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 모독’ 자유한국당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3.18 10:25:20
  • 호수 12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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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끼’ 제대로 몰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풀릴 것처럼 보였던 여의도의 날씨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쳤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야의 대치 정국으로 3월 국회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4선 의원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 원내대표가 이 같은 결과를 예상치 못했을 리 없다.
 

“국민 여러분,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힘겹게 피와 땀과 눈물로 쌓아올린 이 나라가 무모하고 무책임한 좌파정권에 의해 쓰러지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김정은 대변인?
묘수냐 악수냐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은 약 30분 동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평소 침착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들까지 격분해서 나 원내대표를 향해 고성과 삿대질을 해댔다. 특히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민주당 의석에선 “어떻게 대통령을 수석대변인이라고” “그만해” “제발 표현 좀 가려하십시오” “취소해, 사과해” 등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측은 수석대변인이라는 표현이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은 외신의 보도를 인용했을 뿐이라는 논리다.

지난해 9월26일 <블룸버그 통신>의 한국 주재기자가 쓴 기사(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남한의 문 대통령,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 되다)를 일컫는다.


청와대는 즉각 입장을 내놨다. 지난 12일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입장문을 통해 “나 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모독하는 것이 혹여 한반도 평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입장문을 통해 ‘모독’을 강조했다. 이는 민주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다. 본회의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연 이해찬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발언 철회 및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공방전은 ‘윤리위 제소’로 확전됐다. 발언이 있은 다음 날 오전, 민주당은 국회 윤리위원회에 나 원내대표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다. 윤호중 사무총장이 대표 발의했으며 민주당 국회의원 128명 전원이 찬성했다.

“문통은 김정은 대변인” 정국경색
실보단 득 ‘나다르크’로 급부상

나 원내대표는 격분했다. 그는 민주당의 제소 소식에 대해 “의회 헌정사상 없었던 일”이라며 “야당 원내대표 연설을 갖고 윤리위에 제소한다는 것은 국회를 같이하지 말자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징계안서 나 원내대표가 연설을 통해 국회법 제25조, 제146조 등을 비롯해 국회의원윤리강령과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국회법 제25조는 품위유지의 의무 조항, 제146조는 모욕 등의 발언 금지 조항이다. 

한국당도 가만 있지 않았다. 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윤리위에 맞제소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연설을 방해했다는 사유다. 이로써 두 달이 넘는 공전 끝에 열린 3월 국회는 개회 수일 만에 다시 파행 위기에 놓였다.
 

▲ 회색 만연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3월 국회가 안갯속에 휩싸이자 또 다른 갈등 요소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선거제 개혁안과 개혁입법을 패키지로 묶어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자는 데 공감하고 있는 것. 구체적인 안들을 조속히 확정 지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쓰든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연대’를 저지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 개혁을 하면서 제1야당을 ‘패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연대의 목적이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용이라고 해석한다.

한국당은 의원 총사퇴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한국당은 논의 구조서 빠진 채 패스트트랙에 태워진 선거법이 오는 12월 본회의에 상정돼 통과된다면 이 제도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며 “차라리 의원직 총사퇴를 한 뒤 조기총선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헌정 초유의
쌍방향 제소

4선 의원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지도부가 이 같은 결과를 예상치 못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오히려 의도된 결과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실제 한국당을 제외한 야권 내에서는 민주당의 과민반응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민주당이 ‘나경원 띄워주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정치 9단’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2일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민주당 전략은 나 원내대표를 잔다르크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설령 3월 국회가 파국을 맞더라도 한국당 입장에서는 딱히 손해 볼 일은 없다. 국회가 문을 열지 않으면 부담은 여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선거제 개혁안, 검경수사권 조정, 사법 적폐 청산 등 사법개혁, 5·18 왜곡 폄훼 처벌 내용이 담긴 5·18특별법 개정안, 유치원 3법, 탄력근로제 확대 관련 법안, 최저임금 결정구조 변경 관련 법안 등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 이해찬·홍영표 징계안 제출하는 자유한국당

하나같이 한국당이 반대하는 현안들이다. 선거제 개혁안에 대해 한국당 측은 “내 손으로 직접 뽑는 국회의원이 좋은지, 정당이 알아서 정해주는 국회의원이 좋은지, 직접 국민들께 물어보라”고 답한다. 사실상의 반대 의사다. 

시간은
한국당 편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도입에 대해서도 한국당은 공수처가 검찰·경찰의 ‘옥상옥’이 될 우려가 있으며, 상설특검법이나 특별감찰반 제도라는 대안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 외 5·18특별법 개정안, 유치원 3법, 탄력근로제 확대 관련 법안 등도 한국당이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쪽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다. 국회 공백이 길어지면 대통령의 정책에도 제동이 걸린다. 당장 정부의 개각으로 개최돼야 할 7건의 인사청문회도 정상적인 진행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내각 공백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잇따라 열릴 인사청문회도 정쟁으로 파행을 맞을 공산이 커졌다. 

시간은 한국당의 편이다. 경제 악화와 미세먼지 등 최근 정부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여기에 민주당이 나 원내대표를 제소해 한국당은 여당으로부터 탄압받고 있다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의 숙원과도 같은 ‘보수 단일대오’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적어도 한국당의 내부결집은 이뤄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이 끝난 후 한국당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 원내대표에게로 달려가 그를 격려했다. 무엇보다 지난 2·27전당대회서 김진태 당시 당 대표 후보의 낙선으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태극기부대에게 큰 점수를 얻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다가올 21대 총선서 이들의 지지를 표심으로 이어가려는 복안으로 읽힌다.

‘야당 탄압’ 프레임 성공
보수 단일대오 밑그림도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 13일 BBS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당내 많이 유입된 친박 성향의 당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원하는 내용들로만 (나 원내대표의 연설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봐서는 다분히 전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앞서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대여투쟁 로드맵’을 공개한 바 있다.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그는 당의 대여투쟁 목표로 ▲싸워서 이기는 정당 ▲대안을 가지고 일하는 정당 ▲미래를 준비하는 정당 등을 제안했다.
 


‘싸워 이기는 정당’에 대한 세부 과제도 공개했다. 좌파독재 저지 투쟁, 문재인정권 경제실정백서위원회 출범,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개혁 등이 그것이다. 이어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좌파 포퓰리즘 정책’, 대북정책은 ‘가짜 평화정책’으로 규정했다.

한국당 지도부가 확실한 방향성을 보이면서 당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1∼13일 조사해 14일 공개한 3월2주 차 주중집계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포인트 오른 32.3%로 집계됐다. 4주 연속 상승이자 1개월 만에 7.1%포인트나 오른 가파른 상승세다.

지지율 1위인 민주당과의 격차도 5%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음 목표는
4·3재보선

한국당은 기세를 이어 4·3재보궐선거의 전승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 13일 <일요시사>를 통해 “당원들의 반응이 아주 뜨겁다”며 “격려 전화가 수시로 온다. 기세를 탔다는 느낌이다. 이대로 재보선서 좋은 성적을 내면 지난해 6·13지방선거 때 당한 참패를 만회할 수 있다. (나 원내대표가) 집토끼 몰이에 제대로 성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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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