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 ‘노무현의 23인’ 현주소

그로부터 10년 뒤 그의 사람들은 지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깊은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소탈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정파를 초월하고자 했던 그에게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23주년 창간을 기념해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23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 ▲▲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서 짧은 유서를 남기고 국민의 곁을 떠났다.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시민 노무현’은 국민이 함께하는 민주주의 세상을 꿈꿨다. 다음의 23인은 노 전 대통령이 이룩하고자 했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1953년생. 경남 거제 출신으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서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호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엔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우직히 해냈다. 2004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정계를 떠났으나, 도중에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복귀해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30년 지기의 곁을 지켰다.

[이낙연]


1952년생. 전남 영광 출신으로 현 국무총리다. 2000년 고향인 함평·영광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4년엔 전라남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 고통, 각성 등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그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정태호]

1963년생. 경남 사천 출신으로 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비서관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선거대책본부서 ‘150대 핵심공약’을 집필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서 정무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대변인을 역임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

1945년생.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현 국회의장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을 지내며 ‘친노(친 노무현)계의 큰형’으로 통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해찬]

1952년생. 충남 청양 출신으로 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1987년 6월 항쟁 무렵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2002년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고 후에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에 동참해 ‘노무현-이해찬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때의 인연으로 ‘친노의 좌장’이라 불린다.


[임종석]

1966년생. 전남 장흥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의 전 비서실장이다. 임종석은 대표적인 ‘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어른이 되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인태]

1963년생. 충북 제천 출신으로 현 국회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국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 총장은 1987년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때 함께 술 마시고 잤는데,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 변호사 같지 않아서 나와 같은 ‘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10년 이상 노 전 대통령과 정치인생을 함께한 것도 그의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탈·강직 모습으로 정파 초월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 타파

[정세균]

1950년생.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떠나가셨을 땐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나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며 “점차 대통령님이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남은 저희들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 (사진 왼쪽부터)박주현·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현]

1963년생. 전북 군산 출신으로 현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서 참여혁신수석을 맡았다. 박 의원이 국민참여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할 때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정 사실을 통보해 친노 인사가 됐다. 박 의원은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해서 ‘여자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현미]

1962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국토교통부장관이다. 2002년 대선 정국 때는 노 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후에는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비서실서 국내 언론을 담당했다. 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에 대한 철학과 각론이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1959년생. 경남 남해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의원에게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겼다. 이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전해철]

1962년생. 전남 목포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설립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보좌한 데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며 본인이 친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철희]

1964년생. 경북 영일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엔 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선거특별본부 간사를 맡았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보수의 정체성을 일깨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최근 <노무현과 바보들>의 시사회를 열었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1964년생. 대구 달성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캠프인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종민]

1964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이 기자였을 때 쓴 기사를 눈 여겨봤다고 한다. 이후 김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한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며, 참여정부 임기 만료까지 청와대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따라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병준]

1954년생. 경북 고령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구체화했다. 또 대통령의 정책실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원조 친노였던 김 위원장은 보수의 길을 걷게 되고 친노계 인물들과는 멀어졌다.

[서갑원]

1962년생.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92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때는 태통령비서실서 의전비서관, 정무1비서관을 지내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현재는 신한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김경수]

1967년생. 경남 고성 출신으로 현 경남도지사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지사는 “봉하마을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1심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 (사진 왼쪽부터)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유시민]

1959년생. 경북 월성 출신으로 현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2013년 2월 정계 은퇴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이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모두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유 이사장은 독일 유학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 경제 지식을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이후 유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며 대표적인 친노 인사가 됐다.

[안희정]

1965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36·37대 충청남도지사를 맡았다. 절친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 ‘좌 희정-우 광재’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았다.

안 전 지사는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에서 제명됐다. 검찰이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불명예로 막을 내렸다.
 

▲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요시사>가 노무현 사람들 23명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광재]

1965년생.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전 강원도지사다. 노 전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일한 보좌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대법원서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강원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는 정무직서 물러난 상태로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명숙]

1944년생. 평양 출신으로 참여정부서 환경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한 전 총리를 후계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직 중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양정철]

1964년생. 서울 출생으로 현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노 전 대통령을 통해 언론개혁을 이루고자 했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을 퇴임부터 서거할 때까지 보좌했고, 장례위원회 실무를 주관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치렀다. 이후 노무현 재단의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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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