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특집> ‘노무현의 23인’ 현주소

그로부터 10년 뒤 그의 사람들은 지금…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오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깊은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소탈하고 강직한 모습으로 정파를 초월하고자 했던 그에게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일요시사>는 23주년 창간을 기념해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23인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봤다.
 

▲ ▲▲ 문재인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서 짧은 유서를 남기고 국민의 곁을 떠났다.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시민 노무현’은 국민이 함께하는 민주주의 세상을 꿈꿨다. 다음의 23인은 노 전 대통령이 이룩하고자 했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다.

[문재인]

1953년생. 경남 거제 출신으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서 인권 변호사로서 활동하며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호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엔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우직히 해냈다. 2004년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정계를 떠났으나, 도중에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변호인단 간사를 맡았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복귀해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며 30년 지기의 곁을 지켰다.

[이낙연]


1952년생. 전남 영광 출신으로 현 국무총리다. 2000년 고향인 함평·영광서 출마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4년엔 전라남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 고통, 각성 등 복합적인 느낌을 준다. 그를 통해 정치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정태호]

1963년생. 경남 사천 출신으로 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비서관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에는 선거대책본부서 ‘150대 핵심공약’을 집필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서 정무기획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기획조정비서관, 대변인을 역임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

1945년생.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현 국회의장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을 지내며 ‘친노(친 노무현)계의 큰형’으로 통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는 “다시는 비겁한 침묵으로 반칙과 특권에 희생되는 제2의 노무현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고 패배가 아닐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해찬]

1952년생. 충남 청양 출신으로 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참여정부 당시 국무총리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1987년 6월 항쟁 무렵 재야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 2002년 노무현 캠프에 참여해 참여정부 탄생에 일조했고 후에 세종시의 설계 및 추진에 동참해 ‘노무현-이해찬 공동정부’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때의 인연으로 ‘친노의 좌장’이라 불린다.


[임종석]

1966년생. 전남 장흥 출신으로 문재인정부의 전 비서실장이다. 임종석은 대표적인 ‘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임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어른이 되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유인태]

1963년생. 충북 제천 출신으로 현 국회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노 전 대통령과 국회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 총장은 1987년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때 함께 술 마시고 잤는데, 투박하고 거친 모습이 변호사 같지 않아서 나와 같은 ‘류’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10년 이상 노 전 대통령과 정치인생을 함께한 것도 그의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탈·강직 모습으로 정파 초월
불의에 항거하고 권위주의 타파

[정세균]

1950년생.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떠나가셨을 땐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나 이제서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며 “점차 대통령님이 원하시던 사람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남은 저희들이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노무현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계보를 잇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 (사진 왼쪽부터)박주현·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갑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현]

1963년생. 전북 군산 출신으로 현 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서 참여혁신수석을 맡았다. 박 의원이 국민참여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할 때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며 내정 사실을 통보해 친노 인사가 됐다. 박 의원은 강직하고 소신이 뚜렷한 성격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았다고 해서 ‘여자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현미]

1962년생. 전북 정읍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국토교통부장관이다. 2002년 대선 정국 때는 노 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서 부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후에는 청와대에 입성해 대통령비서실서 국내 언론을 담당했다. 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정치에 대한 철학과 각론이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1959년생. 경남 남해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난 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의원에게 경남선거대책본부장을 맡겼다. 이후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면서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전해철]

1962년생. 전남 목포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이 1993년 설립했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노 전 대통령을 모시고 보좌한 데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며 본인이 친노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철희]

1964년생. 경북 영일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엔 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선거특별본부 간사를 맡았다.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보수의 정체성을 일깨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최근 <노무현과 바보들>의 시사회를 열었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

1964년생. 대구 달성 출신으로 현재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보 캠프인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특히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희망돼지 저금통 사업을 이끌며, 선거운동을 위한 국민성금을 모아 ‘돼지엄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종민]

1964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이 기자였을 때 쓴 기사를 눈 여겨봤다고 한다. 이후 김 의원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한 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며, 참여정부 임기 만료까지 청와대서 노 전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노 전 대통령의 뜻을 따라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병준]

1954년생. 경북 고령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출범 후에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을 구체화했다. 또 대통령의 정책실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 좌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원조 친노였던 김 위원장은 보수의 길을 걷게 되고 친노계 인물들과는 멀어졌다.

[서갑원]

1962년생.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92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비서로 일하며 정치에 입문했다. 참여정부 때는 태통령비서실서 의전비서관, 정무1비서관을 지내 ‘대통령의 그림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현재는 신한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다.

[김경수]

1967년생. 경남 고성 출신으로 현 경남도지사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다. 그는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다. 문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지사는 “봉하마을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최근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1심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 (사진 왼쪽부터)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유시민]

1959년생. 경북 월성 출신으로 현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2013년 2월 정계 은퇴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이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모두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유 이사장은 독일 유학 기간 중 잠시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나 경제 지식을 공유하며 신뢰를 쌓아나갔다. 이후 유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하며 대표적인 친노 인사가 됐다.

[안희정]

1965년생. 충남 논산 출신으로 36·37대 충청남도지사를 맡았다. 절친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더불어 참여정부 시절 ‘좌 희정-우 광재’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노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았다.

안 전 지사는 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었으나 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에서 제명됐다. 검찰이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불명예로 막을 내렸다.
 

▲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요시사>가 노무현 사람들 23명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사진공동취재단

[이광재]

1965년생.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전 강원도지사다. 노 전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일한 보좌관이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면서 실세로 부상했다. 그러나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대법원서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강원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는 정무직서 물러난 상태로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명숙]

1944년생. 평양 출신으로 참여정부서 환경부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한 전 총리를 후계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재직 중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전직 국무총리 중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2017년 8월 만기 출소했다.

[양정철]

1964년생. 서울 출생으로 현 민주연구원 원장이다. 노 전 대통령을 통해 언론개혁을 이루고자 했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을 퇴임부터 서거할 때까지 보좌했고, 장례위원회 실무를 주관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을 치렀다. 이후 노무현 재단의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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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