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91)전시효과

생색만 내는 당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개소문이 연정토와 큰 아들 남생에게 평양성을 당부하고 남건을 위시하여 고문, 고연무, 두방루, 검모잠, 뇌음신 등 장수들을 대동하고 성을 나서 박작성, 오골성, 신성을 거쳐 천리장성을 따라 요동성에 도착했다.

요동성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국경순찰을 강화하는 중에 온사문은 승병을 조직하여 두세 명 단위로 속속 국경을 넘어 일차 집결지인 화원진에 집결했다. 

그곳에서 당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점검을 취하고는 다시 이차 집결지, 당의 수도가 있는 장안으로 이동했다. 

온사문의 승리

산시성에 도착한 온사문이 당군의 경계가 삼엄한 상황을 접하고 인근인 황산(橫山)에 진지를 구축했다. 


속속 승병들이 모여들자 온사문이 전열을 정비하고 승병들에게 각자 지참한 고구려 군사의 옷으로 갈아입도록 또한 투구형 모자를 쓰도록 했다. 

아울러 진지의 누각에 삼족오 깃발을 세웠다.

그 소식을 접한 당은 비상이 걸렸고 즉각 설인귀로 하여금 대처토록 했다. 

오래지 않아 설인귀의 부대가 황산에 이르자 누각에 올라선 온사문이 그들의 행태를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이미 설인귀에 대한 이야기는 연개소문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온사문이 급히 전투태세에 임했다. 

임시방편으로 나무로 얼기설기 짠 진의 곳곳에 허술하게 만든 허수아비를 세워 고구려군 복장을 입히고 소수의 군사들만 남겨두고 밤에 숲에 매복했다.

멀리서 살피던 설인귀가 척후병을 보내어 고구려 진영을 염탐했다. 


세밀하게 살핀 척후병이 고구려의 상황을 세세하게 보고하자 설인귀가 연개소문에게 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고구려 군사의 다수가 허수아비란 사실을 상기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고구려 병사들이 그곳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온 점, 아울러 전에 당했던 경험처럼 되지는 않으리란 생각으로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선두에서 도끼를 휘두르며 침공을 감행했다.   

그를 살피던 소수의 고구려 군사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설인귀를 필두로 당나라 군사들이 허술한 목책을 뚫고 진을 유린하기 시작한 시점에 온사문이 숲에서 앞으로 나섰다.

“자네가 설인귀인가!”

설인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덩치는 자신만하고 우직하게 생긴 사람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네 놈이 누구기에 이 대장군의 명성을 알고 있는 게냐!”

“대장군이라고, 미련한 놈 같으니.”

간단하게 말을 끝낸 온사문이 칼을 뽑아 들었다. 

순간 숲에서 함성이 울리며 불화살과 화살이 고구려 진지를 향해 비 오듯 날아들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는지 당당했던 당나라 군사들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이어 불화살이 허수아비에 떨어져 불꽃이 일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혼비백산으로 변해갔다.


“당나라 오랑캐 놈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

온사문의 고함에 북소리가 울리며 고구려의 승병들이 긴 창을 들고 앞으로 뛰쳐나갔고 뒤를 이어 칼을 든 병사들이 거센 기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던 설인귀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퇴각명령을 내리자 당나라 군사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달려 나오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계략으로 설인귀를 쫓아내다…허수아비는 미끼
수군만 보낸 당 속내는?…김유신 “직접 결판” 

660년 새해가 밝자 무열왕은 금강 대신 김유신을 상대등으로 삼아 조정의 체제를 정비하고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당나라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당고종이 좌무위대장군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삼아, 좌효위장군 유백영 등 수군과 육군 십삼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다. 

또 칙명으로 무열왕을 우이도행군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응원하게 하였다.

신라와의 협력문제 때문에 선발대로 도착한 김인문으로부터 당군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 조정이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군이 출발했다는데 우리 측은 어찌 대응해야겠소?”

김유신이 답에 앞서 인문을 주시했다.

“저하, 먼저 당 측의 계획을 알려주시오.”

“당의 군사들은 내주를 출발하여 덕물도(德物島, 인천 옹진군 덕적면)에 집결하기로 하였습니다.”

“십삼만 군사 모두 말입니까?”

“그러합니다.”

순간 유신의 얼굴에 공허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그러시오, 상대등 대감.”

“당에서 십삼만의 군사가 온다 하는데, 진짜 그만한 병력이 오는지도 모르겠고 여하튼 바다를 건너온다면 다수가 수군들로 사료됩니다.”

“그 이야기는?”

“결국 당나라에서는 이번 전투에 생색만 내겠다는 의미로 비쳐집니다.”

“생색만 내다니요?”

“백제를 침공하는데 수군이 어찌 가당하겠습니까?”

수군을 되뇐 무열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하, 그렇다고 너무 심려 마십시오.”

“무슨 이야기입니까?”

“일종의 전시효과입니다.”

“전시효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군의 사기인데, 그런 측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아울러 뭔가요?”

무열왕이 급했던 모양으로 급히 유신의 말을 가로챘다.

“어차피 이 전쟁은 우리의 전쟁입니다. 후에 당이 공적을 거론하며 시시콜콜 개입할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백제와 결판내는 방식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당나라 군사들을 무시하자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신라의 각오를 다진다는 뜻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짐은 어찌할까요?”

“당나라 군사들의 문제는 왕자들에게 맡기시고 전하께서는 소장과 함께 신라군의 사기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움직이도록 하심이 가한 줄로 아룁니다.”

“짐이 맞이하지 않는다고 다른 뜻을 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진짜 저들의 신하처럼 행동하시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유신이 춘추의 큰 아들 법민을 주시했다.

“그 부분은 저하께 일임하도록 하시지요.”

“아바마마, 그렇게 하셔도 무방할 듯하옵니다.”

답을 하는 법민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무열왕이 법민에게 당군을 맞이하라 지시하고 김유신과 진주, 천존 등을 거느리고 북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천정(南川停, 이천 설봉산성)까지 이르는 동안 신라군의 전열을 점검하며 독려하던 무열왕 일행이 다시 남으로 길을 잡아 금돌성(今突城, 상주시 모동면 소재)에 도착해 머무는 중 당나라 군사들이 덕물도에 도착했다.

“신라의 왕은 무엇하고 경이 맞이하는 거요!”

소정방의 말투뿐만 아니라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당연히 그리해야 할 일입니다. 하오나 신라의 왕은 지금 대장군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백제 침공 시작

“어디서 기다린다는 말이오!”

“먼 길 오신 대장군의 수고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신라 전 지역을 돌며 대장군의 지원 사실을 알리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군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들으시면 자다 말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오실 것입니다.”

소정방이 머쓱한지 괜히 헛기침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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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