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여러 작가들이 모여 진행하는 그룹전의 성패는 ‘조화’서 갈린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얼마나 조화롭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시회의 질이 달라진다. 소피스 갤러리는 김상훈·박진희·한정현 작가의 작품을 한 데 모았다. 세 작가는 익숙한 매체를 사용해 낯선 상황을 연출, ‘낯선 익숙함’을 표현했다.
서울 역삼동 소재의 소피스 갤러리가 지난 13일, 오프닝 리셉션을 시작으로 세 작가의 그룹전을 개최했다. 세련된 감각의 아트 퍼니처로 주목받아온 김상훈과 한정현 그리고 레고블록과 직물을 이용한 뜨개질로 벽에 걸린 회화와 유사한 형태의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박진희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작품
미술은 일상으로, 디자인은 기능성을 수반하는 시각적 오브제로 교차하면서 동시대의 미술과 디자인은 멀고도 가까운 사이로 이합집산하는 경향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비단 미술과 디자인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장르뿐만 아니라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장르 간의 경계와 벽이 허물어져가는 동시대의 맥락서 진행된다.
세 작가의 작품들은 디자인과 미술 그리고 회화와 오브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오브제로서 자리하며 독창적인 질감을 드러내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소피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낯설어 보이는 광경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매체를 사용한 작품들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훈의 작품은 마치 페인팅을 캔버스 밖으로 옮겨놓은 듯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친 인상과는 달리 메모리 폼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시각적 특성과는 상이한 촉각성을 지닌다.
국내외 주목받은 세 작가
가깝고도 먼 장르의 조합
작품의 표면은 추상표현주의서의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이나 색면처럼 자유롭고 유연한 효과를 추구하지만, 독특하게도 그 결과물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가구로 나타난다. 전형성서 탈피함과 동시에 가구의 실용성이라는 본질과 예술성을 모두 확보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크랜브룩 아카데미 석사과정을 졸업한 김상훈은 Design Miami, Design Miami Basel, ICFF New York, iSaloni Milan, 100% Design London, Neocon Chicago, Maison & Objet 등 해외 굴지의 디자인 아트페어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출품해왔다. 2010년에는 I.D Annual Design Review 및 Winner of ICFF Studio 등 유명 디자인 어워즈에서 수상 및 선정됐고 기업과 활발한 협업을 통해 국내외서 주목받았다.
한정현은 가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인 나무로 제작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된 특징은 가구 본연의 촉각성과 물성, 기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재료의 특성을 바탕으로 비틀림과 꺾임, 끼워 맞춤 등의 기법을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서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누에고치를 모티브로 한 커피 테이블이나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벤치 등을 살펴보면 대칭과 비대칭의 경계를 넘나든다. 유려한 직선과 곡선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유희하면서도 그 안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조형언어를 관찰할 수 있다. 상판이 삼각형으로 중첩되는 작품 ‘Triad&Beyond’는 박선기의 모빌조각과 협업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과 크랜브룩 아카데미를 졸업한 한정현은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London Designers Block, Salon de Meuble de Paris 등 국내외 전시와 가구박람회에 참여했다. 세계적인 디자인 매체 <Wallpaper*>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언론에 소개됐다. 2007년부터는 디자인 스튜디오인 Chairs on the Hill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메모리 폼·나무·레고블록
위트 있고 자유로운 표현
박진희는 레고블록을 작품에 사용한다. 보통 액자틀은 나무 등의 재료로만 구성되는데 박진희는 레고블록을 사용, 반복적으로 층위를 만들어 작품의 일부분으로 기능하게 한다. 동시에 물감이 묻은 캔버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레이스와 직물 등으로 뜨개질해 단단한 액자틀과는 대조적인 텍스처를 선보인다.
상반된 질감의 재료를 통해 오브제와 회화 간의 경계를 환기시키려는 시도다. 또 박진희는 대비되는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내면에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고자 했다. 촘촘히 짜인 직물 속에 보일 듯 말 듯 새겨진 텍스트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면의 파편을 관람객에게 암시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박진희는 단국대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국민대 대학원에서는 회화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서울미술관, 문화역서울284, DDP, 청주국제비엔날레, 리각미술관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Context Art Miami, CIGE, Art Silicon Valley San Francisco, 키아프, 아트부산 등 국내외 아트페어서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는 ‘낯설지만 익숙해서’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촉각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세 작가의 작품을 한 데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람객들은 일반적인 관점서 가구 혹은 평면 오브제로 단순히 분류될 수 있지만 그런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장르 구분을 극복해내는 결과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균형을 조율
소피스 갤러리 관계자는 “낯섦과 익숙함 사이서 균형을 조율해나가는 흥미로운 지점을 조명하고,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점과 경계에 대한 거대 담론서의 접근보다는 재료와 형태서 나오는 위트있고 자유로운 표현을 만끽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3월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