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원순 ‘사생결단’ 힘겨루기 내막

대통령과 소통령의 혈전 “올해 죽여야 내년에 산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이 말은 특히 정치권에 잘 적용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기도 하는 일이 정치권에서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관계가 그렇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월급을 박 시장이 이끌었던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며 인연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호연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박 시장의 서울시 입성으로 대통령과 소통령으로 만난 두 사람은 내년 선거정국에서 대리전으로 팽팽하게 맞붙을 전망이다. 상대를 반드시 눌러야만 살 수 있는 ‘정면 승부’이기에 두 사람 모두 결사항전의 자세를 취하는 모양새다.

지난 2002년 아름다운재단 기부로 MB-박원순 인연
2012 총
대선 여야 희비 가를 대통령-소통령으로 악연

“내가 서울시장을 지낼 때 많이 (아름다운재단에) 협조 했습니다.”(이명박 대통령) “맞습니다. 그때는 자주 뵈었죠.”(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10‧26 재보선 이후 국무회의장에서 첫 대면하면서 나눈 얘기다. 두 사람의 환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나도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국무회의에 참석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5년간은 참석하지 못했다”며 박 시장의 국무회의 참석을 반겼다. 이 대통령은 계속해서 두 사람의 과거 인연을 상기시켰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조성했던 서울숲을 언급하며 “박 시장이 애를 많이 썼다”고 말했고, 박 시장은 “그때 내가 감사를 했다”면서 “앞으로 자주 만날 기회를 주시면 여러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화답했다.

재회한 MB와 박
양쪽 속내는 복잡

실제로 두 사람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 첫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 대통령이 “시장 월급을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당시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를 맡았던 박 시장은 곧바로 ‘월급 기부’ 제안서를 들고 이 대통령을 찾았다. 제안은 흔쾌히 받아들여졌고, 4년간 시장 월급을 아름다운재단에 기탁해 환경미화원과 소방공무원 유가족을 돕는 데 사용하기로 하면서 두 사람은 훈훈한 관계를 맺었다.

당시 일들을 떠올리며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되어 재회한 두 사람은 많은 덕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이제 양쪽의 속내는 복잡해졌다. 내년 선거정국에서 여야의 희비가 두 사람 손에 달려 있어서다. 2012년 총‧대선은 이 대통령과 박 시장의 ‘심판론’ 형태로 치러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현 정부의 ‘박원순 죽이기’ 징후가 포착되고 있고, 박 시장도 ‘한미FTA 재검토’를 요구하며 사실상 정부에 반기를 들어 양측 간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칼끝을 겨눈 것은 다급한 이 대통령 측이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지난 10‧26 재보선에서 보듯 수도권 민심이 야권으로 기울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경남의 민심이반도 심상찮아 현 정권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팽배하다. 무엇보다 당선 직후 파격행보를 보이는 박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도 부담이다.

때문에 박 시장의 당선 직후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세 역전을 위해 기득권 세력이 박 시장의 오점과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집중공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현 정권이 박원순 죽이기에 나선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면서다.

아모레퍼시픽에
세무 드림팀 떴다!

10·26 서울시장 선거 직후인 지난달 27일 아모레퍼시픽이 난데없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은 박 시장이 한때 이끌었던 ‘아름다운재단’에 약 97억원을 기부하며 가장 많은 후원금을 제공했던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특별’이 아닌 ‘정기’ 세무조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전 통고나 예고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 점이 그렇고, 무려 10여 명이 넘는 대기업 전문 베테랑 조사관들이 샅샅이 훑은 점도 그렇다. 이들은 ‘먼지 한 톨’까지 털어낼 기세로 달라붙었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을 추론케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경찰은 나경원 후보 캠프의 ‘1억 피부샵’ 허위사실 유포 고발과 관련 <나는 꼼수다>에 대한 수사도 착수했다. <나는 꼼수다>는 지난 선거기간 동안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문제와 나 후보의 피부샵 문제를 제기하며 여권의 역풍을 일으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 두고 최근 트위터를 중심으로 현 정권이 본격 박원순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


기부금 조성 의혹 검찰수사 본격 개시…‘박원순 죽이기’
‘박’ 한미FTA 사실상 반기들며 MB의 꼼수론에 철퇴

검찰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박 시장의 아름다운재단 불법 기부금 모금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개시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허철호)는 박 시장과 아름다운재단을 기부금품 모집과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인터넷 <민족신문> 김기백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검찰은 김 대표의 진술 등을 검토한 뒤 우선 재단 관계자를 소환해 사실관계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달 13일 서울시장 선거 직전에 “아름다운재단이 10년 동안 1000억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모집했음에도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에 기부금 액수를 신고한 것은 단 세 차례 뿐이다”며 박 시장과 재단을 고발했다.

검찰은 당시 이 사건을 곧장 현 수사팀에 배당했다. 하지만 ‘한명숙 사건’의 전철이라는 비난 여론이 쇄도하고 ‘표적수사’라는 강한 의혹을 제기하자 “배당만 했을 뿐 어떤 수사도 한 적이 없다”며 한 발 물러선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미뤄뒀던 기부금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를 예고하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박원순의 반격 개시
MB 아킬레스건 공격

박 시장도 이에 적극 맞서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는 한미FTA의 처리에 사실상 반기를 들었다. 서울시는 지난 7일 ‘ISD(투자자 국가제소권)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미FTA 서울시 의견서’를 외교통상부와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박 시장은 ISD 조항이 서울시와 시민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이유를 들었다. 그는 “ISD 관련 압도적 제소건수 1위가 미국임을 감안할 때 우려스럽다”며 “소송에서 패소하면 금전으로 배상해야 하는데 서울시와 시민에게 큰 재정 부담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시장은 미국계 기업형 슈퍼마켓이 골목 상권을 무차별 침범하는 등 소상공인 피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의 속내는 따로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박 시장이 한미 FTA의 처리여부가 BBK사건과 연관 있다고 의혹이 일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건들며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함이다”고 내다봤다.

이미 한 언론사와 SNS를 중심으로 MB정권이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것은 BBK 때문이란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BBK의 실소유주 논란은 정국을 강타했다. 이어 사건은 미국 검찰의 손에 넘어갔고 수사 결과는 지난 7월8일 발표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기한 연기되며 유야무야 됐다. 이에 의혹만 더 짙어졌고, BBK사건은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아킬레스건처럼 따라 붙었다. 때문에 MB정부가 수사 결과 발표를 막기 위해 재빨리 저자세의 한미FTA로 급선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만약 미국 검찰의 수사 결과가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나온다면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박 시장과 야권 측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공산이 클 것이란 관측이다.

게다가 박 시장은 FTA를 고리로 야권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박 시장은 또 혁신적이고 통합을 이룬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이에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가진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단과의 오찬 자리에서 “혁신과 통합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목표가 우리 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뜻과 일치한다. 함께 갈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야권과의 공조를 통해 현 정권을 심판하고 내년 선거를 야권 필승구도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MB-박의 생사가
2012 총
대선 변수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 대통령과 기득권세력은 정권 심판론에 맞서 박 시장에 불거진 각종 의혹들을 겨누며 오점 만들기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소속 지자체장인 박 시장은 몇 번이고 한계와 난관에 부딪칠 공산이 크기에 공세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맞선 박 시장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들추며 적극 공성전에 뛰어든 형국이다. 박 시장이 지속적으로 기득권 세력에 털리면, 그 파장은 내년 총‧대선으로 이어져 야권 공멸의 위기상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때 이 대통령과 박 시장은 훈훈한 인연을 맺었고, 공생관계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에 마주서서 살기 위한 공세와 방어전을 펼쳐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향후 평행곡선을 그리며 사생결단을 펼칠 두 사람. 과연 내년 선거에서 어느 쪽이 웃고, 어느 쪽이 울게 될까? 벌써부터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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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