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권력자들의 별장은 지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3.25 09:57:35
  • 호수 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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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못 찾는 아방궁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별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력 권력자들은 그들의 이름을 딴 별장을 갖고 있었다.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해 있어 ‘아방궁’이라는 의혹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요시사>가 역대 권력자들의 별장을 종합해봤다.
 

▲ 청남대

강원도 고성군의 ‘화진포’는 넓이 2.3㎢, 둘레 16㎞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 호수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해 유력 인사들의 별장이 다수 위치해 있다. 특히 권력자들의 별장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 김일성 전 북한수상의 별장이 위치해 있다.

근현대사
발자취들

여름휴가 때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화진포 별장을 찾았다. 이승만 별장은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 단층 슬래브 형태로 세워진 건물이다.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숲이 운치를 더한다. 현재는 이 전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침실과 집무실, 거실 등이 이 전 대통령의 생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이 전 대통령 내외가 사용한 유품도 전시돼있다.

호수 맞은편에는 김일성 전 북한수상의 별장이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화진포 외에도 경남 진해, 제주 구좌읍 등의 별장에 머물렀다고 한다. 

‘화진포의 성’은 일명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린다. 화진포의 성은 1938년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의 요청에 의해 독일인 H. 베버가 건축했다. 베버는 나치정권을 거부하고 우리나라로 망명한 건축가다. 건물은 분단되기 전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됐다. 이후 1945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한 귀빈관으로 쓰였다.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김 전 수상이 자신의 부인 김정숙과 자녀들인 김정일, 김경희 등을 데려와 귀빈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으로 변경돼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의 산정호수에는 김일성 별장터가 있다. 호수와 맞닿은 김일성 별장터는 전망대 부지 1700㎡ 규모다. 지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별장이 사라졌다. 산정호수를 바라보는 전망대 난간에 포천시가 설치한 ‘김일성의 별장’이라는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급 천혜의 요새 입지
첩첩산중 부지에 철옹성

표지판에는 “동족상잔 이전에는 38선 북쪽에 속해 있어 북한의 소유지였다. 산정호수와 명성산의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산정호수의 모양이 우리나라 지도를 뒤집어놓은 모양이라 작전구상을 위해 별장을 지어놓고 김일성이 주로 머물렀다고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최근 포천시가 김일성 별장 복원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지난해 11월 2022년 준공을 목표로 김일성 별장 복원 사업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남북 평화무드를 조성함은 물론,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복수의 매체 보도에 따르면 복원 사업비는 54억원 규모였으며, 이 예산으로 부지를 매입해 별장 1채(330㎡)를 복원하고, 관련 유물 등을 구입 및 제작해 전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고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복원 사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 같은 추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다. 보수단체는 별장터를 찾아가 복원 사업 반대시위를 벌였다. 포천시 측은 “지역 주민들이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김일성 별장 복원을 원해 검토했지만 복원을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해명했다.
 

▲ 김일성별장 ⓒ한국관광공사

이기붕 별장은 화진포 사구에 지어졌다.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건설된 별장은 이승만 별장과 화진포의 성 사이 소나무 숲에 위치해 있다. 해방 후 북한 공산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 이후 5대 부통령을 지낸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의 개인 별장으로 사용됐다.  

다른 별장과는 다르게 규모가 작고 수수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각 벽면에는 화진포를 바라볼 수 있도록 큰 창이 나있다. 내부는 복도 형식으로 돼있으며 당시 사용했던 문갑, 촛대, 라디오, 주전자 등을 전시해놨다. 

분단선 이남
김일성 별장?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바다의 청와대’로 불렸던 경남 거제시 저도의 청해대서 여름휴가를 즐겼다. 저도는 면적 43만4181㎡, 해안선 길이 3150m의 큰 섬이다. 섬 내부에는 청해대를 중심으로 수행원 및 경호원을 위한 8개 동의 숙소, 막사, 팔각정 건물, 9홀 규모의 골프장, 자가발전소 등과 대한민국 지도와 태극문양을 본뜬 연못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이곳 저도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35년여가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글을 남겼다.

저도는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통신소와 탄약고로 이용됐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주한 연합군의 탄약고로 사용됐다. 휴전 후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휴가지로 각광받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저도를 찾았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로 공식 지정됐다.

20년이 지난 1993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별장 지정을 해제하면서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그러나 2008년 대통령 경호실이 저도를 다시 대통령 별장으로 지정해 국방부 소유가 됐다. 현재는 해군의 관리하에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민간인 찾기 힘든 곳에 떡하니…
화진포에 이승만·김일성 하우스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시민들은 저도 개방 운동을 펼치고 있다. 거제시발전연합회는 지난 2월 거제시청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경호실은 저도의 대통령 별장 지정을 해제하고, 정부는 대통령 공약(저도 개방)을 즉시 이행할 것”이라며 “저도는 ‘군사보호구역’이란 핑계로 시민의 출입을 통제한 채 지난 2013년 8월 해군 장성 부인 40여명이 춤 파티를 벌이는 등 소수 특권층과 해군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에는 거제시발전연합회 회원을 비롯, 시민 400여명이 모여 저도 반환을 촉구하는 해상시위를 벌였다.
 

▲ 이기붕 별장 ⓒ한국관광공사

저도뿐 아니라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별장이 있다.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속칭 ‘김학의 별장’이 그것이다. 건설업자 윤중천씨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고위직 인사들에게 ‘별장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지은 아방궁에 비유된다.

윤씨는 부론면 골짜기에 별장 5∼6개동을 짓고 성접대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별장에는 수영장과 연못 등이 있으며, 수입 대리석으로 치장된 건물 내부에는 드럼과 스탠드바가 있는 노래방, 찜질방, 영화감상실, 당구장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는 지난 18일 “김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 용산 참사 사건 조사를 위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활동 기간을 2개월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대검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을 조사단이 있는 서울동부지검으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승만은?
박정희는?

이명박 별장은 경기도 가평군의 ‘된섬’에 위치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부터 서울시장 때까지 애용한 별장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 소유하고 있다. 

해당 별장은 국도 46호선(경춘국도)서 신청평대교를 건너 설악면 쪽으로 가다가 사룡리 방면으로 10㎞가량 떨어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북한강 자락에 위치해 있다. 별장이 있는 된섬은 지역 주민들 사이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대로변서 진입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별장에 닿을 수 있다. 남향으로 북한강 줄기가 흐르고 북한강 뒤로는 산이 막고 있는 밀폐된 구조다.

입구를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면 20m 간격으로 놓인 단층주택 4개동이 남향을 보고 나란히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15평형 3개동과 25평형(사진) 1개동이다. 건물 사이에는 테니스장 등이 위치해 있다. 별장 진입로 입구는 철대문으로 막혀 있다.

주택 내부는 방과 화장실 각 한 개, 그리고 거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거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제작돼 거실서 북한강과 강변의 맞은쪽 야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평소에는 두꺼운 커튼으로 내부가 가려져 있다. 앞마당은 수백평의 잔디밭과 벚꽃나무 등 정원수로 단장돼있다.


이곳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06년 4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소속 안민석 의원이 “테니스협회장이 여성들을 파티에 참석하도록 주선했다”며 “이 자리서 이명박 서울시장과 테니스협회장은 여흥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휴가 때 주로 찾아
김학의 별장 내부는?

안 의원의 의혹 제기에 당시 서울시 측은 “별장 파티는 없었고 모임의 날짜나 별장 소유 모두 허위”라며 “이런 정치공세를 계속해서 시정을 방해하고 이(명박) 시장을 음해해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정치공작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 2004년 7월 테니스 동호인 모임의 수련회에 가서 저녁에 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테니스를 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해당 별장은 지난 1988년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서 현대그룹 회장으로 승진했을 당시 건축됐다. 호화 파티 의혹이 제기됐을 때 서울시는 “해당 별장은 현대건설이 장기 근무한 임원들을 위해 지어 나눠준 것”이라며 별장의 실소유주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 이명박 별장

청남대는 이른바 ‘대통령의 별장’으로 불린다. 역대 대통령들은 경호 문제로 이곳에 자주 머물렀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5명의 대통령이 20년간 88회, 366박, 471일을 머물며 휴양을 하고 국정을 구상하던 대한민국 공식 대통령 별장이었다.

일반에게 개방된 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5년 1월 청남대를 방문하면서 공식적인 역대 대통령의 방문 횟수는 89회 472일로 늘었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영춘재’라는 이름이었으나 1986년 7월 지금의 청남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위치해 있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역대 대통령들의 동상이 세워진 공원이 조성돼있다. 그 외 본관과 헬기장, 오각정, 양어장, 그늘집, 골프장, 테니스장, 수영장, 경비부대원 부속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로 불리며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대청호수와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별장을 둘러싸고 있다. 청남대는 그동안 천혜의 자연환경과 대통령 경호급의 보안 경계로 베일에 가려진 철옹성이었다.

역대 대통령
89회 방문

현재 청남대는 일반에게 공개돼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청남대를 일반에 개방하면서 “대통령이나 그 가족이 쓰는 것보다는 국민 누구나 찾을 수 있어야 한다”며 개방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1월 청남대는 누적 관람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2400여명 수준이다. 청남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년마다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이 걸으면 길도 상품?
여름휴가 보낸 장태산 휴양림 인기

관람객들 사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여름휴가를 보낸 대전 장태산 휴양림이 인기다. 장태산 휴양림은 충서구 장안동에 위치해 있으며, 계룡시 출신인 고 임창봉씨가 조성한 것을 2002년 대전시가 매입했다.

장태산 휴양림은 전국 최초 민간 휴양림, 국내 유일의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대전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여름 문 대통령 내외가 이곳을 휴가지로 결정하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 방문 이후 이곳의 관람객은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민이 주로 찾던 곳에서 수도권은 물론, 영남과 호남 등 전국 각지서 관람객이 찾아오는 전국구 휴식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국내 유일 메타세쿼이아 숲
방문 이후 관람객 2배 증가

이 때문에 지역 정가에서는 장태산 휴양림을 활용해 정원관광산업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인식 대전시의원은 지난해 11월 시정질의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지난 여름휴가 기간에 장태산 산림욕을 즐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장태산 휴양림은 전국적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현재 수많은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며 “대통령이 거닌 길에 이름을 붙여 대통령 관광 코스로 명칭하는 등 대통령의 스토리와 장태산을 연결시켜 관광코스 개발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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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