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88)환락파티

중독된 의자왕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경들에게 알리노라!”

대전이 아닌 태자궁에 호화롭게 잔치판을 벌인 의자왕이 일순간 자리에서 일어나자 신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부인도 일어나시오!”

의자왕이 곁에 앉아 있는 은고에게 손을 뻗자 황금색으로 치장한 옷을 입은 은고가 손을 잡고 전방을 빤히 주시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즐기다


“지금 우리 백제가 신라를 상대로 연전연승하는 그 중심에 은고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런 연유로 이 시간 이후 은고를 정식으로 짐의 부인으로 삼고자 한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는 그를 기념하는 자리이니만큼 경들은 마음껏 들도록 하라.”

말을 마친 의자왕이 자세를 낮추어 잔을 들자 모두 잔을 들었다.

“의자왕, 만세! 군대부인, 만세!”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던 중상이 목소리를 높이자 임자, 상영, 자간, 인수 등이 따라했다.

“군대부인마마, 한 말씀 주시지요!”

“암, 그래야지. 오늘 같이 흥겨운 날 백제의 충신들에게 한 마디 없을 수 없지.”

상영의 요구에 의자왕이 은고에게 눈짓을 주었다.


“소녀에게는 오로지 전하만 있을 뿐이옵니다.”

가볍게 말을 받은 은고가 가까이 있는 궁녀에게 눈짓으로 무언의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그 궁녀의 지시로 여러 명의 궁녀들이 조그마한 약봉지, 오석산이 담긴 봉지를 신하들에게 하나씩 건네고 곁에 자리 잡았다. 

“방금 전해드린 약은 전하께서 백제의 충신들에게 베푸는 성은이오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들기 바래요.”

은고가 다른 봉지보다 두툼한 봉지를 개봉하여 의자왕에게 건넸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의자왕이 숨 가쁘게 입에 털어 넣자 은고가 의자왕의 잔을 채워 건넸고 이어 의자왕이 잔을 기울이자 여기저기서 똑같은 행동이 이어졌다. 

약을 먹은 신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과 은고에게 다가와 은고의 군대부인으로의 승격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았을 시점에 의자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는 단순히 군대부인을 위한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 백제의 위상을 최고조로 격상시키는 자리가 되어야 하느니라.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신하들은 그 일에 조금도 머뭇거려서는 아니 될 일이로다.”

이미 약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는지 의자왕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당연하옵니다, 전하. 소신들은 전하와 군대부인마마의 성은에 반드시 보답하여 우리 백제를 제일의 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

답을 하는 중상의 얼굴에서도 환희의 기운이 감돌았다.


“궁녀들은 빨리 자리 하도록 하여라.”

은고의 지시에 따라 여러 명의 궁녀들이 좌석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러기를 한순간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자 입은 듯 만 듯했던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흐느적거리며 춤사위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의자왕이 곁에 있던 은고의 옷을 거칠게 벗겨나갔다. 

그에 뒤질세라 은고 역시 의자왕의 옷을 급하게 벗겼고 그를 바라보던 신하들도 동일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부인!”


풀린 눈으로 은고를 주시하던 의자왕이 목청을 높였다.

“말씀하세요, 전하.”

“부인은 이제부터 이 나라의 국모야, 국모.”“국모, 당연히 그러하옵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방안에 있는 모두의 탐욕스런 시선이 가늘가늘한 은고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특히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침까지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모두 전하의 말씀 들었소!”

마약에 취해 신하들과 광란의 파티
은고의 목을 베다… 당황한 의자왕

“들었사옵니다, 군대부인마마.”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목청을 높였다. 순간 의자왕이 은고의 가운데를 주시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인, 국모란 무엇인고?”

“이 나라, 백제의 어머니지요.”

“그 이야기는 나만의 부인이 아니란 말이오.”

“전하만의 부인이 아니라면?”

“짐의 부인이며 동시에 모든 백제인의 어머니란 말이오.”“물론 그러하지요. 하오면 어찌하오리까?”

“짐의 아니 우리의 충성스런 신하들을 취하게. 여하한 경우든 짐과 부인을 거역하지 않고 영원한 충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게.”

의자왕이 약에 취해 자신에게 달라붙은 궁녀의 가운데를 우악스럽게 쥐어 잡았다. 고통인지 희열인지 가늠하기 힘든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연히 그리할 일이지요, 서방님.”

은고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뱉고는 천천히 궁녀들과 희롱하고 있는 신하들에게 다가갔다. 

한순간 자리에 멈추어서는 주변에 있는 신하들을 가까이로 불렀다. 

지적을 받은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도 군대부인의 존재는 가늠하는지 은고에게 다가앉았다.    

“이제부터 이 군대부인, 아니 국모께서 백제의 충신들에게 차례로 성은을 베풀 것이네. 그러니 한시도 내게서 몸과 마음을 떼서는 아니 될 일이야. 알겠느냐!”

“그야 이를 말씀인가요.”

상영의 답에 신하들을 탐욕스런 시선으로 응시하기를 잠시 고개를 돌려 의자왕을 바라보았다. 의자왕이 궁녀들을 희롱하며 탐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하, 이게 무슨 미친 짓이오!”

의자왕이 소리 나는 곳을 주시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사택비가 은고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마구 흔들어 대며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부인이!”

“부인이라 부르지도 마시오. 나는 당신같이 미친 사람을 서방으로 둔 적 없소!”

“부인, 무슨 말을 그리 심하게 하는 게요?”

사택비가 답을 하지 않고 은고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의자왕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방문을 통해 사택비의 뒤를 주시했다. 

사택비가 은고를 데리고 담장 가까이 이르자 한 사람이 사택비로부터 은고를 넘겨받았다. 

가만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대는 성충 장군 아니오?”

“그 경황에도 소장을 잊지 않았습니다.”

“짐이 어찌 그대를 잊을 수 있겠소.”

“그런 분이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습니까!”

측은한 표정으로 의자왕을 주시하던 성충이 칼을 뽑았다.

“왜 그러시오, 장군!”

의자왕이 다급하게 손을 저으며 앞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마음뿐이었다. 

“오석산과 술, 계집에 쩔어 이제는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구려.”

사택비가 싸늘한 시선으로 의자왕을 주시하며 조롱하듯 혀를 찼다.

“부인, 그리고 장군. 그러지 마오. 은고로 인해 짐이 신라의 음기를 제압할 수 있었다오. 그러니 부디 은고를 해하지 마시오!”

목을 베다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이제는 신라도 남자가 왕인데, 그러니 이 요망한 계집은 더 이상 쓸모없습니다. 그러니 내 손으로 그 수고로움을 덜어드리리다.”

성충이 의자왕에게 잠깐 시선을 주었다가 칼을 들어 은고의 목에 올리고 벨 자리를 가늠하는 듯 칼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순간 은고의 미소 짓는 하얀 이빨이 햇살에 반짝였고 이어 목에서 하얀 피가 솟구쳤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