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취재] 가짜뉴스 공장 들어가 보니…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15 10:16:42
  • 호수 1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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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임종석을 최고 실권자로 보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가짜뉴스’가 정국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겨레> 신문이 가짜뉴스의 뿌리를 추적해 집중 보도함으로써 중요 의제로 부상했으며, 이낙연 국무총리는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년여 간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고 있는 단체채팅방 3곳에 잠입해 어떤 가짜뉴스가 있었는지, 누구를 겨냥했는지 등을 취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을 전후로 가짜뉴스가 생산·유통되는 단체채팅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채팅방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 활동한다. <일요시사>가 약 2년 전부터 취재차 들어가 있는 채팅방 3곳에는 주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지지하는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채팅방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사, 인터넷주소(URL), 합성사진, 종교성 짙은 글 등이 공유된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팅방 3곳 중 가장 활발하며 74명의 극우 성향 유권자들이 속해 있는 ‘다시 집권 OOOOO’ 채팅방서 ‘문재인’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1593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지난 11일 오후 3시30분 기준). 

문제는 개중에 가짜뉴스도 상당수 확인된다는 점이다. ‘뭉가’ ‘문죄인’ 등 극우 성향의 유권자들이 최근 문 대통령을 비하할 목적으로 부르는 명칭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미 정부 기관의 이름을 따온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4일 ‘CIA 극비 보고 내용’이라는 글에는 남북 교류협력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내용의 대부분이 과거 보수정권의 ‘종북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이다.


이를 테면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남한 측 근로자 등 대규모인력을 유사 시 김정은의 핵인질로 만들려는 김정은의 고도로 계산된 북한의 미국 북폭 방어 전략의 일환”이라고 평가하는 식이다.

또 이 글의 작성자는 “문재인은 고려연방제를 추진할 것이며, 서울에 입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의 목사, 군인, 경찰관, 정부 공무원, 정치인, 태극기집회 주동자, 종교인, 민노총, 전교조 등 주사파 세력들과 남한의 개돼지들을 북한 지역 오지나 탄광촌으로 강제격리 이주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성자는 이러한 내용이 “미 CIA의 동북아 책임자가 며칠 전 백악관 비공개 비밀 보고에서 북한 관련 김정은과 문재인의 계략이 담긴 정보를 비공개 브리핑에서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CIA 보고서로 보기 힘들다. 작성자는 CIA 동북아 책임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내용을 입수하게 됐는지 등 정보의 신뢰와 관련된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이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공식이다. 

가짜뉴스공장에서는 시중에 나도는 글, 또는 자신이 작성한 글에 신뢰할 만한 기관의 이름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미국이 침공?
도 넘은 수준

‘미국의 남한 점령 전략’이라는 글에는 “미국의 저명한 국제전략 연구소의 아시아 정책연구소장이 미국은 문재인의 공산화 과정서 문재인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연구 중이다. 미군의 주둔 병력도 증강 재배치하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영구배치까지 계획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문재인의 공산주의 고려연방제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소리 없이 남한점령 작전을 전개 중”이라고 나와 있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미국이 한반도 침공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작성자는 미국을 ‘우주패권국’으로 추켜세웠다.
 

비단 문 대통령에 대한 가짜뉴스만 있는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회차원의 방북 무산을 기획·주도했다는 가짜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작성자는 이 대표의 이러한 기획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축출하려는 속셈이며 문재인정부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비서실장이 대한민국의 최고 실권자라는 CIA 보고서가 백악관에 보고됐다는 가짜뉴스도 눈에 띈다.

75명이 속한 채팅방 ‘위대한 개혁 OOOOOOO’에는 문재인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 쟁점 법안의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 극우 성향의 유튜브 URL 등이 주로 개제된다.

채팅방 3곳 2년간 체크…유언비어 넘쳐나
근거 없는 대통령 비난 정부 인사도 타깃

한 극우 성향의 유권자는 문재인정부와의 대결을 성전으로 규정하며 “목숨을 겁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다윗은 짱돌로 남산 만한 골리앗의 대굴빡(머리)을 깨부숴 이긴 겁니다. 아멘”라고 채팅방의 사람들에게 촉구했다.

음모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글도 눈에 띈다. 한 사람은 “노무현이 자살하기 전날 밀착 경호원을 바꾼 것은 문재인이었다”고 반복적으로 글을 올렸다. 다른 사람은 “김대중이 2001년 문재인 등 법관들을 시켜 민주화운동 유공자 자격 심사를 하게 했는데, 이때 김대중이 선출한 심사위원들 중에 김일성 장학생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고 제기했다.

쟁점 법안 찬성·반대를 촉구하는 글의 경우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의 URL을 첨부하는 식으로 채팅방에 게재된다. 

‘민주당원 댓글조작 사건 및 김경수 의원 등 연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URL을 올린 이는 “만명 만듭시다. 찬성 올려주세요. 5월3일까지 마감입니다”라고 촉구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URL을 올린 이는 “이 법이 통과되면 유튜브나 카톡으로 악한 것을 악하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국민청원과는 다릅니다. 입법예고는 만명만 반대하면 자동 폐기된다고 합니다. 꼭 폐기해야 합니다. (10/6 마감)”이라고 독려했다.

극우 채널
URL 첨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URL을 첨부하는 글도 있다. ‘개헌안,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이 포함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즉각 철회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의 URL을 붙인 사람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동성애, 공산주의, 이단, 이슬람 등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 반대도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성평등 정책에 대해서는 “남녀평등인 양성평등 아니라 동성혼 합법화의 수순”이라며 청원에 동참해 줄 것을 채팅방서 호소했다.

39명이 속한 ‘탄핵 10적 OOO OOO’ 채팅방은 진보뿐 아니라 보수 정치인도 비난한다. 주로 2016년 12월 국회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 찬성표를 던진 비박계 정치인이 타깃이다. 한국당 김무성 의원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이를 테면 “이명박이 지 앞날을 모르고 김무성을 시켜 탄핵을 획책한 꼴이 자승자박”이라고 평가한 사람이 있으며, “박근혜를 출당시키고 친박을 몰아내는 홍준표는 바른정당 놈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한국당 친박계의 주장과 일치한다.

최근 문재인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무회의서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으로 규정하고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이나 민감한 정책현안은 물론,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가안보나 국가원수와 관련한 턱없는 가짜뉴스까지 나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극비보고서? 극우·친박계 문법 답습
고민하는 방통위 “자율규제로 가닥”


가짜뉴스 근절 방안은 2018국정감사서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11일 국회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주요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춘 가짜뉴스 확산 방지 대책을 12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통위가 직접 나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면 헌법상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서 진성철 방통위 대변인은 “범정부 대책과 방통위 방안은 별개로 추진되는 사안”이라며 “방통위는 민간에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은 가짜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로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가짜뉴스 대응방안을 놓고 질의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게 “조작된 허위정보만을 대상으로 하면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한데 왜 국가기관 7개가 동원되느냐”며 “선진국서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국무총리가 나서는 경우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언론
재갈물리기?

같은 당 박성중 의원도 “가짜뉴스 판명은 현행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국무총리가 나서고, 전 정부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누를 여지가 있다는 것”이라며 “국가가 나서지 말고 자율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나선 것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 보수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권위주의적 행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수준서 허위조작정보에 한해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짜뉴스’ 페이스북 대처

페이스북이 미국 내에서 사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가짜 페이지와 계정을 발견해 없앴다고 지난 11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잘못된 정보와 스팸의 확산을 이끄는 559페이지와 251개의 계정을 삭제했다. 대부분 미국 내에서 생성된 것들이다.

이번에 삭제된 가짜 페이지와 계정은 정치뉴스로 가장해 클릭하면 급전대출 등과 같은 상업성 비공인 금융 사이트로 연결된다. 모두 페이스북 이용 규정을 어긴 것들이며,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인들의 관심이 정치에 몰리고 있는 점을 역이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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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