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부는 새로운 바람 편지정치

여의도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최근 정치권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편지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편지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 게다가 편지라는 도구는 감성에 호소해 설득을 이끌어 내는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이전부터 정치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할 때 종종 쓰이던 방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안철수 편지’를 불쏘시개로 편지정치는 유행처럼 번져가는 모양새다.

분한 의사 전달과 감성의 호소에 제격인 편지
편지라도 다 똑같은 건 아냐, 압박류 편지엔 철퇴

현재 정치권엔 ‘편지정치’가 새로운 의사전달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격 불을 지핀 것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달 24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의사를 편지로 전달하면서다. 당시 안 원장의 편지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많은 정치인들은 편지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며 정치권 문화로 자리잡아가는 양상이다.

‘안철수 편지’의 파급력

안 원장은 편지에서 박 시장을 지지한다거나 찍어달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편지 도입부에서 ‘로자 파크스’ 인물에 대한 사례를 상세히 언급했을 뿐이었다. 편지에는 미국 앨라배마주의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여성이 미국 흑인 인권운동에 큰 전환점이 된 사실을 상기하며 젊은층의 투표를 독려하는 요지의 글만 있었던 것.

하지만 편지 한 통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안 원장이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박 시장에 대한 지원유세를 펼치지 않았음에도 젊은층의 표심을 움직였다. 선거 막판 박 시장은 각종 의혹공세에 전세가 불리해졌음에도 무려 7%의 득표율 차이로 상대후보를 제압한 것. 특히 서울 2040세대 중 60%가 넘는 유권자가 박 시장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내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없던 편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유권자들에게 감성적 소구(訴求)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편지정치의 파급력이 입증되자 이명박 대통령도 편지정치 대열에 합류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위해 여야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 당시 이 대통령은 국회 국정연설을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좌절되자 여야 의원에 비준 동의안 통과를 당부하는 서한을 보내며 당초 하려 했던 연설의 원고를 동봉했다.

이 대통령은 편지에서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추진됐던 과제라는 점, 보완대책을 충실히 마련하겠다는 점, FTA가 우리 경제와 안보에 있어서의 중요성 등을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한미 FTA는 결코 여야가 대결해야 하는 의제가 아니다”며 “전 정부와 현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 이뤄낸 국익 실현의 의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의원님께 국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애국심으로 한미 FTA 비준동의에 협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의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했다.

진작부터 편지정치를 자주 구사한 의원도 있다. 바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정 최고위원은 갖가지 입장 차이로 인해 생긴 의원들이나 당원들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편지로 입장을 밝혀왔던 것. 특히 당의 중요한 결정사항이나 현안에 관련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에 앞서 관련 인사들에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편지를 보내며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정 최고위원은 당원 강령에 보편적 복지부분 명시와 당의 주권선언 개정안을 제안하며 사전에 당원 및 의원들에 편지를 보내 당론에 채택될 수 있도록 내용을 설명했다.

하지만 호소력 짙은 편지로 참신하다는 평가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른바 편지의 역풍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7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한나라당 의원 전원에게 한미 FTA 비준 동의안에 대한 조속한 국회 처리를 부탁하는 편지였다.

김 수석은 편지에서 “한나라당 168명의 의원들 손에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다. 우리 아이들의 내일이 걸려 있다”며 신속한 비준을 간곡하게 청했다. 하지만 김 수석은 한미 FTA 반대 측을 ‘반미주의자’라고 규정해 민주당이 강력 반발했다.

김효재 편지의 ‘역풍’

김진표 원내대표는 “김효재 정무수석의 편지는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날치기 돌격 명령을 내린 것”이라며 평했고, 박영선 정책위의장 역시 “정무수석은 국회와 청와대의 관계를 조율하는 자리임에도 김효재 정무수석은 편협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김 수석의 편지는 여당에서 역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은 지난 8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청와대 정무수석의 편지는 적절치 못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남 위원장은 이 편지가 “야당의원들을 자극하고 여당의원들에게 마치 조속한 처리 오다(지시)를 내리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 것. 이어 그는 “이러한 청와대의 잘못된 인식으로 마치 여당을 압박해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청와대 정무수석의 편지 같은 것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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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