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이주현 기자]패러디(parody)는 다른 작품이나 언행을 풍자적으로 모방하는 해학적 행위를 뜻한다. 정치권에 대한 패러디는 예전부터 만연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좀 더 기발한 방법으로 인터넷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SNS를 통한 정치인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이는 해학적으로 웃어넘기기에는 함축된 의미가 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한 젊은층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졌음을 나타내주는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 받고 있다.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패러디 실태를 점검해 봤다.
SNS 통해 급속도로 전파, 정치인들의 ‘황당행보’를 예방하는 효과도
말실수 한 번이면 끝장, 정책과 공적은 사라져버리는 낙인효과 우려
유명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대중의 관심사이고 그 영향력 또한 크다. 특히 황당하고 이치에 어긋난 언행을 한다면 이를 비꼰 글과 이미지는 삽시간에 퍼져 두고두고 회자되며 해당 정치인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정치인 패러디는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층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내는 동시에 정치인들의 ‘황당행보’를 예방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반면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듯 지나친 희화화와 왜곡, 조롱 등이 난무해 이미지 실추와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패러디계 최고스타?
현역의원 중 패러디계 최고스타는 단연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다. 안 전 대표는 보온병과 자연산 발언, 병역미필 등으로 인해 일약 패러디계의 황제로 떠올랐다.
그는 북한의 포격으로 폐허가 된 연평도를 방문해 불에 그슬린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해 ‘보온상수’라는 별명을 얻었고 “안상수도 사실 군대에 다녀왔다. 병과는 보온병” “정말 상수스럽다(잘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걸 빗댄 말)” 등 배꼽 잡는 패러디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 있으면 네티즌들은 “이게 바로 ㅇㅇ입니다. ㅇㅇ”라는 패러디를 끊임없이 쏟아냈고 이는 최근까지도 이슈화 되고 있다. 병역연기 사유가 행방불명이었던 것을 빗댄 ‘행불상수’라는 별명도 그의 유명한 별명 중 하나다.
이 같은 돌발 발언과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안 전 대표가 4·27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의사를 밝히자 한 포털사이트에선 “안 대표는 내년 대선 때까지 국민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며 사퇴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웃지 못할 광경도 벌어졌다.
한편, 지난달 22일엔 서울시장 후보인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패러디가 도마에 올랐다.
나 의원은 2004년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게 논란이 되자 “행사 내용을 모른 채 갔다”고 해명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초청장에 적혀있는 행사내용을 모른 채 갔다는 게 말이 되냐”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나 의원의 해명에 “남자인줄 모르고 여탕에 들어갔어요” “아직 해방 안 된 줄 알고 갔어요” “내가 자민당 의원인 줄 알고 갔어요”라는 ‘모르고’ 패러디가 줄을 이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25.7%를 “사실상 승리”라고 한마디 했다가 단숨에 패러디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등록금 25.7% 냈으니 사실상 완납한 것” “로또 6개 중 2개 맞혔으니 사실상 1등” “받아쓰기 25.7점 받았으니 사실상 문장가” 등의 재치 있는 패러디 들이 줄을 이었다. 한 네티즌은 “보온병도 사실상 포탄인데, 홍준표는 사실상 안상수”라는 촌철살인을 날리기도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했다가 패러디계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주민투표를 앞두고 서울시에 사상 최악의 물난리가 나자 무상급식을 빗댄 ‘무상급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강남시장이 강남을 위해 축포를 터트렸다”며 힐난의 목소리와 함께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 빗댄 ‘오세이돈’도 인기를 끌었다.
주민투표가 개표 요건인 투표율 33.3%에 미달 된이후 오 전 시장의 ‘무리한 승부수’를 비판하는 시 ‘5세 훈이에게 보내는 祝詩’가 트위터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트위터리안 ‘kimgaeng0927’은 김소월의 ‘진달래’를 개사해 ‘33% 미달해/가실 때에는/등 밀어 퍼뜩 보내드리오리다/강남에 우면산/진흙탕물/아름퍼서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뻘을/질퍽질퍽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아이들 밥 먹이기 싫어/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시를 올리자 트위터 이용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팩트에 어긋난 패러디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패러디가 급증하자 패러디 당사자들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간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매체만 접하던 언론과는 다른 루트의 논란 확산이 못마땅해 보이는 눈치다.
대부분 패러디의 중심이 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패러디라고는 하지만 사실과 어긋나고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너무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소위 진보라 생각하는 집단들이 무턱대고 근거 없이 보수 정권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도 지난해 말 자신을 겨냥한 패러디로 곤욕을 치른 뒤 “좋게 말하면 진보고 나쁘게 말하면 좌파세력인데, 이들이 디지털부문에서 압도하는 것은 틀림없다”며 인터넷과 SNS에서 여권을 겨냥한 패러디가 절대적으로 많은 게 좌파가 디지털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리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패러디에 노골적인 불반을 드러내는 정치인도 있다. 평소 직설적인 언행으로 화제를 일으키는 홍 대표는 자신의 패러디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그 말의 내용도 모르고 홍준표를 패러디하는 것이 유행”이라며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 패러디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긍정적인 입장은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젊은층이 패러디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자칫 패러디 대상이 되면 입을 상처가 크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책임 있는 말과 행동을 강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부정적인 영향도 지적된다. 순간적인 실수로 인해 정치인의 비전과 정책, 공적은 사라져버리는 낙인효과가 우려된다는 것과 이미지 실추와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양날의 검’과 같은 정치 패러디지만 이 같은 현상은 SNS열풍이 식지 않는 한 더욱더 활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