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끊임없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왔으면서도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예견하는 데는 서툴렀다. 1943년 IBM의 CEO였던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전 세계의 컴퓨터 수요는 다섯 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포퓰러 미케닉스(Popular Mechanics)라는 잡지는 ‘미래의 컴퓨터는 1.5톤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Bill Gates)조차도 1981년에 ‘640Kb(킬로바이트)면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라고 했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유명인들의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휴대폰이 한창 보급되던 2000년 무렵에 누군가가 ‘10년 정도 후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으며 화상통화도 가능한 휴대폰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을 때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이가 동의하였을 것인지를 상상해본다면, 앞선 사례들이 예외적인 것이라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항상 예측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현실화되지 못한 예측도 많다.
1980년대 초반에 한 일간지에선 2001년에 우주식민지가 완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서 부산까지는 50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 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또 다른 일간지에서는 원격으로 집 안의 보일러나 실내등을 작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은 예측하지 못해 원격 작동은 공중전화를 이용해 이뤄진다고 했다.
요컨대, 과학기술에 대한 예측은 쉽지 않다. 현재 예상하고 있는 미래의 발전상이 모두 실현된다고 보아 미리 대응할 수는 없다. 실현이 될 만한 예측을 취사선택해 대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설령 그 선택에 성공한다고 해도 갈수록 빨라지고 광범위해지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개인이나 특정 사회집단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코딩 의무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미래 사회에 걸맞은 코딩 실력을 갖출 수는 없을 것이다. 과거 손으로 직접 쓰던 문서를 컴퓨터로 작성하게 됐을 때 사회구성원이 갖춰야 했던 타자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다. 변화를 예측할 수도 없고 그때그때 따라잡기도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 사회의 인재가 가져야 할 자질로 창의성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대두되고 있지만 추상적인 개념인 데다가 이 또한 누구나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사람이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면 결국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는 기술’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자동차 자율주행을 예로 들어보자. 자율주행차는 기술적으로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사고 위험이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운전 중 수집하는 정보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 교통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 법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라고 부르는 철학적 문제도 제기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량 실업이 발생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
기술을 발전시킬 때는 반드시 인문사회학적 문제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고등교육 단계부터라도 과학기술과 더불어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 우리 교육에서는 인문학 전공 학생에게도 코딩교육을 의무화하는 식의 기술교육은 중시하는 데 비해 과학기술인에게 윤리나 철학의 문제를 인식시키는 교육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과학기술은 사람과 더불어 비로소 완성되고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공감대 하에 인문사회 교육이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