력을 입증받은 인물을 영입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유수대학 교수와 국제기구 간부, 외국계 기업 출신 등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9∼12일 중국 베이징을 찾은 데 이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민주당 인재영입을 위해 양 원장이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글로벌 인재를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측은 “이번 방문은 인재영입과 무관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정치 신인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방식으로 공천룰을 정했다. 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이하 혁신특위)는 최근 공천혁신소위원회 등과 논의 끝에 정치 신인에게 50%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천룰을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스타냐
글로벌이냐

한국당은 인지도가 높은 사회 명망가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당 인재영입위원회는 지난달 코리안 특급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KBO) 국제홍보위원과 ‘아덴만의 영웅’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 등 2000명 남짓의 사회 명망가를 영입 리스트에 올렸다. 이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결정이었다.

이런 보도가 나간 후 당시 한국당 관계자는 “분야별 전문가를 포함해 2000여명의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상황”이라며 “다만 박찬호 위원 등이 본인 스스로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후 인재영입위는 170여명으로 명단을 좁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은 신인에게 가산점 50%라는 파격안을 내놨는데 이를 반대로 말하면 현역 물갈이를 예고한 것이다. 민주당과 달리 장관급 인사나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정치 신인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술렁이고 있다.

특히 친박·영남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혁신특위가 ‘물갈이론’을 언급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책임론, 20대 총선 공천 실패 책임론 등도 함께 거론했기 때문이다.
 

▲ (사진 왼쪽부터)이해찬(더불어민주당)·황교안(자유한국당)·손학규(바른미래당) 대표

앞서 혁신특위 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은 지난달 한 라디오 인터뷰서 박 전 대통령 탄핵과 20대 총선 공천 후유증 등을 거론하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물갈이 폭도 크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신인에게 50% 가산점이라는 파격안이 나온 것이다. 친박·영남 의원들 입장에서는 이를 총선 물갈이의 신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친박·영남 의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부산 중·영도가 지역구인 김무성 의원은 “지금은 모두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라며 “단편적으로 물갈이 기준을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친박계 측에서는 공개적인 반발은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물밑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양새다.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으로 당을 옮긴 홍문종 의원이 대표적인 예다. 홍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 현역 40명 이상이 추가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분당 가능성을 안고 있는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과 새 지도부를 꾸린 정의당은 아직까지 눈에 띄는 인재영입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천룰 역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은 가능하다. 당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인재를 키맨으로 들일 가능성이 높다.

호남 두고
격돌 예정

캐스팅보터인 바미당은 청년과 보수를 인재영입의 키워드로 잡을 공산이 크다. 지난 1일 바미당은 당 개혁 방안을 찾기 위해 청년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바 있다. 비록 지난 10일 당대표 재신임 투표를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가결해 당내 당권파와의 갈등에 휩싸여 있지만, 당이 청년을 얼마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바미당은 앞서 지난 6·13지방선거의 주 타깃을 청년과 보수로 잡은 바 있다. 비록 지금은 탈당했지만, 바미당의 ‘6·13지방선거 인재영입 1호’는 신용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외 바미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인 이준석 최고위원, 20대 국회 최연소(86년생)인 김수민 의원은 당을 대표하는 청년들이다. 바미당의 인재 교육 과정인 ‘청년정치학교’ ‘바른토론배틀’ 등도 당의 노선을 잘 보여주는 예다.

공천룰 정하며 인재들 영입 박차
민·한 총력전…다른 당 상황은?


민평당은 분당 수순을 밟고 있다. 당내 비당권파가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를 결성하면서 촉발됐다. 그간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갈등을 벌였던 유성엽 원내대표, 박지원·천정배 의원 등 비당권파는 지난 16일 2시간가량 심야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민평당의 키워드는 ‘호남’이다. 이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에게 해당된다. 당권파는 당의 경쟁력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자강론’을 주장하는데 그 중심에는 호남이 있다. 당권파의 수장인 정 대표는 전북 순창 출생으로 전북 전주병을 지역구로 갖고 있다.

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제3지대론’을 주장하며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비당권파 역시 호남을 중심에 두고 있다. 연대의 대표를 맡은 유 원내대표는 전북 정읍 출생으로 현재 전북 정읍·고창 지역구 의원이다. 연대의 좌장격인 박 의원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전남 목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박 의원은 최근 광주·전남 지역 국회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호남을 대표할 수 있을 역량 있는 인사를 영입해 당의 모든 권한(총선 비례대표·공천권 등을 포함)을 주고 현직 의원들은 모두 2선으로 후퇴하는 등의 결단을 통해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당이 돼야 승산이 있다. 일종의 신풍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의당은 총선에 맞춰 새로운 지도부를 꾸렸다. 당내 스타 정치인인 심상정 대표가 당선됐다. 2년 만의 복귀다. 심 대표는 최근 국회서 열린 대표단 이·취임식서 “비례정당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확고한 지역 기반을 갖춰야 한다”며 “지역구 당선을 위해 모든 당력을 쏟아붓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사진 왼쪽부터)정동영(민주평화당)·심상정(정의당)·조원진(우리공화당) 대표

정의당의 키맨 키워드는 지역 경쟁력을 가진 ‘스타’다. 현재 정의당 의석 6석 중 지역구 의원은 심 대표(고양 덕양갑)와 지난 4·3보궐선거 당시 고 노회찬 전 의원 지역구서 당선된 여영국 의원(경남 창원성산)뿐이다. 그외 4명은 비례대표다.


정의당의 목표인 수권정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서 현재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원을 배출해야만 한다. 당내에서는 심상정·노회찬을 이을 ‘스타 정치인’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 대표 선거 당시 나왔던 ‘심상정만 보이고 정의당은 안 보인다’ ‘어대심’(어차피 대표는 심상정)이라는 말은 현 정의당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심 대표는 외부서 스타성 있는 인물을 수혈해 외연 확장을 해나가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이삭줍기?
인재영입!

공화당의 키워드는 ‘친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정치’ 여부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에선 영입 인사로 약 50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경북 출신의 박근혜정부 시절 관료를 주요 영입 대상으로 고려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재 영입 성공사례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연재영입이다. 당시 안철수계의 집단탈당으로 흔들리던 민주당은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종인 전 대표와 ‘IT 전문가’ 김병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등을 영입, 1당으로 올라섰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도 인재 영입으로 위기를 탈출한 적이 있다. 당시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파격적으로 40대 정치 신인들을 전면에 내세워 큰 효과를 봤다. 나경원·유승민·이혜훈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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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