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검찰 수사 ‘돈 봉투 사건’ 의혹 넷

‘선배’라 봐줬나? ‘여당’이라서 봐줬나? “아님 뭔가 켕겨서…”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요즘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숱한 비판에도 눈 하나 꿈적 않는 모양새다. ‘돈 봉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속속 드러나는 살포 정황과 잇따른 증언에도 '피라미'만 잡고 ‘대어’들은 불구속 기소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금권정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세간의 시선이 쏠려있음에도 어김없이 뚝심(?)을 발휘한 것. 변죽만 울리다 종결된 검찰수사에 의혹만 더욱 증폭된 양상이다. 권력 앞에서 부러진 칼날 탓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짚어봤다.

이른바 ‘고승덕 폭로’로 정국을 뒤흔들었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지난 21일 마무리됐다. 새해 벽두 새누리당이 수사의뢰서를 제출해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배당된 지 48일만이다.

고승덕 의원은 지난달 8일 검찰에 직접 출두해 “2008년 7월 전당대회 2∼3일 전에 의원실로 현금 300만원이 든 돈 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박희태 전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가 지난 9일 한 언론사에 ‘고백문’을 보내며 돈 봉투 살포에 대한 확인사살까지 이어갔다. 하지만 검찰은 눈앞의 몸통을 제대로 지목도 못한 채 ‘허당’에 가까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되레 의혹만 증폭시키는 양상이다.

‘배달꾼’ 안병용만 구속
검찰, 윗선 봐주기 논란

검찰은 지난 21일 그간 ‘윗선’으로 지목된 박 전 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을 정당법 50조(당대표경선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박 전 의장과 김 전 수석이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고 모두 공직을 사퇴한 점을 고려해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정점식 2차장검사는 “전대 직전 고승덕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은 박 전 의장 측에서 나온 돈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은 하지만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을 통해 구의원들에게 건너간 현금 2000만원에 대해 “박 전 의장의 관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범죄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혹 1. 정황증거에도 돈 봉투 받아먹은 인물 단 한명도 못 찾아
의혹 2. 돈 봉투 살포한 ‘뿔테남’ 곽씨 외 검은돈 배달꾼 없었나?

검찰은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과 돈 봉투 살포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 전 의장의 비서 고씨에 대해서는 사건 개입 정도가 미미하다고 판단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달랑 ‘검은돈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 기소 된 채로 사건은 서둘러 매듭지어졌다.

정 차장은 “검찰총장의 말씀에 따르면 환부를 도려내는 스마트한 수사, 국민적 관심 사안을 신속히 종결 처리했다”고 자평했다. 또 현직 국회의장 기소는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결과에 비판 여론이 빗발치는 실정이다. 정황상 상당한 개연성과 증언들이 있었음에도 핵심인물들에 대해 불구속 기소에 그치며 ‘윗선 봐주기’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검찰이 윗선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공직사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위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에 엄격한 법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찰은 윗선들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입맞춤’의 빌미까지 제공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돈 봉투 지시자인 ‘몸통’은 제대로 지목하지 못한 채 배달꾼에 불과한 안 위원장만 구속함으로써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다.

이처럼 ‘속빈 강정’이 따로 없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의혹만 더욱더 무성해진 모양새다. 먼저 고 의원 외에 돈 봉투를 받은 인물은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의혹의 대상이다.

힘들게 잡은 핵심인물
‘뿔테남’ 곽씨 부실수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유분수’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008년 당시 친이계로 분류된 새누리당 의원이 100여 명에 육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박 의장 캠프에서 고 의원 한 사람에게만 돈 봉투를 전했을 리 만무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검찰은 고 의원에 전달된 돈 봉투 300만원과 안 위원장이 살포를 지시한 2000만원 외에 다른 돈 봉투의 존재를 전혀 찾아내지 못한 것.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다른 의원실에 돈 봉투가 뿌려졌을 것으로 볼만한 정황증거는 한 둘이 아니다.

‘뿔테남’ 곽씨에게서 돈 봉투를 직접 받은 고 의원의 전 여비서 이모씨는 쇼핑백에 같은 봉투가 여럿 들었었다고 진술했다. 앞서 고 의원은 기자회견 당시 “자신이 받은 돈 봉투와 비슷한 노란색 봉투가 잔뜩 있었다”고 말해 더 많은 검은돈이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게다가 안 위원장에게서 돈 봉투 살포를 지시받은 한 구의원이 순번이 매겨진 당협위원장 명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19번부터 49번까지 돈 봉투를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1~18번은 다른 누군가가 전달했을 것이다”고 폭로했다.

박 전 의장 자신도 “약간 법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관행이 있었던 게 사실이며, 많은 사람을 한곳에 모아야 하므로 다소 비용이 든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에도 검찰은 “다른 의원들에게도 전달됐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곽씨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직접적 증거나 진술이 없는 한 실제 수사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스마트한 수사를 했다고 강조했지만 결국 관련자들 ‘입’만 쳐다본 수사라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곽씨 외에 다른 돈 봉투 배달꾼이 있었는지도 풀리지 못한 대목이다. 다수 의원들을 대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돈 봉투를 돌려야 했다면 분명히 다른 전달자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곽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아 자신의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언론에 털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검찰은 어렵게 곽씨의 정체를 밝혀냈지만 조사는 단 한 번, 그것도 3시간에 그쳤다. 진술서를 확인하는 시간 등을 빼면 검찰이 곽씨를 겨우 2시간 남짓 조사한 셈이다. 진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인정한 검찰이 정작 핵심인물인 곽씨에 대해 부실한 수사진행으로 의혹을 키운 꼴이다.

검찰이 ‘검은돈’에 대한 자금출처와 자금 조성 인물에 대해서도 밝혀내지 못한 점도 의문이다. 박 전 의장의 마이너스통장 1억5000만원, 라미드그룹 수임료라는 2억원 등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박 전 의장이 2008년 7월 1일과 2일 자신의 하나은행 마이너스통장에서 인출한 1억5000만원 중 일부가 고 의원실에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의원실에 전달된 300만원이 하나은행 띠지로 100만원씩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위원장이 구의원들에게 전달한 2000만원의 경우 끝내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안 위원장 등 관련자들 모두 전달사실 자체를 극구 부인해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검찰이 핵심 관련자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의장의 전 비서 고씨는 한 언론사에 투척한 ‘고백문’을 통해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라고 썼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압력에 의해 허위진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의혹 3. 스마트·스피드 수사 자평한 검찰 검은 돈 조성배경 못 밝혀
의혹 4. 친절한 검찰 ‘윗선’에게 증거인멸과 입 맞추기 시간 줬나?

이러한 고씨의 고백이 나온 일주일 뒤에라야 검찰은 비로소 김 전 수석을 소환조사했다. 게다가 ‘박희태 캠프’의 재정·조직 담당자였던 조 정책비서관이 고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된 시점에서 고씨를 접촉하고, 해외순방 중이던 박 전 의장 측과 여러 차례 국제통화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꾸준히 ‘말맞추기’를 하려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됐음에도 이들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기는 것이 합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증거인멸ㆍ입맞춤 시간
제공한 ‘친절한 검찰’?

이 같은 수사결과에 야당의 비판도 거세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이명박·새누리당 정권의 정치검찰에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며 “수사팀이 국회의장 공관으로 ‘출장수사’를 가서 ‘의장님’이라고 호칭하는 수사가 제대로 된 수사였을 리 없다”고 맹공했다.

문정림 자유선진당 대변인도 “검찰의 윗선 봐주기라는 의혹을 피해가기 어렵다”며 “법정에서 돈 봉투 살포의 규모, 출처, 사용처 등이 명백히 밝혀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갈 때까지 간 막장검찰의 고의적 직무유기를 개탄한다”며 성토했다.

정치권 돈 봉투 살포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임을 고려하면 검찰의 수사결과가 초등학생도 납득하지 못할 정도로 맹탕이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수사결과가 부실한 까닭에 대해 한상대 검찰총장-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상호 공안1부장이 김 전 수석과 같은 고려대 출신이기에 예견된 결과였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검찰이 돈 봉투 살포에 대한 의혹을 뿌리 뽑지 못한 채 이제 공은 사법부로 넘어간 상태다. 법정에서 명명백백히 시시비비가 가려져 금권정치라는 정치권의 악습을 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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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