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흔드는’ 검은 손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13 10:15:16
  • 호수 1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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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에…대북 주도권 다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4·27판문점선언’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이하 연락사무소) 설치가 개성공단서 한창인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항명 의혹이 불거졌다. 우리 측 연락사무소장의 직급에 대한 대통령의 지침이 내려졌음에도, 통일부가 이와 어긋나게 북측과 협의했다는 것이다.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조 장관을 흔드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주장이 통일부 안팎서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27일 판문점서 만나 13개 항목의 선언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중 핵심이 바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설치다. 연락사무소가 들어서면 언제라도 남북 당국자 간에 신속한 대면 협의가 가능하다. 이른바 남북 교류·협력의 ‘전진기지’인 셈이다.

4·27선언
핵심 사항

연락사무소는 완공 단계에 있다. 지난 6월19일부터 22일까지 개보수 공사 사전 준비를 마친 통일부는 북측과 공사 일정을 협의한 뒤 지난달 2일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현재 시설 개보수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문재인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이달 중 연락사무소를 개소한다는 계획이다.

청와대와 통일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수차례 회의를 통해 지난달 중순경 연락사무소장의 직급을 차관급 내지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으로 하고 청와대 직속으로 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가 연락사무소장의 직급을 차관 내지 수석급으로 하려는 이유는 연락사무소를 통해 남북 간 교류협력뿐 아니라 판문점선언 이행 과정서 북측과 폭넓은 의사교환을 하기 위함이다. 폭넓은 의사교환은 민간교류를 포함한 남북의 대대적인 교류·협력을 의미한다.


기존의 직급으로는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기 힘들다. 실무 책임자는 깊이 있는 정무적 논의를 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논의 대상인 북측 역시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고위직 인사가 연락사무소장을 맡아줘야 우리 측과 폭넓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청와대의 이 같은 결정은 선행학습에 기인한다. 현재까지 판문점 연락사무소장은 부처 과장급으로 주로 남북 간 전화통지문을 주고받거나 회담 일정 등을 조율하는 역할에 국한돼왔다. 개성공단의 남북경제협력사무소장 역시 소통 업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직급이 낮다보니 북측과 긴밀한 협의를 하지 못하는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락사무소의 중요성을 익히 강조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선언을 공동 발표하면서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해 “매우 중요한 합의”라며 “여건이 되면 각각 상대방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 만들려
청와대 패싱?

개성공단을 벗어나 북측이 서울에, 우리측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면 대사급 외교도 가능하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단계까지 발전하는 교두보가 바로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달 초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서 연락사무소 구성 및 운영을 통일부에만 맡기지 말고 ‘판문점선언 이행추진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속히 가동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이번 정부가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서훈 국정원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유엔 대북제재 면제를 요청한 이유도 연락사무소 개소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관측이다.


연락사무소 개소를 목전에 두고 통일부가 북측의 연락사무소장 직급을 국·실장급으로 내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남북 연락사무소장을 차관급이나 수석급으로 격상하려는 청와대의 의중에 반한다. 

청와대, 국정원 등 관계부처와의 회의 때도 통일부는 연락사무소장을 실·국장급으로 해 통일부가 직접 운영하는 방안을 고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부가 개보수 공사를 위해 개성공단에 파견돼있는 통일부 연락사무소 추진단을 통해 북측에 이 같은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추진단이 개성서 황충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장에게 이러한 통일부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추진단은 지난 6월부터 수차례 방북해 황 부장 등을 만나 사무소 개설을 논의한 바 있다. 지난 6월 통일부가 북측 인사와 관련협의를 한다며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 사진에는 추진단과 대화하는 황 부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북에 국장급 연락소장 요청 의혹
대통령 재가 어겼나 ‘항명’ 비난

북측에 국·실장급을 요청한 이유는 통일부 국장급과 직급을 맞추기 위함이라고 한다. 즉 통일부가 남북 개성공단 연락사무소장 직급을 맞춰 통일부 내부 인사를 연락사무소장 자리에 앉히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황 부장이 북측 연락사무소장 직급을 논의할 수 있는 관계자인지에 대해 통일부는 “관련정보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청와대 참모와 관련 기관 관계자들은 이미 결정된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북측과 접촉한 데 대해 조명균 장관을 포함한 통일부 전체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항명’ ‘국기문란’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통일부는 관련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통일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통일부는 연락사무소 개소 준비 및 개소 후 운영방안 등 관련된 모든 사안을 판문점선언 이행추진위원회 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등 범정부적 협의체서 유관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해왔다”며 “(해당)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락사무소 세부 구성 및 운영문제는 현재 북측과 협의 중에 있는 사안으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도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최근 춘추관서 기자들과 만나 “그런 일(통일부가 북측에 연락사무소장을 실·국장급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전혀 없다”며 “당연히 청와대서 질책했다거나 한일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통일부가 청와대의 결정을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북측에 실·국장급 연락사무소장을 요청했다는 점이 상식선서 행해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통일부 입장서도 대통령의 결정에 항명하면서까지 실·국장급 자리 하나 늘리려고 했다는 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통일부 수장인 조명균 장관은 관련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원칙적으로 끝까지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의혹에
통일부 발끈

통일부 안팎에서는 조 장관을 견제하려는 세력이 해당 의혹을 언론사에 흘렸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최근 남북훈풍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청와대와 여권 일각서 제기된다. 통일부가 남북협력사업에 다소 소극적으로 접근한다는 불만이다. 남북관계 주무부처로서 창의적인 교류 방안을 제시해 국면 전환을 주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과거부터 이어져 온 통일부-국정원 간 주도권 대결이 이러한 의혹을 낳게 한 원인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 등에서 제기된다. 연락사무소 설치에 대한 속사정을 아는 기관은 통일부 외 청와대와 국정원 정도다.

통일부와 국정원은 한 명의 대통령 임기 안에서도 누가 대북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왔다. 문정부 초 국정원은 남북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며 주목받았다.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이후 진행된 각종 공식 남북회담 과정에 국정원이 관여하려 하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극을 받은 통일부는 판문점선언이 나온 4·27정상회담 이후 진행된 후속 회담서 세부 의제 설정이나 대북 협상 과정을 주도했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이 있은 지난 6월 이후에는 국정원을 제치고 통일부가 대북 정책 및 의제 설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두 기관의 보이지 않는 주도권 대결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정책을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도하면서 통일부는 외교안보 정책 결정 과정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10월 통일부 내 남북회담 경험이 가장 풍부한 간부들이 남북 고위급 대표단 오찬회담에 참석하면서 ‘통일부 주도론’이 부상했다.

통일부 내부 흉흉 국정원 배후설 솔솔
3차 회담 앞두고…대북라인 균열 조짐

이 과정서 통일부와 국정원 간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했다. 한기범 당시 국가정보원 1차장 오찬회담에 공식적으로 배석하자 통일부 안팎서 “첩보를 다루는 국정원이 공개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2013년 7월에는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개성공단 3차 회담 결렬의 이면에 통일부-국정원 간 갈등이 존재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 정책위의장은 “개성공단 실무회담 관련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국정원의 갈등설이 흘러나오는 것이 우려된다. 회담 대표 간 갈등이 있었고, 그 결과로 서호 남북당국실무회담수석대표가 전격 경질됐다”며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중심이 돼 개성공단 협상을 하는데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강경한 입장을 제시해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나. NLL 대화록 공개·댓글 공작정치 등으로 정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국정원이 대북관계까지 파탄 내려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폭로했다.

앞서 통일부는 1, 2차 실무회담서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서호 전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을 김기웅 전 통일부 정세분석국장으로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협상 중 수석대표를 교체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이에 통일부는 “예정된 인사”라고 해명했지만, 실무회담 과정서 통일부의 대북 유화정책에 불만을 품은 김장수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이 본보기 차원서 서 대표를 교체했다는 의혹이 나왔었다.

통일부-국정원
케케묵은 갈등

지난 2006년 10월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하는 일이 발생했다. 청와대·통일부와 국정원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김 원장이 사퇴 결심을 굳힌 것이다.

당시 정국은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지도부 방북과 386 간첩단 수사, 북한 핵무기 실험 이후 대북제재 수위로 시끄러웠다. 국정원은 전현직 민노당 당직자들이 구속된 386 간첩단 사건을 수사 중인 시점에 민노당 지도부 방북은 적절치 않다며 반대 의견을 전달했으나 통일부는 방북을 규제할 만한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며 승인했다.

국정원은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386 간첩단 수사에 착수했다. 윤태영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보도를 보고(국정원이 386 간첩단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꼭 (청와대에)보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북한 핵무기 실험 이후 대북 강경대응 기조를 펼쳤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실상 통일부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김 원장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당시 국정원은 김 원장이 청와대·통일부와의 갈등 때문에 사의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는 기존 판문점 연락사무소와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를 넘어서는 권한과 위치를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 연락사무소장이 남북경제협력은 물론 정치·문화·사회·체육·법률 등 다양한 분야의 남북교류를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최종적으로 민간교류 활성화를 결정짓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획대로 이달 내 설치가 완료될 경우 당장 올해 가을로 예정된 3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국장급 연락사무소장 요청 의혹에 이어 통일부-국정원 주도권 대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좋은 평가를 받아온 문정부 외교안보라인에 자칫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차남북회담 급물살 내막

3차남북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8월 말 내지 9월 초에 열릴 것이란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13일에 판문점 북측 통일각서 열린다. 북측이 지난 9일 우리 측에 통지문을 보내 고위급회담을 열어 ‘4·27판문점선언’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3차남북회담의 준비와 관련된 문제를 협의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동의하는 통지문을 북측에 전달했다.

북한이 먼저 3차정상회담을 제안한 이유는 6·12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가 비핵화와 종전선언 문제 등을 두고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읽힌다.

북미는 비핵화 신고·사찰과 종전선언을 각각 상대에게 요구하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핵화 협상을 두고 서로가 판을 깨려는 의지는 없으나, 좀처럼 신뢰를 쌓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이 우리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정상회담이 확정된다면 소강상태였던 북미 협상이 동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한은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는 현 시점을 남북정상회담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판문점선언 이행과 정상회담 준비상황 협의라는 의제를 제시한 것 외 양측 간 협의된 사항이 없어 조심스러운 전망도 감지된다. 올해 들어 네 번째로 열리게 되는 이번 고위급회담서 우리 측은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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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