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반기문 광폭행보의 이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1.13 09:46:13
  • 호수 1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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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의지? 상황이 잠룡을 만든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최근 베이징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서 귀국한 뒤 ‘강연 정치’에 힘써왔던 반 전 총장이 해외 공식 행사로까지 운신의 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자신의 최대 강점이자 정체성인 외교분야 능력을 활용하는 모습에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의 대권도전 여부를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 전 총장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서 열린 포럼에 참석했다. 재단법인 여시재(원장 이광재)와 중국 칭화대 지속가능발전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신문명 도시와 지속가능발전’ 포럼이었다. 반 전 총장은 기조연설서 “대도시는 지속 불가능하다”며 “일과 교육, 의료가 집에서 이뤄지는 신문명 도시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서 포럼
도시모델 제안

새로운 도시모델에 대한 제안이었다. 그는 대도시가 기후 온난화의 주범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0%를 차지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대도시의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실리콘밸리 등지서 창조적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반 전 총장은 “산업혁명의 대량 생산·소비 시대에는 대도시가 주인공이었지만, 맞춤 생산·소비시대에는 중소도시와 농촌이 주인공으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대도시 못지않은 지속가능한 중소 창조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이 신문명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반 전 총장은 아시아의 어느 도시서 신문명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나는 그 도시가 중국의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변화는 앞으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중국이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따라 인류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 문정인 전 청와대 특보와 대화 나누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 전 총장의 발언만 주목받은 게 아니다. 이날 포럼에는 반 전 총장을 따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포럼 주최자인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을 비롯해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등 600명이 참석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참석도 눈에 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국회 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 조은희 서초구청장, 황명선 논산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류태호 태백시장, 최승준 정선군수 등 기초단체장 20여명도 함께했다.

앞서 반 전 총장은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뒤 귀국해 대권에 도전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귀국한 그는 대권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구설에 오르며 어려운 길을 걸었다.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역서 7500원짜리 표를 구매하며 1만원권 2장을 무인발매기에 동시에 투입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베이징 포럼 행차에 정치권 30명 동행
“정치는 생물” 움직임 주목하는 여의도

다음날에는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며 미리 작성해 온 쪽지를 힐끗 본 뒤 방명록을 쓰는 모습도 보였다. 14일에는 이른바 '턱받이 사건'으로 알려진, 충북 음성군 꽃동네서 노인에게 죽을 먹이는 봉사활동이 도마에 올랐다. 같은 날 음성군 행치마을에 조성된 선친 묘소를 참배하면서 퇴주잔을 마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여러 구설에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문재인 당시 예비후보와 비등했던 지지율은 구설에 오른 후 반 토막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 전 총장 측은 대선 완주를 자신했었다. 반 전 총장 측 정무담당을 맡았던 새누리당 이상일 전 의원은 지난해 1월 인터뷰서 “반 전 총장이 대선에 중도 포기할 가능성은 0%”라며 “지켜보면 좋겠다. 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했고 지지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2월 국회 정론관에 모습을 드러낸 반 전 총장은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며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출마 포기를 선언해버렸다. 20여일간의 짧았던 대권 행보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반 전 총장은 마지막까지 대권에 대한 꿈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기문 캠프 측은 불출마 선언 직전까지 중도포기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불출마 선언 하루 전만해도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통합을 시도했다. 대권에 대한 반 전 총장의 의지가 엿보였던 대목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일시적인 선언이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즉 상황과 여론이 만들어지면 반 전 총장이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각계 총출동
정치권도 다수

다수의 캠프서 선거를 치른 경험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전직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활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주목할 가치는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큰 인물 아닌가”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4월 하버드대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제니퍼 염 박 하버드대 과학사학과 전임강사가 <월간조선>을 통해 밝힌 지난해 6월 반 전 총장의 근황에 따르면 그는 ‘안젤로풀로스 펠로우’로 선임됐는데, 이는 케네디 스쿨에 사무실을 마련해 공직 분야서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에게만 주어지는 자리다. 전임 펠로우들은 모두 전직 대통령들이었다.

그곳에서 반 전 총장은 약 2개월간 교수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6월 귀국했다. 귀국 후 반 전 총장은 곧바로 그해 5월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70분 동안 회동을 가졌다. 한미정상회담과 북핵 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이 주제였다.

회동은 문 대통령이 반 전 총장을 청와대로 초대해 성사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는 소통으로 풀면 되지만 외교가 걱정이다. 반 전 총장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정부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조력을 구한다면 기꺼이 함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로 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연세대서 기자들과 만나 “지속가능 개발을 위한 반기문센터를 설립, 교육을 통해 지난 10년간 열정적으로 추진해왔던 인류의 행복과 건강, 평화 등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지난 7년간 유엔사무총장을 하며 지켜본 어젠다를 국내에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마침 연세대 측과 대학의 사회공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돼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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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측이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직을 맡아달라고 반 전 총장에게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사회공헌원은 교내 의료관이나 본관 등에서 기관별로 진행하던 선교 및 봉사활동을 통합하기 위해 지난해 4월 개원했다.


강연 정치로
존재감 과시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었다. 지난해 9월 한국외국어대, 10월 한동대·숭실대·명지대·한국교통대, 11월 한양대·서울대, 12월 고려대, 올해 3월 대구보건대, 4월·9월 연세대, 10월 국민대 등 확인할 수 있는 강연만 10여차례 이상이다.

그 중 한국교통대는 교내에 ‘반기문 청년 비전센터’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교통대는 센터를 통해 학생 장학금 수여를 위한 기금 모금과 제2의 반기문을 육성하기 위한 글로컬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기업과의 교류도 눈에 띈다. 지난 2월 연세대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포럼’에 참석한 반 전 총장은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과 대담을 나눴다. 지난 4월에는 한국토요타자동차가 후원하는 행사서 250여명이 넘는 학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중국 베이징서 열린 포럼서도 반 전 총장은 마윈 회장, 리우송 부사장 등 중국 기업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여의도 정치권은 대권에 대해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잠룡의 도전 의지와 관계없이 상황이 잠룡을 만든다는 데서 기인한 말이다. 즉 대선 레이스가 막을 열었을 때 권력구조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국민들이 차기 대통령에게 어떤 부분을 원하는지 등이 대권을 차지하는 데 있어 잠룡의 출마 의사보다 더욱 앞선다는 뜻이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차기 대권과 관련해 흥미로운 분석을 들을 수 있다. 바로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히 풀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생활 2개월 만에 한국 복귀 왜?
차기 대권? 북한 이슈에 강한 사람

한 국회 관계자는 “지금 문재인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펴고 있지만, 남은 임기 동안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와 통일을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국민들은 문정부가 다져놓은 북한과의 관계를 누가 결정적으로 풀어줄지에 관심을 보낼 것이다. 이런 예상이 여의도서 가장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대권에 여전한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반 전 총장 입장서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현재 자천타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인사 중 반 전 총장만큼 외교적으로 성과를 이룬 사람은 없다.

반 전 총장 역시 귀국 후 계속 북한에 대한 언급을 이어오며 북한 이슈에 있어서만큼은 자신감을 보여왔다. 그는 국내외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북한을 언급하며 평화의 시대로 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하버드대가 개최한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한 협상’ 토론회에 참석해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인할 수 있다는 논리와 관련해서는 좀 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월6일(현지시각) 뉴델리서의 인터뷰서 그는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확실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라며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를 통해 체제나 경제 안정을 도모하겠다면 자꾸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 잡으면
대권 잡는다

6월27일 ‘2018 제주포럼’에서는 “한반도 안보 및 한미동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급작스러운 결정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앞서 2월21일(현지시간) 유엔안보리 회의에선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한 간 대화는 계속돼야만 하며 그래야만 화해와 평화, 북한의 비핵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전 총장이 강조하는 한반도 및 세계의 평화가 북한 비핵화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반 전 총장의 북한 관련 발언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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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