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태종 13년(1413) 12월1일 기록을 인용한다.
“삼성(三省)의 신료는 모두 사리를 아는 자들이다. 혁명한 뒤에도 오히려 전대의 후예(後裔)가 살아 있을까봐 두려워해 모조리 죽여서 유종(遺種, 남은 씨앗 즉 후손)을 없애는 것은, 이것은 용렬한 군주가 하는 짓이다. 내가 어찌 차마 하겠는가? 경 등은 나의 아름다운 뜻을 따르려 하지 않고 어찌 이처럼 번거롭게 구는가? 왕씨(王氏)의 유종은 죄가 없는데 죽이는 것은 내 마음으로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미 결정되었으니 다시 진언하지 말라.”
당시 지신사(도승지)였던 김여지가 고려 종실의 후예인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의 동정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그에게 죄를 주자는 신하들의 주청에 대해 태종 이방원이 답한 내용으로 그의 호방함을 엿볼 수 있다.
상기 글에 ‘후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후예(後裔)서 예(裔)는 ‘후손’을 의미하며, 뒤를 의미하는 후(後)가 덧붙어 자신의 세대서 여러 세대가 지난 뒤의 자녀를 통틀어 이른다.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지칭하는 말로 자신의 자녀 혹은 손자 세대에게는 후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근하게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를 예로 들어보자. 궁예(弓裔)의 이름을 액면 그대로 살피면 ‘활의 후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궁예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활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앞서 왕거을오미를 왕건의 후예라 표현했듯 당사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다.
이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행한 발언에 접근해보자. 문 대통령은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문 대통령이 언급한 독재자는 누구일까. 다시 이어지는 그의 발언을 인용해본다.
“5·18 이전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그의 이어지는 발언을 살피면 모호하기 짝이 없다. 5·18 이전, 5공시절 대통령을 역임했던 인물을 독재자로 규정한 듯 보이는데, 아마도 최규하 전 대통령은 빼고 싶어 그렇게 표현한 듯 비쳐진다. 여하튼 이승만,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독재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핏줄들을 열거해보자. 먼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다. 이 전 대통령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다만 프란체스카 여사 이전 부인에게는 소생이 있었으나 일찌감치 사망했다.
그런 이유로 이 전 대통령은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을 양자로 들인 바 있다. 그렇다면 이강석에게는 자식들이 존재할까. 안타깝게도 이강석은 4·19 이후 23세 나이에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핏줄을 남기지 못했다.
이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시선을 던져보자. 사망한 박 전 대통령에게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존재한다. 아울러 생존해 있는 전 전 대통령에게도 자식들과 손주 세대만 존재한다.
결국 문 대통령의 변대로 살펴보면 독재자의 후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문 대통령은 당당하게 독재자의 후예를 거론했을까.
바로 필자가 누누이 지적하는 그의 행태, 매사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정체성으로부터 기인한다. 따라서 동 표현은 ‘독재자를 신봉하는 사람’이라 해야 옳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