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프리패스’ 인사혁신처 취업심사 실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9.10 11:27:37
  • 호수 11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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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숭숭’ 십중팔구 종이문 통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제도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대기업을 압박해 퇴직 간부를 채용하도록 한 재취업 비리 사건이 발생하면서 해당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일요시사>가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취업가능·승인율은 80%를 상회한다.
 

<일요시사>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2015.1∼2018.7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공직자윤리위) 취업심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취업심사를 신청한 퇴직 공직자 2695명 중 취업가능·승인을 받은 신청자는 2230명(승인율 82.7%)에 달한다. 반면 취업제한·불승인을 받은 신청자는 465명으로 나타났다.

2695명 중
승인율 83%

연도별로 보면 지난 2015년 취업가능·승인율이 가장 낮았다. 당해 538건의 취업심사 중 가능·승인을 받은 신청자는 426건이었으며, 제한·불승인은 112건으로 승인율은 79.2%로 드러났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763건의 취업심사 중 632건이 심사를 통과한 반면, 131건이 통과하지 못해 82.8%의 승인율을 보였다. 2017년에는 752건 중 614건이 심사를 통과했으며, 138건이 불승인이나 81.6%의 승인율을 기록했다.

2018년 7월까지 취업심사 현황을 보면 올해 승인율은 최근 4개년 중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642건의 취업심사 중 558건이 취업가능 결과를 받았으며, 84건이 불승인이 났다. 승인율은 86.9%에 달한다.


공직자윤리위 취업심사는 재산등록을 했던 퇴직 공직자가 취업제한기관에 취업하려는 경우, 해당 위원회에 적격 여부를 요청하는 것으로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퇴직공직자가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나 그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에는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직자윤리위는 인사혁신처 산하 위원회다.

국회는 매년 국정감사 때 공직자윤리위의 높은 취업 승인율을 지적해왔다. 지난 2015년 9월 당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조원진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7월까지 퇴직 2∼3년 이내에 공직자윤리위에 재취업 신고를 한 공직자 1161명 중 157명을 제외한 1004명이 재취업했다. 

퇴직공직자들의 재취업율은 86.5%로 사실상 10명 중 8명 이상이 재취업한 것이다.

매년 국감
지적 사항

조 의원은 “특히 소위 일부 권력기관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재취업율을 보이고 있다”며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대부분의 서민을 생각할 때, 퇴직 전 업무의 연관성을 이점으로 특채처럼 재취업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 취업심사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취업하는 82건 사례를 막기 위해서도 이들에 대해 공개 등 과태료 이상의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 역시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2016년 국정감사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 8월 말까지 3년여 동안 요청받은 취업심사 건수 1482건 중 226건(15.2%)만 취업제한 판정을 받았다.


당시 장 의원은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 제도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현행 심사제도는 여전히 허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법의 취지에 맞게 보다 명확한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심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데 나서겠다”고 밝혔다.
 

2017년 국정감사 때에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퇴직 공직자 중 고위공직자였던 사람의 재취업 현황을 공개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9월까지 5년여 동안 재취업심사를 신청한 고위공직자는 총 262명으로, 이 가운데 222명(84.7%)이 취업가능·승인을 받아 재취업했다.

진 의원은 “고위공직자의 재취업률이 일반 하위직 공무원보다 높은 점, 퇴직 전 근무 부처와 유사성이 있는 기관의 임원직으로 들어간 점을 보면 여전히 고위공직자에게 취업심사는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10명 중 8명은 재취업 승인
2018년 승인율 최고치 눈앞

매년 국정감사서 공직자윤리위 취업심사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회 우려대로 올해 공정위가 대기업을 압박해 4급 이상 퇴직 공무원을 채용한 재취업 비리 사건이 터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16일 전·현직 공정위 고위직 간부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김학현·신영선 전 부위원장을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노대래·김동수 전 위원장, 지철호 현 부위원장을 포함한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조사 결과 공정위 운영지원과는 조직적으로 4급 이상 퇴직 공무원의 일자리를 알선해왔다. 지난 2009년 11월 운영지원과는 ‘바람직한 퇴직문화 조성을 위한 퇴직 관리 방안 검토’ 문건을 만들었는데,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조직적으로 4급 이상 퇴직 공무원의 일자리를 알선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부위원장과 운영지원과장 등은 기업 고위 관계자를 직접 접촉해 공정위 퇴직자의 일자리 마련을 요구했다. 근무 기간과 급여, 처우, 후임자 등도 사실상 공정위가 결정한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공정위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기업서 받은 급여는 모두 76억원에 이른다. 더 나아가 운영지원과는 기업에 재취업한 공정위 퇴직자들이 공무원 정년 이후에도 퇴직을 거부해 후임자의 일자리가 부족하자, 지난 2014년 3월 공무원 정년을 넘긴 사람은 연장 계약을 하지 말라고 기업에 주문하는 ‘과장급 이상 퇴직자 재취업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공정위 비리
조직적 움직임

당시 검찰 관계자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수호해야 할 책무를 지닌 공정위가 기업에 대한 막강한 규제 및 제재 권한을 내세워 민간기업들을 마치 산하기관처럼 인식·분류하고, 공정위의 인사 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기업의 인사 업무를 방해하고 고용 시장의 자유경쟁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해당 비리 사건과 관련해 지난 6월 압수수색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공직자윤리위가 공정위 퇴직자들의 재취업을 심사하면서 허위자료를 제출받는 등 부적절한 업무처리 정황이 포착했다.


당시 공정위 출신 공직자가 재취업한 대기업은 ‘취업제한 기관’에 해당한다. 공정위 퇴직자들은 취업제한 확인 검토 의견서를 엉터리로 작성해 제출했음에도, 공직자윤리위의 심사를 통과했다. 퇴직 공직자에 대한 인사혁신처의 허술한 취업심사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3일 인사혁신처와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심사에 대한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공정위 등 주요 기관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여부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취업심사가 독립적·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해 달라는 취지였다. 

공정위 취업 비리 사건에 대해 참여연대는 “공직자윤리위의 취업제한 제도 운영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감시하고자 2006년부터 연례보고서를 발간해왔다. 지난 2015년에도 참여연대는 보고서 발간을 위해 그해 7월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퇴직 공직자들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당시 인사혁신처는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9년 만에 첫 비공개 처분이었다.

매번 지적해도…
왜 안 바뀌나?


참여연대는 인사혁신처의 비공개 처분에 대해 중앙행정위원회에 이를 취소하라는 내용의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서울행정법원에 같은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혁신처는 개인정보를 공개할 경우 사생활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며 “그러나 관련 법령을 따져보면 퇴직공직자의 경우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을 위해 개인 정보를 공개하게 돼있다”고 비공개 처분에 대한 부당함을 주장했다.
 

인사혁신처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막겠다며 개정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비공개 처분의 이유로 내세운다. 2015년 3월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5조의5는 ‘퇴직 당시 소속기관명·직위 또는 직급·퇴직 시기’ 등을 심사 결과의 공개 항목으로 새로 정했다.

참여연대 측은 인사혁신처가 취업심사를 하는 데 있어 온정주의를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취업을 엄격히 제한하기보다 허용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인사처는 취업심사서 불승인을 당할 소지가 높은 공직자들은 심사를 신청하지 않기 때문에 승인율이 높다고 주장한다. 높은 승인율은 취업심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반증이라는 논리다.

단 공직자윤리위의 의사결정 과정이 ‘비공개’인 부분은 문제로 지적된다. 위원회 회의록은 물론, 승인·불승인 사유에 대해서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공직자윤리위가 재취업 기업의 업무 관련성 등을 어떤 사유로 판단했는지 알 수 없다. 취업심사가 ‘고무줄 잣대’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구멍 뚫린 제도
관피아 못 막아

취업심사를 건너뛰는 ‘임의 취업자’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공직자윤리위는 최근 4년간 퇴직 공직자 중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임의 취업한 공직자 648명을 적발했다. 관피아 근절을 위해서는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사혁신처 교육청공무원 시험 출제

인사혁신처가 2019년부터 각 시·도 교육청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30일, 내년도 교육청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에 대한 변경사항을 안내하는 자리서 “내년 교육청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문제의 경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인사혁신처로 변경된다”고 설명했다.

부산교육청도 위탁출제 기관 변경을 알리며 “문제출제 기관이 인사혁신처로 변경됨에 따라 시험문제가 공개되는 과목수가 15과목서 23과목으로 대폭 증가해 수험생들의 알권리가 더욱 충족되고 예산절감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위탁출제 기관이 인사혁신처로 이관됨에 따라 문제 출제 유형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국어의 경우 기존 교육행정직에서는 한자의 출제가 없었지만, 내년부터 한자가 출제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인사혁신처가 전국 시·도 공무원은 물론 시·도교육청 시험문제까지 출제하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공무원 채용 중앙부처로서 발돋움하게 됐다. 2019년 교육청시험은 내년 2월 각 시·도 교육청별로 해당 홈페이지에 선발인원과 시험일정 등 임용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게재될 예정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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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