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합뉴스>에 ‘주한미군 철수논란 40년… 생생하게 돌아보는 한미(韓美)정상 설전’이란 제목으로 1979년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이 보도됐다. 이와 관련해 주요 대화내용을 인용함으로써 그 이면에 가려진 사실을 소개하고 그 실체에 접근해보도록 하자.
“<연합뉴스>가 지난달 25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제임스 퍼슨 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한 백악관 외교 기밀문서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1979년 6월30일 청와대서 열린 단독 정상회담서 주한미군의 철수문제와 한국의 인권상황을 놓고 격한 설전을 주고받았다.”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은 두 가지로 함축할 수 있다. 하나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다른 하나는 당시 유신정권 아래서 행해졌던 인권탄압에 관한 문제다. 먼저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을 인용해본다. 카터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이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force levels)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병력 규모에 관해서는 당신과 협력할 것이다. 한국은 현재 병력 규모의 격차뿐 아니라 병력 확충비율의 격차를 제거할 생각인가.”
다음은 박 대통령의 답변 중 일부이다.
“북한이 군사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증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우리는 군사력 개선 계획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첫 단계는 1981년에 종료될 예정이다. 우리는 그 계획의 모든 부분을 실행해왔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군사력 개선 계획이 1981년에 종료될 것이라 명확하게 언급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었는데 과연 이 내용의 진실은 무엇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75년 6월12일자 <워싱턴포스트> 기사 내용을 살펴보자.
“박 대통령은 동 지와 가진 기자회견서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만일 미국이 그들의 핵우산을 걷어가 버리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한 바 있다.”
이른바 박 대통령과 핵무기에 대해서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 초반부터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듯 보인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69년에 밝힌 괌 독트린, 즉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한다'는 선언과 1971년 3월에 실시된 주한미군 7사단 철수로부터 비롯된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명확하게 언급했던 1981년을 핵무기가 완성되는 시점으로 봐도 무방하리라 판단한다.
다음은 인권문제에 대해서다. 카터가 인권에 대해 언급하자 박 대통령이 답한다.
“얼마 전 미국 의원들 몇 명이 나를 방문했다. 나는 그들에게 만약 소련군 수십 개 사단이 볼티모어에 배치됐다면 미국 정부도 국민이 지금과 똑같은 자유를 누리도록 허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소련군이 땅굴을 파고 특공대를 워싱턴DC로 투입한다면 미국의 자유는 더 제한될 것이다. 나는 우리 국민에게 가능한 최대한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다. 그러나 3700만명의 생존이 걸려 있고 어느 정도는 통제가 필요하다.”
이 언급이 있기 바로 직전, 박 대통령은 이 상황을 예측하고 통역을 담당할 최광수 의전수석을 불러 짧게 한마디 한다. “‘인권 좋아하시네’를 영어로 어떻게 통역할지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두라”고. 이러한 이면을 알고 동 기사에 접근한다면 흥미가 배가 되리라는 생각에 간략하게 술회해본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