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이 겨냥한 역린 풀스토리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21 10:39:40
  • 호수 1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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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만큼 참았다…내전 폭발전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비문(비 문재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 비문계 의원들이 문재인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다. 정권교체 이후 잠잠했던 친문(친 문재인) 대 비문의 계파갈등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비문이 겨냥한 역린(군주의 분노 또는 군주가 분개할 만한 그의 약점)은 무엇일까.
 

▲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작심하고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적했다. 지난 11일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개최한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재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탈원전 재검토
작심발언 토해

그는 이 자리서 “오래된 원자력과 화력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와 스와프(교환)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며 “신한울 3·4호기 문제는 다시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발전하고, 다가올 원전 해체 시장서도 대한민국 원자력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관심을 가지고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직접 겨냥한 듯한 발언도 내놨다. 그는 “원자력업계가 문정부 들어와서 탈원전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힘이 빠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집권여당의 현역 의원이 정부의 핵심정책에 속도조절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민주당 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전임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은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은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며 “송 의원의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부와 청와대도 우 의원의 지적에 힘을 실어줬다. 사태가 자칫 여당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으로 읽힌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기에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검토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금 쉽게 정책을 전환하면 안 된다”고 거들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원전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그러나 송 의원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15일 “화력발전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 발전은 장기간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해찬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성환 의원까지 나서 “석탄발전소의 대안으로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마치 고속도로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피하려고 중앙선을 넘는 것과 같다”고 송 의원을 비판했다. 여기에 여러 의원이 탈원전 논란에 가세하면서 당 내 갈등은 봉합이 아닌 확전 양상을 띠게 됐다.

문정부 상징 탈원전에 일침
당 지도부 합의사안도 지적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15일 청와대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도중에도 나왔다. 그러나 당시 문 대통령은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원전 신규 건설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 15일에는 때아닌 ‘순혈주의’ 논란이 불거졌다. 발단은 무소속 손금주·이용호 의원의 입당 불허 결정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두 사람에게 입당 불허가 결정된 이유는 '친문계의 반대'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 탈원전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선 비문(비 문재인)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 의원이 나서 두 사람의 입당 불허가 민주당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과거 로마의 번영은 개방에 있었다”고 말한 박 의원은 “순혈주의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축적되면 때때로 발전을 저해할 때도 있다. 민주당은 순혈주의를 고수해야 할 것인지 개방과 포용을 해야 할 것인지 겸손하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의원도 “이용호, 손금주 의원의 입당을 불허한 근거가 순혈주의 때문인지 우려된다”며 거들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정성호 의원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원 정수를 360명까지 늘리자는 주장이 거세지만 지금 국회 현실을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며 “의원 250명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해 12월, 민주당 홍 원내대표가 도입에 ‘원칙적 합의’ 입장을 밝혔으며, 현재 민주당 지도부가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협상 중인 사안이다.

앞서 한마디씩 내놓은 박영선(4선)·송영길(4선)·우상호(3선)·정성호(3선) 의원은 민주당 중진 의원이자 비주류인 비문계로 분류된다. 이들이 당청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자 문 대통령의 당선 이후 독주하던 친문계에 대한 비문계의 반격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발언권 있는
중진 나섰다

문정부 3년 차에 비문계 중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이에 정치권은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거론하고 있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서면 당청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진다는 속설이다.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집권 3년 차 징크스를 겪은 바 있어 속설이지만, 법칙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명박정부는 집권 3년 차였던 지난 2010년 친이(친 이명박)계와 친박(친 박근혜)계가 세종시 수정안에 이견을 보이면서 극렬 대치했던 바 있다.

박근혜정부 3년 차였던 지난 2015년 최고의 키워드는 ‘배신의 정치’였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은 국회 대표연설에 나서 박근혜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일침을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대통령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사실상 유 의원을 겨냥한 발언을 내놔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서도 집권 3년 차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이에 따른 구심력 약화 현상은 반복돼왔다. 문정부 집권 3년 차인 올해도 상황이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서 “정부 정책이 수립되면 ‘원팀’이 돼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하루가 지난 뒤 송 의원은 문정부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는 발언을 내놨다. 
 

▲ 이용호·손금주 무소속 의원의 입당 불허에 대해 우려 입장을 나타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해찬 대표가 지난 13일 기자회견서 “인위적 이합집산은 없다”고 말하고 이틀이 지난 15일 박영선·우상호 의원이 순혈주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즉 집권 3년 차에 원심력이 구심력을 앞서는 현상이 현 민주당 내부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은 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과 다가올 21대 총선의 상관관계를 언급한다.


3년 차 징크스
왜 이런 일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근 소폭 반등했지만, 지난 1년간 뚜렷한 하락세를 보여왔으며 최근의 반등세도 1주 만에 하락세로 꺾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4∼16일 사흘간 전국 성인남녀 1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17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결과, 지지율은 49.4%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 대비 0.2%p 하락한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1대 총선은 2020년 4월에 열린다. 올해 농사가 사실상 선거 결과를 좌지한다고 보면 된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비문계 입장서 공천 적신호이자 주류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명분이다. 

비주류는 총선서 언제나 ‘컷오프’ 대상에 오를 우려를 안고 있다. 대통령 입장서 집권 반환점을 넘긴 시점에 당정청의 합의된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자칫 메시지에 혼선이 생길 경우 레임덕에 걸려 집권 후반부에 대통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문도 이 같은 정치공학을 잘 알고 있다. 때마침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2년 차 중반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해 50% 이하로 진입했다. 비문 입장에선 회생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역린은 ‘탈원전’이다. 탈원전은 정계·재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 참여자가 이미 3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13일 서명운동이 시작되고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비문계 입장에선 탈원전이 도박을 걸어볼 만한 ‘빅 카드’인 셈이다. 여기에 탈원전을 반대하는 야권의 든든한 지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 야당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관한 이해관계자들의 공론화와 탈원전 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한다.

목소리 높이는 비문, 왜?
계파 역학관계 뒤바뀌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회에 예쭝광 대만 칭화대 교수를 초청해 가진 조찬간담회서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공론화 과정 없이 중단돼 매몰 비용이 적게는 4000억서 많게는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등 졸속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그동안 탈원전 반대 서명을 30만명에게 받았는데 이제는 바른미래당 등과 함께 국민 공론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서 “정부의 국가 에너지 정책 철학·기조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며 “공론화와 국민투표를 위한 범사회적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한국당은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전환할 시 그 내용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게 하는 에너지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의 중점 법안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보수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뿌리가 같은 민주평화당도 탈원전 정책 재검토에 힘을 실어줬다. 민주평화당의 최대주주인 박지원 의원은 지난 15일 송 의원의 발언을 지지한다며 “이러한 소신을 대통령 정책에 반하더라도 밝힐 수 있는 문정부가 돼야 성공한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 김경진 의원도 지난 17일 “송 의원의 발언을 지지한다”며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국민 의견을 수렴해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구 수석부대변인도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청와대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며 “송 의원의 발언에 당내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거들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내 비주류인 비문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은 ‘친문 대 비문’의 계파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여러 차례 계파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선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정치권의 키워드는 ‘친문패권주의’였다. 그해 안철수 전 의원은 친문패권주의에 반대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철수 신당을 창당했다. 박지원·주승용·김동철·문병호·황주홍·유성엽 의원 등 친문패권주의 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호남 국회의원 다수가 안철수 신당으로 넘어가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친문패권주의라는 단어는 올해 또다시 등장했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지난 14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의 민주당 탈당에 대해 “친문패권주의에 대한 경고”라며 “비핵화·일자리·탈원전 등 문정부의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김 이사의 말을 국민 대다수는 찬동할 것”라고 평가했다.

주류·비주류
바로 바뀔까?

반면 비문계 중진들의 목소리 내기를 친문 대 비문의 대립 구도로 보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비문이 문정부 집권 3년 차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는 해석은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비문계의 한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 15일, 순혈주의 논란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우리의 목표는 총선승리 단 하나뿐”이라며 “지금 논란도 고언을 하는 과정서 불거진 것이지 총선모드로 전환되면 원팀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탁금 1위 정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지난해 국민이 기탁한 정치자금 20억5000여만원을 여야 각 정당에 지급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가장 많은 기탁금을 받은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6억4000만원을 받았다. 2위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6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이어서 바른미래당이 4억6000만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각각 1억2000만원, 민중당이 4000만원, 대한애국당이 100만원을 지급받았다.

2017년에는 한국당이 1위였다. 당시 한국당은 12억9000만원을 받았다. 1년 새 기탁금이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당시 2위였던 민주당은 12억6000만원을 지급받았다. 민주당 역시 1년 새 기탁금이 반 토막 났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해 기탁금을 낸 국민은 총 2만2054명이었다. 이 중 99.8%에 해당하는 2만2013명이 10만원 이하의 소액 기탁자였다. 특히 4분기에 한 해 기탁금의 대부분인 20억700여만원이 모금됐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연말정산을 앞두고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정치자금 기탁금도 연말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탁금은 연말정산 시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된다. 10만원 초과 시 해당 금액의 15%, 3000만원 초과 시 2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기탁금은 국민이 선관위에 기탁하는 정치자금이다. 국회의원후원회나 중앙당후원회 등에 기부하는 정치 후원금과 다르다.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 등 국민 누구나 기탁금을 낼 수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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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