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권주자 3인방’ 캠프 전력 비교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2.18 10:16:21
  • 호수 1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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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친이? 그림자 대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드디어 대진표가 완성됐다. 자유한국당 당권주자들은 지난, 12일 2·27전당대회 후보 등록을 마감했다. 이로써 황교안·오세훈·김진태(기호 순) 세 명이 경선을 치르게 됐다. <일요시사>는 각 후보들의 캠프 전력을 비교, 분석했다.
 

▲ 2·27 자유한국당 대진표가 완성된 가운데 어느 후보가 당권을 잡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계제로였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당대회 후보 등록일인 지난 12일을 전후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눈치게임이 펼쳐졌다. 황교안 후보의 출마 외에는 모든 것이 예측불허였다. 시시각각 변하던 상황은 3인 경선으로 좁혀졌다.

보이콧 철회
정면 승부

오세훈 후보와 홍준표 전 대표의 출마 여부가 최고의 관심사였다. 먼저 결정을 내린 사람은 홍 전 대표였다. 그는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그는 “이번 전당대회는 모든 후보자가 정정당당하게 상호 검증을 하고 공정하게 경쟁해 우리 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한국당 내부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홍 전 대표는 당권주자 빅3로 분류되는 거물이다. 그의 불출마 선언으로 2·27전당대회가 반쪽짜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엄습했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홍 전 대표의 불출마 선언 직후 “불출마 불씨가 다른 당권주자에게까지 옮겨붙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원내 당권주자들의 불출마 러시도 이러한 우려를 부채질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당 대표 출마를 고려하던 심재철·정우택·주호영·안상수 의원은 출마의 뜻을 접었다.

심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무계파 공천으로 총선 승리를 이루고 정권 탈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는 시대적 사명으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지만, 오늘 출마 의사를 철회한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당 대표 경선에 연연하는 것은 대표 선출에 누를 끼칠 수 있고, 당원과 국민들의 성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대표 경선의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통합 축제가 되어야 할 전대가 분열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전대 절차조차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당의 미래가 이런 식으로 휩쓸려가는 것을 막아보고 싶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끝까지 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당 화합과 보수통합, 그리고 총선 승리를 위해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황·오·김 후보 등록 사실상 양자대결
‘황’ 친박·TK로 낙승? ‘배박’이 변수


불출마 불씨는 더 이상 확전되지 않았다. 황 후보, 홍 전 대표와 함께 빅3 중 한 명으로 꼽힌 오 후보는 보이콧을 했다가 철회하고 지난 12일 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는 후보 등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이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정당이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이념만을 추종하는 정당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각오를 다졌다.

엇갈린 포석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황 후보와 김진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당권주자들은 2·27전당대회가 2차 북미정상회담(2월27∼28일)과 겹친다는 이유를 들어 날짜를 미뤄야 한다고 당 지도부에 요구했다. 전당대회 연기를 주장하는 당권주자들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블랙홀처럼 그날 이슈를 잡아먹을 것이 자명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가 기존 입장을 고수하자 황 후보와 김 후보를 제외한 당권자주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일부 당권주자들은 당 지도부가 황 후보를 당 대표로 세우려한다는 ‘옹립설’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 황교안 전 국무총리

홍 전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언제는 흥행을 위해서 원칙까지 바꾸며 책임당원 자격을 부여하더니, 인제 와서는 공당의 원칙 운운하면서 전대를 강행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노라면 참 어이가 없다”며 “당이 왜 그러는지 짐작은 가지만 말하지는 않겠다. 모처럼의 호기가 특정인들의 농간으로 무산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황 후보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내놨다.

황 후보와 오 후보는 논란이 됐던 당 대표 출마 요건을 당 지도부로부터 인정받았다. 당 지도부는 지난달 31일 책임당원 자격 요건 변경안을 의결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서 열린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 선거관리위원회서 요청한 책임당원 자격 요견 변경안을 의결했다”며 “요건 변경에 기탁금을 납부하고 등록하는 조항이 있는데, 기탁금을 납부하고 후보자 등록을 마치면 책임당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당 대표 경선은 황교안·오세훈·김진태 후보 3파전으로 결정됐다. 기호 추첨 결과 황 후보가 1번, 오 후보가 2번, 김 후보가 3번으로 결정됐다. 

앞서가는 황
이대로 당선?

황 후보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5층에 캠프를 차렸다. 여의도 최고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대통령 3명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이곳에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이곳에 대선 캠프를 꾸려 당선됐다. 2012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가 이곳에 꾸려졌다. 2007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외곽 조직이 이곳에 자리한 바 있다.

조순, 고건 등 서울시장 2명도 이곳에 캠프를 차려 당선됐다. 한때 대선 출마를 고려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이곳에 사무실을 두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캠프 인사들은 황 후보가 박근혜정부 국무총리였던 시절 총리실서 근무했던 사람들 위주로 꾸려졌다. 캠프 총괄을 맡은 심오택 전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을 필두로 정무와 메시지를 담당하는 이태용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이 그들이다. 오균 전 국무조정실(총리를 보좌하는 행정기관) 국무1차장은 정책을 맡았다. 대변인은 김무성 전 대표 시절 상근부대변인을 지낸 정성일 대변인이 수행하고 있다.


황 후보와 경기고 동문인 황성욱 변호사는 캠프의 법률 지원을 담당한다. 이들은 자타공인 친황(친 황교안)계로 불린다.
 

▲ 당권도전 기자회견 갖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오 후보는 또 다른 여의도 명당인 극동VIP 4층에 자리했다. 지난 1990년 3당 합당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당선됐다. 1990년대에 걸쳐 신한국당 당사로 사용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1992년 민주자유당은 이 빌딩을 매입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을 배출한 명당이라는 이유에서다.

황 후보가 총리실, 국무조정실 출신 인사들로 캠프를 꾸렸다면 오 후보는 자신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사람들로 캠프를 채웠다.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캠프 실무진에 참여해 정무·기획·언론홍보 등을 총괄하고 있다. 선거총괄본부장을 맡은 박종희 전 의원은 16·18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소장파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서 오 후보와 함께 활동한 바 있다.

권택기·진성호 전 의원도 캠프에 상주하지는 않지만, 회의 등에 수시로 참여해 오 후보와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저력의 오
확장성↑

김 후보는 사무실로 쓰고 있는 국회 의원회관 437호에 캠프를 꾸렸다. 각각 대하빌딩, 극동VIP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한 황 후보, 오 후보와는 다른 전략이다.


변화무쌍한 선거전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의원회관 캠프는 외부인들의 출입이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실무진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어 의사결정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별도의 사무실 임대료가 들어가지 않는 점도 장점이다.

캠프 조직은 김 후보의 지역구인 강원도 내 야권인사들은 물론 전국 단위의 인사들까지 캠프에 합류시켜 꾸릴 것으로 알려졌다.

3자 구도이지만 사실상 ‘황교안 대 오세훈’ 양자 구도에 가깝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5·18폄하’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 후보는 최근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온전히 선거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당 대표 선거가 친박(친 박근혜) 대 비박(비 박근혜)의 계파 대리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황 후보는 친박 성향의 당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황 후보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대구·경북(TK)을 접수했다는 얘기를 한국당 내부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황 후보는 지난 9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 생가 앞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님,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지지자들은 황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통령 황교안”을 연호했다.

황 후보가 초반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변수는 존재한다. ‘배박(배신한 친박)’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황 후보는 지난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의 최근 방송 인터뷰가 배박 논란의 시작점이다. 지난 7일 유 변호사는 TV조선 <시사쇼 이것이 정치다>서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2017년 3월31일부터 수차례에 걸쳐 교도소 측에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으니 책상과 의자를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해달라고 했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황 후보는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이었다.

‘오’ 비박·수도권 우위 따라잡나
공천권 놓고 피 튀기는 대리전

유 변호사의 발언 이후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전대가 배박, 구박의 친목대회가 될 뿐”이라고 해 배박의 진위 여부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황 후보는 배박 논란에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자고 (생각)했다”며 “실제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일 때 1차 수사를 마치니 특검서 수사 기간 연장을 요청했었다. 수사가 다 끝났으니 이 정도서 끝내야 한다고 판단해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했다”고 배박론에 선을 그었다.
 

▲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오 후보의 저력도 만만찮다. 황 후보가 TK서 강세를 보인다면 오 후보는 서울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오 후보 역시 보수가 주목하는 잠룡이라는 점에서 황 후보와의 인물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국당 일각에서는 황 후보가 실패한 정권의 국무총리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인물론서 오 후보가 우세라는 분석도 있다.

확장성에선 오 후보가 황 후보를 앞선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개혁보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합리적인 보수층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서 황 후보에 앞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은 오는 23일 선거인단 모바일 투표를 시작으로, 선거인단 전국 현장 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대의원 전당대회 현장 투표를 실시한 뒤 합산해서 새로운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한다.

오 후보는 5·18폄하 문제와 관련해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며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그는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격하시키고 지역 주민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하는 소동이 있었다”며 “특정 지역의 당세가 약하다고 그 지역 정서를 무시하고 짓밟는 언동을 하는 건 국회의원으로서 잘못된 처신”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반면 황 후보는 앞으로 당이 주최하는 TV토론에 집중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최대한 자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실수에 따른 돌발 변수를 줄이고 현재 판세를 굳히기 위한 ‘안전 행보’로 해석 가능하다.

친박의 수성?
비박의 반격?

대진표가 짜여진 가운데 앞서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 결과가 재연될지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있었던 원내대표 선거서 나경원 의원은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비박·복당파의 대표주자인 김학용 의원을 더블스코어 차로 제치고 원내대표직을 차지했다. 친박계의 응집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만약 당 대표 자리까지 친박에 내어줄 경우 오는 21대 총선서 대대적인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박계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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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