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기무사 ‘수상한 연결고리’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8.06 10:56:15
  • 호수 1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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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들이 지금도 쪽지보고 올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두환씨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국회 관계자는 여의도 한 식당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서 국방부 업무보고 및 현안보고가 진행됐으며, 검찰과 군 특별수사단이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합동수사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67쪽 분량의 기무사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가 공개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정치권서 이 같은 소문이 퍼지는 이유는 전씨가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전씨는 지난 1979년 3월5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12·12군사쿠데타가 있던 해다.

무소불위
육사 11기

당시 보안사령관은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1970년대 박정희정권 시절 보안사령관은 대통령과 독대 보고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군 내부서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국방부장관도 보안사령관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알려진다.

사실상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1979년을 전후로 보안사의 힘은 정점을 찍었다. 전씨는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참모들에게 ‘시국 수습방안 연구’를 지시했다. 계엄 선포 시 보안사가 어떻게 정국을 바로잡을지에 대한 연구였다. 

이는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을 견제할 목적이었다. 차지철 실장은 당시 보안사령관의 대통령 대면 보고를 자신에게 하도록 하는 등 보안사 약화에 힘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돼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해 12월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하는 일로 12·12쿠데타를 시작했다. 

정승화는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다.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였다. 이후 사회 불안을 안정시킨다는 명분 아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전씨가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회’의 힘이 컸다. 보안사로 서울을 점거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다.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11기, 12기생 회원들이 중심인 하나회 인맥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줬다. 

하나회는 1963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결성된 군 사조직이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서울 한복판서 지지 행진을 주도해 박 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이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웠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도운 하나회 인사들을 군 핵심 요직에 앉혔다. 쿠데타를 묵인한 이희성을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 황영시를 육군참모차장으로 임명했다.

이듬해 5월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방해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5·17쿠데타를 일으켰다. 국회에 군 병력을 주둔시켜 임시국회의 개최를 막았다. 이에 항거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다. 이때 하나회도 진압에 참여했다.

신군부 종식
그러나…


전씨는 당시 자신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계엄군의 진압 작전이나 발포 명령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서가 최근 공개됐다. 

5·18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인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기무사령부(옛 보안사)가 보존하고 있는 ‘직무유기 경찰관 보고’ 문서를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고 이준규 5·18 당시 목포경찰서장을 직무유기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문서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의 친필 서명이 담겨있다.

전 전 대통령이 만든 하나회는 김영삼(YS)정부 들어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1993년, YS는 취임 9일 만에 하나회 청산에 돌입했다. 이는 대통령의 측근들조차 모를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당시 YS는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불러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하도록 지시했다. 하나회 몰락의 시작이었다. 이어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하나회가 차지했던 군 요직을 비하나회로 채웠다. 이는 오늘날 YS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하나회는 사실상 육사 36기부터 종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성들 중 하나회 멤버가 아직 존재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말이 있다”는 국회 관계자의 말도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신군부의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육사 출신들이 군내 주류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알자회는 34기부터 43기까지 결성돼있다. 승진과 관련해 군 내부서 육사 출신들의 알력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여전히 존재한다.

국회 주변서 소문 파다, 진실은…
육사 36기가 끝? 하나회 생존 의혹

지난달 23일 공개된 계엄령 문건의 세부계획이 12·12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의 계획과 일치하는 점도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싣는다. 기무사가 작성한 보고서의 기본 틀은 전씨가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령관 시절 만든 계엄령 문건이다.

첫 번째로 지금의 기무사와 과거의 보안사는 언론 보도를 사전에 검열하고 각 언론사에 보도통제 요원을 배치하려는 공통된 계획을 세웠다. 보안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로 내려진 계엄에 따라 실시된 신문, 방송, 통신, 잡지에 대한 보도검열을 주도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진상 규명 자료에 따르면, 보안사는 ‘언론조종반 운영계획’을 만들어 ▲검열단과 언론기관 간의 견해 상 차이점 조정 ▲검열기준시행 상태 점검 ▲검열과정 상에서의 물의 배제 ▲현지 조언을 통해 제반 문제점 해소책 강구 등을 시행했다.

보안사령관이 직접 언론사주 및 언론사 간부와 면담을 갖고 언론인의 반응을 수집, 신군부 측에 협조하도록 요구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문건에는 계엄선포와 동시에 발표될 언론, 출판, 공연, 전시물에 대한 사전검열 공보문과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 계획이 담겼다. 문건 말미에는 KBS, <조선일보> <연합뉴스> 등 신문·방송·통신사 총 102개 매체의 보도내용을 사전 검열한다는 내용과 이를 위반할 시 형사처벌과 매체 등록 취소에 이르는 제재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계엄사령부는 보도검열단 9개반을 편성해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원본, 영상제작물 원본을 제출받아 검열할 계획이었다.

언론 검열
민간인 사찰

두 번째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제하려는 계획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협력자라는 혐의를 씌워 그를 체포했다. 이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그를 연행해 구금했다가 1980년 내란기도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이등병으로 강등했다. 

분명한 ‘하극상’이자 방해가 될 만한 인사를 축출하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기무사는 계엄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하려고 했다. 육사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던 것으로 풀이된다.


세 번째는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달 23일 국방부가 공개한 합참 계엄실무편람에는 기무사가 계엄령을 검토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평시 계엄업무담당 조직은 국방부 기조실과 합참 계엄과다. 

그럼에도 기무사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부대를 배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1980년 전 전 대통령 보안사가 지휘계통을 초월해 계엄 정국을 주도하려 한 점과 일치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법적 권한이 없음에도 계엄 확대를 주도했다.

계엄령 문건 역시 1980년 5월에 내린 비상계엄령을 원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나오는 포고문에는 전두환 계엄사가 발표한 포고문들이 담겨있다. 이전 포고문을 참고해 이번 계엄령 포고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도 검열 역시 앞서 계엄령 때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보안사는 지난 1990년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으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한다. 윤석영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했다. 청명계획은 보안사가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어 이들을 개별 사찰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찰 대상에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 통일민주당 의원, 임종석 전국대학생협의회 의장 등 1303명의 인사가 포함됐다.

계엄령 문건, 12·12 계획과 일치
보안사→기무사, 이름만 바뀌었다

시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보안사에 불어닥친 첫 위기였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보안사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1991년 1월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리고 다시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27년이 흘렀지만, 이름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기무사는 보안사에서 하던 임무들을 그대로 답습해왔다. 국방 사이버 댓글사건 조사 태스크포스(TF)는 청명계획처럼 지금의 기무사가 온라인 여론조작을 넘어 세월호 사건에도 조직적으로 관여한 문건을 발표했다.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2014년 4월28일부터 그해 10월12일까지 약 6개월간 ‘세월호 관련 TF’를 운영했다. 문제는 해당 TF서 ‘불순세력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조사 TF는 “기무사는 2014년 당시 ‘실종자 가족 및 가족대책위 동향’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상 탐색구조 종결 설득 방안’ ‘유가족 요구사항 무분별 수용 분위기 근절’ ‘국회 동정’ 등의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육사 중심의 군 사조직은 기무사 개혁을 철저히 거부하며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공고히 지켜왔다. 최근 벌어진 송영무 국방부장관 ‘하극상’ 사태도 결국은 기무사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이라는 게 중론이다.

송 장관은 기무사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약 1년여 전 송 장관은 자신의 취임식을 마친 후 국방부에 기무사와 사이버사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방침에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오해를 사거나 사찰로 오해받을 수 있는 기무사의 동향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여러모로
닮아있어

결국 국회서 돌고 있는 “기무사 일부 장성들이 전 전 대통령에게 아직까지 보고를 올린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보다 기무사가 그만큼 과거에 얽매여 개혁을 등한시해왔다는 점을 방증하는 의미가 크다. 국방부에선 지난 2일 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재편성하고 현재 병력의 30%를 감축하는 개혁 권고안이 확정됐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점 못 잡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본질서 벗어나는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달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기무사 비밀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주도한다는 점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같은 날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리가 부족하니 하등의 상관이 없는 내용까지 끌어와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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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