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도침이 참고 지내지만 언제고 반드시 이 성을 손아귀에 넣을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하였습니다.”
“뭐라!”
순간 복신이 안았던 수경을 품에서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쪽에 두었던 칼을 뽑아들었다. 그를 살피던 수경이 급하게 복신의 다리를 잡았다.
보검을 바치다
“지금은 아니 되옵니다, 장군.
“놓아라, 내 이놈을 당장에 죽이겠다!”
“저쪽에서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터이니 함부로 접근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복신이 물끄러미 자신의 다리를 잡고 있는 수경의 얼굴을 주시하다가는 이내 자세를 낮추어 칼을 옆에 놓고 다시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장군, 반드시 이 원수를 갚아주셔야 하옵니다.”
“내 반드시 이놈을 죽여 자네의 분을 풀어주고 말리라.”
복신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수건을 들고 수경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전하, 긴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밤이 깊은 시각 복신이 비단 보자기에 싼 보검을 들고 풍의 거처를 찾았다.
“그건 무엇이오?”
“이 검은 백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보검입니다.”
“보검이라. 그런데 그 보검이 왜 장군 손에 있소?”
“전하, 소장이 누굽니까?”
“그야, 사사로이는 당숙이고 선왕의 종제되시죠.”
“그런 연유로 제가 이 보검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왜국에 머물러 있던 부여 풍으로서는 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린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보검을 가져온 사유는 뭐요?”
“당연히 주인께, 전하께 돌려드리려 합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보검을 풍에게 건넸다.
풍이 건네받은 보검의 비단을 풀자 금으로 만든 손잡이가 불빛에 반짝였다.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탄식을 내뿜은 풍이 칼을 뽑아들었다.
휘황찬란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과연 보검이로고, 보검!”
풍이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하!”
복신이 은근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입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연히 짐의 나라지요.”
“하온데.”
“주저 말고 말씀하세요.”
복신이 여운을 주자 풍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국에 계실 때 도침에게 무슨 말씀을 들었었는지요?”
“그 당시에…… 그저 백제를 다시 세워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짐을 보위에 오르게 하겠다는 말 외에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신이 뜸을 들이자 풍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도침이 전하와 소장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 합니다.”
“뭐라!”
“이미 망한 백제왕국으로는 한계에 부딪치니 새롭게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죽일 놈이 있나!”
보검을 들고 있는 풍의 손이 떨렸다.
“하여 소장이 전하를 모시고 도침을 제거하려 하옵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풍도 저간의 사정, 복신과 도침의 알력 싸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 연유로 소장이 사사건건 도침의 일에 제동 걸고는 했었습니다. 전하의 나라, 우리 집안의 나라를 위해서.”
복신이 우리 집안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풍이 복신의 말을 새기며 보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제거하려 하오?”
“사사로이는 우리 집안의 일이니 전하를 중심으로, 또 그래야 전하의 권위가 널리 알려지니 만큼 반드시 전하께서 앞장서셔야 합니다.”
“이놈이 그래서 번번이 제동 걸고 나서고는 했군.”
풍이 이를 갈며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부여 풍이 최근 발생한 하인들의 일로 복신과 도침의 관계가 소원해진 점을 들어 화해를 위한 주선의 자리를 마련하고 도침에게 통보했다.
그를 전달받은 도침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참석을 망설이다 결국 호위병을 대동하고 대전으로 이동했다.
대전에 이르자 복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부여 풍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상잠 장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복신과 부여 풍 도침 제거 결심
보검에 눈멀어 제 발로 사지에…
도침이 주위를 둘러보며 거들먹거리자 풍이 가볍게 혀를 차며 난색을 지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전 일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명색이 장군이 그런 일로, 허허.”
도침이 말을 하다 말고 헛기침했다.
“그러게 말이오, 장군.”
“그래서 오지 않겠답니까?”
도침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호위했던 군사들을 바라보며 다시 헛기침했다.
“그래서 말인데. 장군께서 나서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말입니까?”
도침이 어깨까지 들썩였다.
“장군께서 직접 가시기 곤란하면 수하 병사들이라도 보내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도침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과 별다른 동향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를 살피며 자신의 병사들에게 복신을 정중히 모셔오라 호기롭게 지시했다.
“고맙소, 장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역시 장군이십니다.”
“허허 참, 계집도 아니고 그런 일로.”
도침이 말을 멈추고 풍의 눈치를 살폈다.
풍이 그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반응했다.
“장군, 이제 자리합시다.”
“그러시지요. 부하들에게 정중하게 모셔오라 했으니 반드시 올 겝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기다리고 있지요.”
두 사람만이 자리하게 되자 풍이 가만히 도침의 얼굴을 주시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만난 이후 지금까지 전하란 소리 한 번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행동거지를 보면 누가 왕이고 누가 신하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상잠 장군이 오기 전에 장군께 고마움을 표해야겠소.”
“고마움이라니요?”
“우리 백제의 대장군임을 알리는 증표로 가문 대대로 내려온 보검을 드리려 합니다.”
대장군이라는 칭호도 그렇지만 보검이라는 소리에 도침의 입이 벌어졌다.
그 모습을 살피며 풍이 병풍 옆에 있는 괘로 도침을 이끌었다. 풍이 괘의 문을 열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순간 머리에 쓴 왕관이 앞으로 쏠렸고 급히 양손으로 왕관을 잡았다.
“수고스럽지만, 장군께서 꺼내주시겠소.”
함정에 빠진 도침
도침이 풍의 모습을 살피며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아니 자신의 손에 들려질 보검을 자신의 손으로 꺼내겠다는 듯이 자연스레 몸을 숙여 손을 괘로 집어넣었다.
바로 그 순간 병풍이 스르르 젖히면서 복신이 도침의 목 뒤에 칼을 힘차게 밀어 넣었다.
누구의 손에 죽는지도 알지 못하며 고통스런 신음을 내지르며 도침의 머리가 괘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