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윤모 산자부 장관 장인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19 10:27:52
  • 호수 1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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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박희도 사위를 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의 장인이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임을 <일요시사>가 단독 확인했다. 박 전 총장은 12·12쿠데타 때 병력을 이끌고 서울을 점령하는 등 전두환씨(전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또 6월 민주항쟁 때 계엄령을 선포하려 한 의혹이 최근 불거져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호남의 전폭적 지지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신군부 핵심 인사의 친·인척을 산자부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일까, 아니면 호남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 사실을 숨겼던 것일까.
 

▲ &lt;사진=청와대&gt;

성윤모 산자부장관과 부인 박씨는 지난 1993년 결혼했다(당시 성 장관의 나이 31세, 박씨의 나이 28세). 박씨의 아버지는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박 전 총장은 성 장관의 장인으로 서로 친·인척 관계다. 산자부 관계자는 “성 장관이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지인 소개로 박씨를 만났다”며 “장인이 그분(박 전 총장)이라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정권
최고의 실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성윤모 당시 특허청장을 신임 산자부장관으로 지명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성 장관 후보자에 대해 “국무조정실, 중소기업청, 특허청 등에서도 정책 총괄업무를 맡아 경제 전반의 다양한 현안을 경험하면서 탁월한 문제해결 능력과 조정능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혁신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산자부장관의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성 장관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난 9월21일부터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자녀의 이중국적 의혹이 불거졌지만, 성 장관은 큰 지적사항 없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장인의 과거 행적이다. 박 전 총장은 전두환씨의 비호를 받고 성장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2기 졸업생인 박 전 총장은 생도 시절부터 박준병, 박세직과 함께 일명 ‘쓰리박’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1960년대 중반에는 하나회에 가입했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전씨는 박 전 총장을 장군으로 진급시켰다. 1976년 제1공수특전여단장이던 전씨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령을 받게 되자 당시 특전사령관이던 정병주 소장(육사 9기)에게 찾아가 하나회 후배인 박 전 총장을 자신의 후임 지휘관으로 앉혀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총장에 대한 전씨의 두터운 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60년대 중반 하나회 가입 ‘전두환 오른팔’
12·12쿠데타 당시 병력 이끌고 서울 점령

박 전 총장은 12·12쿠데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제1공수특전여단장직을 물려받은 그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인솔 하에 유학성 중장(국방부 군수차관보, 육사 8기), 차규헌 중장(육군 수도군단장, 육사8기), 황영시 중장(육군 제1군단장, 육사 10기), 백운택 준장(육군 제71방위사단장, 육사 11기) 등과 함께 무장을 하고 청와대를 찾아가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조사하는 재가를 요구했다.
 

▲ 전두환씨 &lt;사진=사진공동취재단&gt;

최규하 대통령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박 전 총장은 자신이 이끌던 제1공수특전여단으로 돌아가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 국방부와 육군본부 등을 장악했다. 반란군의 무력시위를 버티지 못한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를 하게 되면서 12·12쿠데타는 반란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박 전 총장은 공을 인정받아 승진가도를 달린다. 제1공수특전여단장, 육군 제26보병사단장, 특전사령관, 육군 제3야전군사령관 등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다. 1985년 12월에는 육군 최고의 자리인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다.

12·12 지휘
중추적 역할


최근 박 전 총장이 6월 민주항쟁 때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려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MBC <PD수첩>은 지난 8월14일자 방송을 통해 ‘작전명령 제87-4호’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는 당시 군이 시민들을 진압하려 했던 내용이 담겼다.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발포 명령 계획까지 세웠다. ‘가스탄 발사 등 폭도의 전투 의지를 약화시킨 후 진압봉 사용’ ‘발포 명령은 선 육본 건의 후, 승인 하 조치’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등 살벌한 표현이 문건에 적시돼있다.

문건은 전두환씨의 지시로 1987년 6월 서울 용산 육군본부서 작성됐으며, 박 전 총장은 계엄군으로 편성되는 부대지휘관들을 불러 이를 직접 하달했다. 민병돈 전 특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이 이 명령서를 나한테 직접 줬다”고 <PD수첩>과 인터뷰서 밝혔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박희도였다.

지난 8월 시민단체들과 육해공군 출신 예비역들은 전두환씨와 박 전 총장을 내란예비음모로 고발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은 “작전명령 행위 자체만으로도 명백한 불법행위고, 이 작전명령이 실행됐다면 수많은 국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친위 쿠데타(내란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일부 정치군인들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예비역들과 시민단체들이 책임자들을 고발하고자 한다”고 고발 사유를 설명했다.

박 전 총장에 대한 과거사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95년 11월 김영삼정부가 12·12쿠데타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진행하자 박 전 총장은 돌연 “LA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며 미국으로 도피했다. 박 전 총장은 1998년이 돼서야 귀국해 자수했다.
 

▲ 성윤모 산업자원통상부장관

1999년 7월 재판부는 그에게 반란지휘죄를 적용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도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12·12쿠데타 가담자들이 모두 사면·복권된 후였기 때문이다.

대불총 결성
박근혜 변호

2006년 10월 박 전 총장은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을 결성했다. 반미·친북세력과 북한의 핵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게 대불총을 결성한 이유다. 문제는 대불총이 제주4·3사건과 12·12쿠데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대불총은 2010년 6월 자유북한군인연합과 함께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출판기념회를 열어 물의를 빚었다. 2016년 행정자치부 국정감사 때에는 이명박·박근혜정권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총 2억3200만원의 예산을 대불총에 지원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집회에 참석해 연설을 한 적도 있다. 지난해 1월 열린 태극기집회서 연단에 오른 박 전 총장은 “죄도 없는 대통령을 무너트리고 촛불 세력이 연합해서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다”며 “빨갱이들에게 넘어가서야 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에도 박 전 총장과 대불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박 전 총장은 지난 9월13일자 <조선일보>에 ‘변희재 석방하고, 즉각 태블릿PC 정밀 감정하라!’는 광고를 ‘전 육군참모총장’ 명의로 게재했다.

과연 청와대는 성 장관의 장인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인사검증에 있어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일까.


야당 측은 해당 사실을 청와대가 몰랐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진단한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청와대서 가장 먼저하는 게 후보자와 그 후보자의 친·인척에 대한 서류를 떼보는 것”이라며 “청와대서 몰랐다면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고, 알았다면 호남을 기만한 일이다. 호남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호남을 탄압했던 사람의 친·인척을 데려와 중용하는 모습은 자가당착”이라고 평가했다.

6월 항쟁 계엄 만지작
5·18 사기극 주장도

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때 호남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대선이 있기 전 호남을 기반으로 창당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더 많은 호남표를 받을 것이라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60% 이상(광주 61.14%, 전북 64.84%, 전남 59.87%)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호남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안 후보가 20% 중반대였다는 점만 봐도 문 대통령이 호남서 얼마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지 확인 가능하다.

호남의 지지에 화답하듯 문 대통령은 여러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넣는 헌법 개정안을 지난 3월 공개한 바 있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전문에 삽입했다. 그러나 12·12쿠데타를 일으키고 6월 민주항쟁 때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으며, 5·18민주화운동을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박 전 총장의 친·인척을 산자부장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됐다.
 

▲ 악수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성운모 산자부장관 &lt;사진=청와대&gt;

자가당착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겨뤘던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캠프는 박 전 총장을 영입한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논평을 낸 바 있다.


2012년 12월7일 김현 문재인캠프 대변인은 현안 관련 서면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후보는 12·12쿠테타 주역으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이라는 책을 출판해 5·18민주화운동을 매도한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을 영입했다”며 “지금 호남에 필요한 것은 ‘선거용 찬가’가 아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선거용 호남찬가’에 앞서 호남 홀대정책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남 민심
등 돌리나 

대통령이 가지는 막강한 권한 중 하나가 장관에 대한 임명권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비전에 합당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성 장관도 마찬가지다. 장인이 12·12쿠데타를 지휘한 정치군인이라는 부분과 장관으로서 산자부를 잘 이끌어가는 부분은 별개다. 성 장관을 지명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연좌제(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논란을 자초하는 인선을 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희도 사는 집은?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이 사는 집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현대슈퍼빌이다. 공급면적은 90평, 전용면적은 65평 규모다.

박 전 총장은 2003년 12월에 이 집을 매입했다. 시세는 약 21억원으로 추정되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다. 해당 건물은 군인공제회의 자금력으로 지어졌으며 박 전 총장을 비롯해 퇴역 장성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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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