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경주로 돌아간 문무왕은 장군 문충과 함께 당의 사절로 온 함자도(含資道, 황해도) 총관 유덕민으로부터 사비성과 평양으로 군사와 양식을 보내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
명을 받은 문무왕이 김유신을 호출하자 유신은 김인문과 함께 급히 경주로 돌아갔다.
유신이 도착하자 곧바로 회의가 열렸다.
군량 지원 명령
“황제께서 사비성과 소정방 대장군이 분전하고 있는 평양으로 군량을 보내라는 전갈을 주었는데 경들의 의견을 듣고 싶소.”
“두 군데 모두 말입니까?”
“그러하오, 대장군.”
실로 난감합니다, 전하.”
“그런 연유로 대장군을 급히 불렀습니다.”
유신이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군량으로 그를 충당할 수 있지만, 그 후는.”
유신이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자 문무왕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전쟁을 치렀고 근자에 들어 백제를 점령하면서 백성들로부터 걷어 들인 공물이 여간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일반 백성들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인문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문무왕과 유신을 주시했다.
“물론 여하한 경우라도 거절할 수 없소. 다만 우리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그게 걱정되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일었다.
“전하, 하찮은 백성들에게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원래 백성이란 그런 존재들입니다.”
순간 문충이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리요!”
“허허, 그래도 그렇지.”
여기저기서 문충을 탓하는 소리가 일었다.
“너무 그러지들 마십시오. 우리가 언제 백성들 걱정하고 일처리 했습니까!”
“실상은 그래도.”
“하기야.”
문충이 목소리를 높이며 대신들의 면면을 주시하자 모두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지금 백성들의 생활은 어떠하오?”
“전하, 지금 백성들은 근근이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공물을 징발한다면 그도 여의치 않을 것입니다.”
“전하, 소장이 평양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소정방 대장군이 당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데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문충의 이야기에 문무왕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살핀 유신이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대장군?”
문무왕이 애써 표정을 바꾸며 유신을 주시했다.
“소장 비록 늙었지만 나라의 어려움에 직면해서 충성을 다할 수 있다면 목숨인들 아깝겠습니까?”
“전하, 소신도 대장군과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유신에 이어 인문이 앞으로 나섰다.
“하면, 사비성은?”
“사비성까지 가는 길이야 이미 우리 수중에 있으니 병사들 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골라 보내도록 하소서.”
유신의 제안에 따라 문무왕은 급히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에게 공물을 징발하라 명하고, 유신에게 인문과 양도 등 아홉 장군과 신라의 정예병 삼천을 주어 수레 이천여 대에 쌀 사천 섬과 조 이만이천여 섬을 싣고 평양으로 가도록 했다. 더불어 유신에게 생사여탈권까지 주었다.
힘든 백성들에 징발… 김유신이 직접 운반
평양으로… 서두르는 인문, 신중한 김유신
명을 받은 유신 일행이 길을 나서자 차가운 날씨로 땅이 굳게 얼었고 거기에 더하여 눈보라가 몰아치고는 해서 행군이 지체되었다. 행군을 독려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원했던 인문 역시 주변 여건을 파악하고 이의 제기를 못하고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경주를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나 겨우 칠중하(七重河, 임진강 하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그 상태에서 선두에 위치한 병사들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지 않고 주저했다.
유신이 급히 앞으로 나서 강의 상태를 점검하고 뒤를 보았다. 바리바리 짐을 실은 마소와 함께 삼천의 병력이 시선에 들어왔다. 모두가 한번에 강에 들어서면 아무리 견고하게 얼음이 얼었더라도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대장군, 바로 가시지요.”
어느새 다가왔는지 인문이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는 급하게 제지했다.
“왜 그러시는지요, 대장군.”
“서둘러야 함을 소장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서두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오.”
“이러다가 소정방 대장군의 진노를 살까 걱정됩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서두른다면 그 진노조차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소.”
의미를 새기는지 인문이 강 건너를 주시했다.
“그런 연유로 전하께서 생사여탈권을 포함하여 이번 일의 전권을 나에게 주었소.”
유신이 생사여탈에 힘주어 이야기하자 인문이 가벼이 신음을 내뱉고는 뒤로 물러섰다.
인문이 뒤로 물러서자 유신이 귀당제감(貴幢弟監, 지방 군단의 하나인 귀당 소속의 제감) 성천과 군사인 술천을 불렀다.
그 둘에게 군사를 주어 먼저 강을 건넘과 동시에 척후의 임무 또한 주었다.
성천이 인솔하는 군사들이 강을 건넌 모습을 확인한 유신이 마소를 먼저 보내고 이어 잔류 병력으로 하여금 강을 건너도록 했다.
강을 건넌 유신이 다시 성천을 불러 한 발 앞서 나가도록 지시 내렸다.
고구려 국경에 들어선다면 반드시 고구려 군의 공격이 있을 터였다.
그를 먼저 보내고 뒤를 따르는 중에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행군을 멈추고 전황에 귀를 기울이던 중에 성천이 급하게 다가왔다.
“어찌되었는가?”
“다행히 대군이 아니라 쉽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숨을 몰아쉬는 성천을 바라보며 유신이 북쪽을 응시했다.
“장군, 바로 돌아가서 진군을 멈추도록 하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곁에 있던 인문이 유신을 주시했다.
“다소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우회해야겠소.”
유신의 확고한 말투에 인문이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으로 여러 조의 척후조를 편성하고 기다리고 있게나.”
달려가는 성천의 뒤에 짧게 지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척후조의 보고를 들으며 우회하는 길을 선택하자 가뜩이나 힘든 날씨에 행군은 점점 늦어져 칠중하를 건넌지 구일 만에 장새(獐塞, 황해도 수안군)에 도착하여 인적이 드문 외곽으로 이동했다.
쉽지 않은 여정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전방의 시선이 흐려지는 상황에 직면하자 그곳에서 잠시 휴식하던 유신이 보기감(步騎監, 기마병의 무관직) 열기를 불러 수하들을 거느리고 곧바로 당나라 군영으로 떠나보냈다.
그곳의 상황과 더불어 신라의 상황을 미리 전하라는 조처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