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빠른 대회 진행과 골프 룰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60여년 만에 대대적인 ‘룰 변경’을 시도해 적용에 들어갔다. 룰 개정 주체들이 자화자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선수들은 “이상하다” “말도 안 된다” “효과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하다”
지난 3월3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가든스의 PGA 내셔널 챔피언스 코스(파70·7125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 GA)투어 혼다 클래식 3라운드 4번홀에서 리키 파울러(미국)가 친 티샷이 페어웨이에 박혀 드롭을 해야 했다. 이때 파울러는 마치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려는 듯 볼을 엉덩이 아래쪽에서 떨어뜨리려는 자세를 취했고, 갤러리들은 폭소를 금치 못했다. 새로운 골프 규칙에 대한 조롱이었다.
파울러는 앞서 열린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 챔피언십에서 어프로치샷 생크로 OB (Out of Bounds)를 낸 후, 어깨 높이에서 드롭을 하다가 벌타를 받았다. 이에 대해 파울러는 “무릎 높이에서 드롭 하는 건 너무 우스꽝스럽다”며 “골프 규칙 개정 소식을 듣고 나도 무릎 높이에서 드롭을 해봤는데 이는 끔찍한 변화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규칙 개정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선수들 호응 얻지 못하는 이유는?
두 달 만에 여기저기 비판 목소리
새 규정을 비판하는 선수는 파울러뿐만이 아니다. 혼다 클래식 1라운드를 마친 세계랭킹 3위 저스틴 토머스(미국)도 “정상적인 플레이로 손상된 클럽을 교체하지 못하게 바뀐 새 규정은 ‘말이 안 되는 규칙 목록’에 추가해야 한다”며 “바뀐 규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토머스는 10번홀에서 티샷이 나무 뒤에 떨어진 뒤 9번 아이언을 이용한 환상적인 트러블샷으로 빠져나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토머스는 “클럽이 나무를 때리거나 아예 부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린 뒤 “스윙을 한 뒤 아이언의 호젤 근처가 나무껍질을 긁어낼 정도로 세게 부딪혔고 팔에 큰 충격도 왔다”고 설명했다. 팔 부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9번 아이언이 휘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플레이 도중 정상적으로 손상된 클럽은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교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상적이건 비정상적이건 손상된 클럽은 ‘교체 불가’다.
토머스는 “플레이를 하면서 화가 나 부러뜨리거나 휘게 했다면 교체할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간다”면서 “하지만 샷을 하다가 나무를 때려 부러지거나 휘어진다면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며 날을 세웠다.
미국골프협회·영국왕립골프협회 주도
빠른 대회 진행 초점 두고 대대적 개정
토머스는 페어웨이에서 휘어진 샤프트를 다시 원상 복귀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포기했고, 이후 ‘9번 아이언 거리’인 155~160야드가 남은 상황에서 피칭웨지를 잡고 120%의 힘으로 있는 힘껏 스윙을 하며 힘겹게 경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토머스와 같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손상된 클럽 교체 금지’로 피해를 본 선수는 또 있다. 바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우즈는 WGC 멕시코 챔피언십 3라운드 8번홀에서 9번 아이언이 나무에 맞아 손상된 이후, 피칭웨지나 8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해야 했고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외에도 관심을 모았던 ‘캐디 뒤 봐주기 금지’ 조항도 플레이 속도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하고 논란만 일으키고 있다.
이 룰의 적용으로 첫 번째 벌타는 유러피안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클래식에서 중국의 리하오퉁이 받았다. 당시 리하오퉁은 퍼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고 캐디는 리하오퉁이 어드레스를 취하려는 순간 서둘러 옆으로 빠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벌타. 수많은 선수가 이 상황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비판했다.
PGA투어 혼다 클래식 3라운드에서도 미국의 애덤 솅크가 벙커샷을 할 때 캐디가 후방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벌타를 받았다. 그는 이 홀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벌타가 더해져 결국 3타를 잃고 말았다. 솅크는 “어떤 의도가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슬로 플레이를 막기 위한 ‘깃대 꽂고 퍼팅’과 ‘40초 이내 플레이’도 별 효과가 없었다. 깃대 꽂고 퍼팅은 빼는 선수와 꽂고 하는 선수들이 섞이며 시간 단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효과 없다”
또 플레이 속도를 장려하기 위해 40초 내 스트로크와 준비된 선수가 먼저 샷을 치는 ‘레디 골프’가 권장되었지만, 대회 도중 선수들이 레디 골프를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슬로 플레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제네시스 오픈 챔피언 J.B. 홈스는 최종 라운드 경기 시간이 무려 5시간30분이나 됐다. 이유는 아직 슬로 플레이 벌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룩스 켑카(미국)는 브라이슨 디섐보를 비판하면서 “톱스타들에게 슬로 플레이 벌타를 줄 배짱을 가진 사람이 없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