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괴물’ 넷플릭스의 독주 내막

  • 김세훈 기자 space0122@naver.com
  • 등록 2018.06.11 11:07:58
  • 호수 1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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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한국? 미드 어디까지 봤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세훈 기자 = 현대인들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실시간 스트리밍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변화를 마친 미디어 시장서 전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묶어낸 기업 넷플릭스(Netflix)를 소개한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영역의 사업을 가능케 했다. 스트리밍이 가능해지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나타났다. 지난 2005년 유튜브(YouTube)가 등장해 개인 미디어 시장의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어서 2009년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고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미국 시장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분할시장서 
단일시장으로

방송이 주를 이룬 시대의 미디어 산업은 국가별로 독자적인 환경서 발전했다. 방송 서비스는 공공자원인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뉴스 같은 영역은 국가별로 다른 시스템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은 세계 시장으로 확대, 통합되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 시장은 광고 시장의 부산물에 가깝다. 지난 2016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국내 방송 시장 매출 구조 분포’에 따르면 국내 방송 시장 규모는 약 7조원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3조8000억원이 광고 시장서 발생했다. 

프로그램을 판매해 발생한 금액은 전체 수익의 약 30%에 머물렀다. 해외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광고 기업 덴쓰(Dentsu)가 발표한 2017년 자료에 의하면 지상파 방송전체 매출의 44%가 광고 수익이다.


TV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광고를 시청하는 대가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각 나라별 미디어 시장의 규모는 그 나라의 광고시장의 규모에 비례한다.

다만 미국의 미디어 시장은 약간 다르다. 미국은 광고수익에 비해 소비자에게 직접 받는 사용료의 비중이 더 크다. 이는 콘텐츠 제공업자들이 방송사에게 지속적으로 사용료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료방송 서비스 가격은 평균 50달러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미디어 시장은 광고 시장서 유입되는 막대한 자금과 소비자에게 거둬들인 이용료가 더해져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큰 미디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디어 시장서 사용자에게 이용료를 받는다는 의미는 크다.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콘텐츠는 시청률을 높인다. 높은 시청률은 다시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스포츠 시장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유럽의 축구 산업이 그렇다. 연봉이 높은 선수와 감독을 리그에 영입한 결과는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수준 높은 경기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결과적으로 현재 유럽축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구조에 소비자의 이용료가 더해지면 시장은 급격히 확대된다. 미국의 스포츠 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내 2016·2017 시즌 스포츠 리그의 사업 규모는 연간 36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유럽 축구리그를 모두 합친 규모의 세 배에 이른다.

전 세계 집어삼킨 콘텐츠 공룡
투자 연 8조원…비교대상 없어


다국적 공인회계기업 PwC가 2017년 발표한 NFL(미식축구리그)의 매출 구성표에 따르면 티켓 판매 수익이 전체의 27.9%, 광고 수익 24.2%, 중계권 수익 27.6%, 기념품 판매 수익이 20.2%로 미국의 스포츠 중계료는 광고 수익을 넘어선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도 비슷한 구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소비자에게 콘텐츠 이용료를 받는다. 그럼에도 미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률은 60%에 이른다. 유럽과 아시아서도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17년 기준 국내 스트리밍 유료회원 수를 38%로 집계했다.

넷플릭스는 광고시장에 의존하던 기존의 미디어 시장의 틀을 깨고 자생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우편을 이용해 DVD를 대여해주는 아이템을 가지고 1997년 넷플릭스를 창업했다. 

미국의 넓은 토지면적 때문에 DVD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점을 공략한 사업이었다. 사업은 순조로워 보였으나 DVD시장이 VOD 스트리밍 시장으로 바뀌며 넷플릭스는 위기를 맞았다. 

이에 넷플릭스는 미디어 콘텐츠를 구입해 제공하는 개념의 스트리밍 플랫폼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케이블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무제한 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지속적으로 미디어 콘텐츠의 가격이 오르자 넷플릭스는 자체적으로 상품을 만들었다. 지난 2013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 독자적 미디어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의 독자적 컨텐츠는 새로운 가입자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트리밍 시장서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 시너지는 막강하다.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한 장의 영화표로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과 달리 누적된 콘텐츠를 모두 시청할 수 있다. 전 세계 1억2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들로부터 매월 거둬드리는 수입은 수 조원 규모다. 

이 돈은 다시 넷플릭스의 독자 콘텐츠 개발에 투자로 이어진다. 넷플릭스가 밝힌 작년 한 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비용은 약 60억달러(약 6조원)다. 넷플릭스는 올해는 80억달러(약 8조원)를 자체제작 콘텐츠에 투자할 계획이다.

광고 넘어선 
판권수익 

넷플릭스가 만든 미디어 콘텐츠는 양적, 질적으로 후발 사업자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아마존(Amazon)과 훌루(Hulu) 같은 경쟁사도 자체 콘텐츠 제작을 통해 유사한 사업 전략을 유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규모나 비용 측면서 넷플릭스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재 미디어 생태계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유투브 프리미엄(YouTube Premium), 아마존, 에이치비오(HBO), 훌루, ESPN+ 등이 스트리밍 산업을 점유하고 있으며 디즈니(DiSney)와 애플(Apple)도 시장에 진입할 전망이다.


기존 미디어 시장서 확고한 입지를 누리던 디즈니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고전했다. 디즈니는 케이블 가입자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지난 4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작년 12월 ‘21세기 폭스’가 보유한 판권을 인수해 콘텐츠 강화에 나섰으며, 오는 2019년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자체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미디어 업계는 디즈니의 시장진입이 늦은 것 아니냐는 평가와 디즈니의 막강한 콘텐츠 라이브러리가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라는 평가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

아마존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맴버십 가입자 확대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은 연회비 199달러(약 12만7000원)에 ‘전국 이틀 내 무료 배송’을 보장하는 서비스다. 

아울러 각종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스트리밍을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의 가입자 규모는 1억명 정도다. 아마존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쓰는 콘텐츠 구매 비용은 연간 4조8000억원 수준이다. 아마존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회원들의 시선이 상품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미국 내 아마존 스트리밍 이용률은 넷플릭스와 훌루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다만 190개 국가와 제휴를 맺고 활발한 로컬 콘텐츠를 제작·보급하는 넷플릭스와 비교해 9개 국가(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서 서비스하고 있다는 측면서 넷플릭스와 비교해 한계를 갖고 있다.

신규 가입자
증가 선순환


음원 플랫폼 시장도 스트리밍 산업의 진출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015년 6월 출시해 올해 4월 기준 가입자 수 4000만명을 넘은 애플뮤직은 가수들과 팬들의 직접 소통을 가능케 하는 커넥트(Connect)기능을 제공하는 등 음악 관련 콘텐츠를 바탕으로 스트리밍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올해 애플뮤직은 스트리밍 콘텐츠 개발 비용으로 10억달러(약 1조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난 2017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 감독 및 배우들과 ‘Amazing Stories’ ‘Central Park’ 같은 자체 콘텐츠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애플뮤직은 이르면 내년 초 공식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직까지 선두 사업자인 넷플릭스와 콘텐츠 비용 격차는 상당히 큰 편이다.

지난 2016년 해외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앞으로 빠르게 신규가입자 수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1억2000만명의 유료 가입자 가운데 해외 가입자 수는 전체의 54%로 미국 내 가입자 수를 넘었다.
 

현재 미국의 가입자는 5500만명으로 전체 가구 수 대비 보급률은 44%에 이른다. 그럼에도 연간 10% 이상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미 성숙단계로 진입한 미국 시장과는 달리 해외 시장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 충분해 보인다.

해외 시장서 넷플릭스가 향후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정량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국가별 소득수준과 미디어 산업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영화시장 규모와 해외시장의 규모를 비교해 넷플릭스가 해외 시장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 추정해볼 수 있다. 

영화 산업의 규모는 전반적인 미디어 콘텐츠의 구매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진출하지 못한 중국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박스오피스는 약 221억달러(약 23조6700억)이다. 이는 미국시장 내 영화산업 규모인 100억달러(약 10조원)의 2배 이상이다.

단순히 영화산업으로 비교했을 때 넷플릭스의 해외 가입자 유치는 미국 시장의 2배 이상 까지 예상해볼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앞으로 2021년 까지 넷플릭스의 전체 가입자가 매년 8%씩 증가해 2억5000만명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디즈니 아성 무너뜨려
고 퀄리티로 경쟁력 견인

넷플릭스는 지난 2007년 첫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현재 넷플릭스의 월간 이용료는 10.99달러(약 1만2000원)다. 지난해에는 13.99달러(약 1만5000원)의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해 연평균 8%이상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가입자 이탈이나 신규 가입자의 증가세가 둔화하는 움직임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가치가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높게 인식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넷플릭스 서비스의 가치는 누적된 콘텐츠 양에 비례한다. 넷플릭스의 일반 요금제는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금액에 불과하지만 각종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특히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는 시즌제를 도입해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넷플릭스 플랫폼은 TV, PC, 스마트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기서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게 한다. 미디어 소비 패턴이 다변화된 시대에 이용자가 느끼는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에 있다. 지난 2013년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 여러 편의 드라마가 시리즈로 흥행했다.

흥행에 성공한 대표작들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 <센스8> <기묘한 이야기> 등이 있다. 이 시리즈 들은 콘텐츠 질적인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골든 글로브 2회 수상과 에이미 상을 7회 수상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데어데블> <기묘한 이야기> 같은 다른 시리즈들도 각종 유명 콘텐츠 시상식에 여러 차례 거명되고 수상한 바 있다.

독자 콘텐츠 제작은 작품의 완성도와 플랫폼의 역량이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전략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과감한 투자와 매니지먼트를 통해 지속적인 신규 가입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현재 높은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상황이다. 투자확대가 새로운 가입자를 유치하는 순환 구조를 계속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시장 
몰리는 기업들

넷플릭스는 현재 매출의 약 50%를 콘텐츠 제작비로 사용하고 있다. 현금 기준으로는 매출의 80%를 제작비로 사용해 발생하는 손실을 투자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넷플릭스가 계획한 콘텐츠 제작비용은 8조원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가입자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양승우 CFA는 “넷플릭스는 가입자당 콘텐츠 비용은 일정 수준에 유지되고 있는 반면 가입자당 매출은 지속 증가하고 있어 영업 레버리지 효과가 강하게 나타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콘텐츠 비용 상승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이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판단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가입자 유입 효과가 극대화 되면서 가입자당 콘텐츠 비용이 안정화되고 있어 콘텐츠 투자가 완만해지는 시점부터 가파른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kimseh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뉴욕증시 3대장 넷플릭스-아마존-페이스북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 같은 악재 속에도 넷플릭스, 아마존, 페이스북 주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CNN머니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530억달러(약 163조3000억원)로 디즈니와 컴캐스트를 앞질렀다. 넷플릭스의 주가는 올해만 85% 상승했다. 현재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약 7800억달러(약 842조6500억원)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앞선다.

현재 아마존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는 애플 뿐이다. 아마존은 올해 들어 40%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 미 대선 국면서 가입자의 정보를 공화당쪽에 흘렸다는 혐의로 지난 3월 홍역을 치른 페이스북도 10%가까이 떨어진 주식을 5%까지 끌어 올렸다. 

뉴욕 증권가가 급격한 하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가운데 이 종목들의 안정적인 상승은 눈여겨 볼만하다. 투자자들은 넷플릭스, 아마존, 페이스북이 최소한 하루아침에 폭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날 CNN머니는 “어느 날 사람들이 넷플릭스서 좋아하는 채널을 보지 않고, 아마존서 식료품을 더 적게 구매하고,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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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