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살생부 ‘홍준표 리스트’ 집중해부

‘혼자 못 죽어’ 물귀신 작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홍준표 리스트’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뒤흔들고 있다. 홍준표 한국당 전 대표가 사퇴하던 날 마지막 페이스북 정치라며 올린 글에는 일부 의원을 묘사하는 듯한 글이 올라왔다. 문제는 해당 리스트가 앞으로 있을 당권 경쟁서 정치적 살생부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당을 이끌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비양심적이고 계파 이익에 우선하는 당내 일부 국회의원들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홍 전 대표는 지난 16일 “마지막으로 막말 한 번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지난 14일 대표직을 내려놨다. 사퇴 이틀 만에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떠난 준표가
후회하는 것?

홍 전 대표는 리스트를 통해 청산하지 못했다는 일부 의원들을 묘사했다.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의총에 술이 취해 들어와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 ▲국비로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친박 행세로 국회의원 공천 받거나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뻔뻔한 사람 ▲탄핵 때 줏대 없이 오락가락 하고도 얼굴, 경력 하나로 소신 없이 정치생명 연명하는 사람 ▲이미지 좋은 초선으로 가장하지만 밤에는 친박(친 박근혜)에 붙어서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곧 해당 리스트가 묘사하는 의원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정치권에선 묘사한 리스트별로 실명이 적힌 지라시가 나돌았다. 의심을 받은 의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 홍 전 대표가 묘사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고 적극 방어하고 있다.


한국당 정우택 의원은 최근 “나는 낮술을 그렇게 먹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지라시서 ‘의총에 술이 취해 들어와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으로 지목받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지난 19일 YTN라디오와 인터뷰서 “비서실서 준 지라시에 홍 (전)대표가 마지막으로 (막말)한 그 9가지 유형 중 마지막 항 내용이 정우택이라고 하는데, 나는 낮술을 그렇게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의원총회 가서 술주정한 적이 없다”며 “내가 작년에 원내대표를 했는데, ‘원내 의총을 주지하는 사람이 술 먹고 들어가서 술주정했다’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종섭 의원도 리스트 중 한명으로 지목됐다. 이번에는 선배가 직접 지목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정 의원을 홍 전 대표가 묘사한 한국당 내 정리해야 될 인물들 중 한 사람이라고 지목하며 “서울대 법대 교수에 헌법학책도 썼던 분이 ‘진박모임’ 인증사진 찍을 때 ‘저 사람 권력욕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장관도 했고, 홍 전 대표의 1번서 9번 중 해당사항이 많은 의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죽은 듯이 있다가 홍 전 대표 물러나니까 중진 사퇴? 한국당 초선분들은 ‘중진 찜 쪄 먹는 노회한 초선’”이라고도 했다.

전 전 의원은 정 의원이 리스트 9개 사항 중 해당되는 게 많다는 주장이다. 정 의원은 행자부장관을 역임해 고관대작을 지낸 이력이 있다. 20대 총선 당시에는 공천을 받아 보수의 성지라는 대구 동구갑서 당선됐다.

의심받는 정우택
“낮술하지 않아”

정 의원은 20대 총선 전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행동을 같이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대구지역에 출마한 예비후보 5명과 함께 해장국을 함께 먹은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진실한 사람’을 이르는 ‘진박(진짜 친박)’ 인증샷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앞서 정 의원을 포함해 김순례·김성태(비례대표), 성일종, 이은권 등 초선의원 5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중진은 당 운영 전면에 나서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우리의 이 걸음은 어떤 경우에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 전 의원의 일침은 당내 중진의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친박계 초선의원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과정서 나왔다. 

그는 기자회견을 연 초선들에게 “홍 전 대표 시절 입 한 번 뻥끗도 하지 않았던, 이름만 초선인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싶다. 분명히 뭘 잘못 먹었나 싶다. 어이가 없다 못해 ‘대단하다’라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고 작심한 듯 말했다.

나머지 인사가 누구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온라인에서는 그간 의원들의 행동에 비춰 다양한 리스트가 유포되고 있다. 각각의 리스트는 홍준표 리스트를 기반으로 추측에 의거해 작성된 만큼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정종섭, 홍문종, 정우택, 김무성, 원유철, 이주영, 서청원, 김진태, 김태흠, 한선교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홍 전 대표 체제 당시 그와 대립각을 졌던 인사들이다.

리스트 파동 “마지막까지 구정물”
9개 항목이 지목하는 사람 누구?

지난해 5월 홍 전 대표와 홍문종 의원은 ‘바퀴벌레’ ‘낮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심한 갈등을 벌인 바 있다. 

당권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홍 전 대표는 친박계 의원을 거론하며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있었다”며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 참 가증스럽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홍 의원은 한국당 중진간담회서 “그동안 선거하면서 ‘하나가 되는 게 당이 사는 길’이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쳤건만 무슨 바퀴벌레고, 탄핵 어쩌고 하느냐”며 “제정신이냐, 낮술 드셨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홍 전 대표와 김무성 의원 간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 의원이 한국당에 복당한 뒤 홍 전 대표는 김 의원과 친무(친 김무성)계 인사를 당 지도부서 철저히 배제해왔다. 비록 친무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홍 전 대표와 투톱을 이뤘지만, 원내대표는 선출직이다. 

홍 전 대표 체제 하에서 친무계는 지명직서 철저히 배제돼왔다.


홍 전 대표와 원유철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서 심한 갈등을 보였다. 지난해 6월 당권 레이스가 한창 진행이던 당시 두 사람은 설전을 넘어 고성과 막말을 주고받았다.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선 ‘홍준표 바른정당 입당설’로 충돌, 감정이 상한 홍 전 대표는 기념촬영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TV토론회서 재회한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며 네거티브전을 펼쳤다. 

원 의원은 홍 전 대표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언급했으며, 이에 맞서 홍 전 대표는 원 의원이 경기도지사 경선과 대선후보 경선에서 컷오프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지목된 정종섭
진박이라서?

이주영 의원과의 갈등은 지난해 11월 원내대표 선거 과정서 불거졌다. 당시 두 사람 사이에는 ‘개명’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이 의원은 사석서 홍 전 대표의 이름을 ‘판표’서 ‘준표’로 개명하도록 자신이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 전 대표는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내 이름을 개명해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처사”라며 정면 비판했다. 이 의원을 한순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다. 이 의원도 가만 있지 않고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며 홍 전 대표의 페이스북 정치를 지적했다.


최근 한국당을 탈당한 서청원 의원과도 깊은 갈등의 골을 보였다. 지난해 5월 대선후보로 나선 홍 전 대표는 특별지시를 내려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에게 내려진 징계를 해제했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당권을 잡자 생각이 달라졌다. 

홍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당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서 의원, 최 의원에 대해 탈당을 권유했다.

서 의원은 크게 분노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홍 전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서 서 의원은 홍 전 대표의 약점인 ‘성완종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서 의원은 “검찰 수사 과정서 홍 (전)대표가 내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며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압박했다.
 

홍 전 대표는 “서 의원이 정치를 더럽게 배워 수 낮은 협박이나 한다”며 즉각 응수에 나섰다. 결국 의원총회가 열리지 않아 서 의원에 대한 탈당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후인 지난해 12월 당 당무 감사 결과에 의해 서 의원은 당협위원장직을 박탈당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홍 전 대표가 보복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무성했다.

정종섭 지목돼 “고관대작에 진박”
단순 리스트? 살생부로 악용 우려

김진태 의원과는 여러 차례 부딪혔다. 홍 전 대표의 ‘연탄가스’ 막말이 나오자 김 의원은 개인 입장문을 통해 “당은 대표의 놀이터가 아니다. 대표로서 품위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지쳤다”며 “지방선거까지 모든 선거 일정을 당 공식기구에 맡기고 대표는 일체의 발언을 자제해 주기를 당부한다. 안 그러면 다 같이 죽는다”고 지적했다.

홍 전 대표가 바른정당 복당파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자 김 의원은 “홍 (전)대표가 서청원, 최경환에 대해서는 책임정치 차원서 물러나라고 하면서 복당파에 대해선 그 분들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한다. 그럼 김무성은 정치적 책임을 안 져도 되느냐”라며 “서(청원), 최(경환)와 김(무성)이 다른 건 홍 (전)대표에게 고마워하고 줄을 설 거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래서 내가 홍준표의 사당화를 우려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두 사람은 한국당 대선 경선서 맞붙은 바 있다.

김태흠 의원은 홍 전 대표의 막말을 직접적으로 저격하며 갈등을 보였다. 김 의원이 최고위원이던 지난해 11월 최고위원회의서 홍 전 대표를 향해 “하루가 멀다 하고 당내 갈등을 유발하고 듣기에 민망한 표현을 하시는데 말씀을 신중하게 하길 간곡히 부탁한다”며 공개 비판했다.

당협위원장 선정을 두고는 고성을 주고받았다. 홍 전 대표의 비서실장이자 측근인 강효상 의원이 대구 지역 당협위원장을 맡자 김 의원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당시 홍 전 대표는 김 의원이 반대하자 “그러면 김태흠 최고위원이 강북으로 가라”며 “자르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김 의원은 “누가 자를 수 있다는 말이냐”고 맞섰다.

홍 전 대표가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으로 셀프 입성했을 때도 김 의원은 “당협위원장은 맡되 총선은 불출마하겠다는 ‘위장복’을 입고 기어이 텃밭에 셀프 입성했다”며 “당원들은 모두 추위에 떨고 있는데 당 대표가 가장 따뜻한 아랫목을 염치도 없이 덥석 차지해 버린 꼴”이라고 비판했다. 

홍 전 대표도 “특정계파 대변자 노릇하다가 이제 와서는 당내서 충치 노릇이나 한다면 언젠가 뽑혀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지 않았다.

한선교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과정서 홍 전 대표와 크게 부딪혔다. 당시 중립지대를 표방하며 출마한 한 의원은 출마선언문을 통해 “모른 척하고 넘기기에는 홍 (전)대표의 언사가 도를 넘은 지 오래”라며 “바퀴벌레로 시작해 암 덩어리, 고름이란 막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그를 직접 겨냥했다. 한 의원은 원내대표 출마의 이유로 ‘홍준표의 사당화’를 꼽았다.

나도는 명단
추측도 성행

홍 전 대표가 남긴 홍준표 리스트를 두고 당내에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틀린 말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마지막까지 구정물을 뿌렸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제는 이 리스트가 차기 당 대표 선출 이후 특정 인사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명이 없고 묘사가 포괄적이라 많은 수의 한국당 의원이 리스트의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다. 

이를 테면 ‘친박 행세로 국회의원 공천 받거나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뻔뻔한 사람’은 한국당 내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홍준표 리스트’가 ‘홍준표 살생부’로 변모하는 날, 한국당에 대대적인 숙청 피바람이 예고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홍, MB 변호 맡을까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홍 전 대표 본인이다. 

그는 지난 20일 “변호사 활동을 재개할 생각은 없고 이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변호사 휴업 중단 신청을 한 것”이라며 “한국당 대표를 물러난 만큼 인간적 정리 차원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 전 대통령을 위로하고자 면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전 대표가 이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변호사 활동 재개를 신청했다는 말이 퍼지자 그가 변호인까지 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국당 류여해 전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홍 전 대표가) 거기에 힘을 보태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수 있다”고 홍 전 대표의 MB 변호인단 참여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 같은 소식에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별로 할 일도 없지 않나. 그 사람이 이제 뭘 하겠나”며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서갑원 전 의원도 “아무리 이벤트가 중요하다고 해도 감옥에 가 있는 대통령 면회를 위해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건 너무 국민 속 터지게 하는 것 같다. 너무 홍준표스럽다”고 비난했다.

홍 전 대표는 수십 년간 변호사 개업과 휴업을 반복해왔다. 1995년까지 검찰이었던 홍 전 대표는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법무법인을 설립하지 않고도 무려 165건의 사건을 수임하는 등 변호인단에 수시로 이름을 올렸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21일 홍 전 대표가 낸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수리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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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