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무죄’로 되풀이된 검찰 대굴욕 내막

검찰개혁 선봉장된 노빠의 ‘역습’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무죄 선고를 받은지 1년6개월만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잇따른 법원의 무죄선고에 물먹은 검찰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전세 역전된 한 전 총리는 ‘검찰개혁’에 핏대높이며 역습에 나선 모양새다.

‘표적수사’ 도마 위에 ‘정치검찰’ 오명
사개특위 가동 급물살 검찰개혁 요구

검찰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 9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기소한 것은 지난해 7월. 하지만 지난해 12월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금품제공 사실이 없다고 종전 진술을 번복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약 1년3개월 동안 이어진 23차례 공판으로 검찰과 치열한 공방 끝에 한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물먹은 검찰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금품수수를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증거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진술 뿐인데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 일관성과 합리성이 없는 부분이 있고 진술 자체에 추가 기소를 피하려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보여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판결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한만호 전 대표의 비장부와 채권회수 목록은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증거는 되더라도 그것을 한명숙에게 전달했다는 금품수수의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4월에도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5만달러를 받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에도 검찰은 곽 전 사장의 진술 외에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다.

하지만 한 전 총리의 수사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검찰은 법원 판결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1일 이례적으로 ‘한명숙 정치자금법위반 1심 판결에 대한 검찰 입장’이라는 반박 자료까지 내며 법원의 판결을 정면 비판한 것. 게다가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검사까지 나서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면서 ‘표적 판결’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여론의 비난 화살은 검찰을 향하고 있다. 검찰이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한 전 총리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 게다가 정치권 안팎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한 전 총리까지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전 정권 인사를 탄압한 전형적인 사례”라며 ‘표적수사’ ‘정치탄압’이라는 평가도 줄을 잇는다. ‘정치검찰’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지난 1일 논평을 내고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무소불위의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을 왜 개혁해야 하는지는 이 사건을 통해서도 명백히 알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무죄 판결로 족쇄가 풀린 한 전 총리가 검찰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를 찾아 “검찰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국민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지역에 가면 엄청 높다”며 검찰을 정면 비판했다. 한 전 총리는 또 “2012년에 우리가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서 검찰개혁만은 바로 세워야 한다”며 검찰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칼 빼든 한명숙


여기에 민주당도 국회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재개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 1일 의원총회에서 “여야 원내대표단이 합의했었던 사개특위 구성을 하루 속히 서둘러 사개특위 운영을 통해 검찰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서 “(여당이)사개특위의 정상적 운영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주문한 것.

여야 합의로 2차 사개특위가 구성될 경우, 특위는 지난 6월로 종료한 1차 사개특위가 처리하지 못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 대법관 증원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그간 검찰은 ‘스폰서 검사’ ‘떡값 검찰’ 등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바 있다. 연이은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로 부담이 더해졌다. 하지만 검찰의 굴욕은 아직 끝이 아니다. 한 전 총리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서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곽영욱 사건’ 2심 첫 공판이 이르면 이달 중에 예정돼 있다. 만약 또다시 한 전 총리에 무죄판결이 나온다면 안그래도 수세에 몰린 검찰이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회복불능의 내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때무에 ‘역습’에 나선 한 전 총리의 검찰개혁 행보가 과연 검찰개혁의 도화선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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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