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파격행보’ 파장 어디까지?

2012년 여‧야 운명 ‘시장님’ 손에 달렸소이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바닥민심 살피기’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 박 시장은 ‘시민 중심의 서울’을 강조하며 시종일관 자세는 낮추고, 눈높이는 서민에 맞추고 있는 것. 시민들은 ‘파격적’이라는 열렬한 환호와 함께 ‘미래 서울’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사실상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수도권민심의 바로미터였던 셈이다. 때문에 향후 박 시장의 행보가 내년 총?대선에서 여권과 야권의 운명을 가르는 주요한 변수로 작용될 전망이다.

시민들과 스킨십‧소통 강화하며 바닥민심에 집중 
MB 어묵 vs 박원순 떡볶이…‘유종의 미’가 중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친서민 행보가 연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박 시장은 당선 이전부터 이용하던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게다가 “시장이 시장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며 시장을 찾아 직접 바닥민심을 살피고 있다. 시공무원들과의 스킨십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에 박 시장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친서민 행보 눈길
시민 스킨십 강화

지난달 27일 새벽 6시30분 방배동 자택을 나선 박 시장이 취임 첫날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노량진 수산시장. 비서 2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현장을 방문한 박 시장은 상인과 시민들을 만나 “열심히 일 하겠다”며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 시장이 선거기간 중에 시장이 되면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말한 바 있어 가장 먼저 시민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어 박 시장은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 청사로 출근했다. 시청에 출근한 박 시장이 가장 먼저 들른 곳도 다름 아닌 종합민원실이다. 기존 서울시장들이 출근한 뒤 곧장 집무실로 올라갔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라는 평이다. 민원실을 찾은 박 시장은 일반 시민 및 직원들과 소통을 강화했다. 다음 도 공무원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업무보고를 받았다.

지난 2일에는 새벽부터 관악구 서원동 환경미화원 휴게실을 찾아 미화원들과 함께 길거리 청소를 하며 그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었다. 주말에도 박 시장은 오랜 단골이었던 골목책방과 영천시장을 직접 찾았고, 시민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과 일일이 악수했고, 사진 속 모델이 되는 여유도 보여줬다.

이에 주변에 모인 시민들은 “시장님 파이팅”이라며 환호를 보내는 풍경도 연출됐다. 또 어떤 여학생이 “재수 중인데 위로 좀 해달라”고 하자 박 시장은 “저는 재수를 두 번이나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다 재수했었다”며 위트 섞인 말로 힘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형식과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박 시장의 탈권위주의적인 모습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전 시장들이 시장 당선증을 직접 가서 받았던 전례를 깨고 측근을 시켜 대신 받도록 한 것. 게다가 지난 2일 간부정례회의도 시공무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쓰며, 각 업무에 일일이 관심을 표명했다.

박 시장의 첫 째 업무도 핵심 공약의 이행이었다. 월동대책, 서민복지, 무상급식 등 민생과 관련된 시정현안을 먼저 챙긴 것. 이에 공약사항이던 초등학교 5~6학년에 대한 무상급식을 11월부터 실시하게 됐다.

확 바뀐 서울시
정무라인 최소화

박 시장의 집무실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주제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는 희망제작소 사무실에 있던 책을 시청에 옮겨 도서관 같은 집무실을 꾸민다는 계획이다. 또 정책비서관과 수행비서관이 머물던 정책실 역시 시민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변했다. 박 시장은 “시청 문을 언제든지 열어놓고 있을 계획”이라며 “시장이니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취임식도 ‘온라인 생중계’ 형태로 진행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지난 1일 “취임식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계속 받을 생각이지만 온라인으로 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시민시장’이미지에 걸맞게 보다 많은 시민과 함께 취임식을 갖고자 하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 시장을 보좌하는 정무라인도 최소화해 운영된다. 박 시장은 지난 1일 정무부시장에 김형주 전 국회의원을 내정하며 정무라인을 꾸렸다. 정무부시장은 국회와 서울시의회, 언론, 정당과의 업무를 협의 조정하는 역할이다.

선거캠프에서 비서실장과 정책단장을 맡았던 기동민 전 민주당 부대변인과 서왕진 전 환경정의연구소장은 각각 정무수석비서관과 정책특보에 내정했다. 캠프 상황실 부실장이었던 권오중 전 청와대 행정관도 시장 비서실장으로 낙점된 상태다.

시장의 ‘입’을 담당할 대변인 자리엔 캠프 쪽 인사가 아닌 류경기 전 한강사업본부장을 내정했다. 박 시장의 정무진은 총 10여 수준으로 20여 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의 절반 수준이다. 박 시장은 취임 이후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공무원으로 비서진을 꾸리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권위를 타파하고 민생을 챙기는 박 시장의 행보에 시민들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간 정부 인사들과 비교하면 차별성이 두드러진다는 이유에서다. “친서민 행보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 섞인 반응도 보였다.

서울시 직원들 역시 박 시장의 행보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처음 박원순 시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공무원들이 내심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시장이 자칫 경직될 수 있는 행정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한 것.

‘박’ 시민과 신뢰‧교감 지속되면 총‧대선 야권탄력
‘전세 역전’ 위한 기득권세력의 집중공세 심화될 것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도 시장 골목을 찾아 어묵을 먹고, 국민들과 사진도 찍었다. 게다가 친서민 공정사회를 정책기조로 내세웠다. 하지만 부자감세를 비롯해 공정사회 기조에 어긋나는 권력형 측근비리가 연일 터지며 민심이반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현재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사실상 국가 부채 규모가 무려 1848조원 이상이다. 국민들이 부담할 부채인 셈.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에도 어긋나게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한강르네상스 사업, 디자인 서울 등 전시성 행정에 올인한 결과 서울시 부채만 25조원에 달할 정도로 시정이 엉망이다. 서울시의 과도한 홍보비, 호화 밥값 등에 혈세낭비도 심각했다. 

이에 서울시장 보선은 현 정권에 대한 심판론적 의미가 짙었다. 때문에 박 시장의 친서민 행보가 ‘일회성 쇼’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2012년 총‧대선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박 시장에 대한 서민 교감과 신뢰가 지속될 내년 선거정국 분위기를 계속 야권이 주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상 수도권 민심은 현재 야권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해 6‧2 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구청장 중 민주당 출신이 21곳을 차지하고, 서울시의원도 106석 중 79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이어진 4‧27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경기 성남 분당에서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당선됐다.


‘박’ 신뢰 지속되면
내년 야권강세 지속

게다가 이번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도 야권단일후보인 박 시장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서울 25개구 중 한나라당이 이긴 곳은 서초‧강남‧송파‧용산 4개구뿐이다. 이는 내년 총선으로 미루어본다면 48개의 지역구 중 40개 지역구에서 야권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은 2007년 이명박 대선 승리로 연결됐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범야권 후보 박 시장의 당선은 내년 총‧대선에서 야권 승리의 징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엉망이다”라는 평가가 줄을 잇게 되면 선거의 전세는 역전될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의 서민 행보에 대해 기득권 세력들의 집중공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선거 기간 동안 제대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각종 의혹들 또한 박 시장이나 여야 모두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집권여당으로선 없는 먼지도 털어내려 사력을 다 할 것이기에 이를 해소하거나 방어하려는 박 시장과 야권의 수성전도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벌써부터 곳곳에서 현 정권이 ‘박원순 죽이기’에 나선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어 박 시장의 생사 여부가 내년 선거판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래저래 여야의 생사 희비쌍곡선은 박 시장의 생사에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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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