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넥슨 대표 김정주의 속셈

승계? 기부? ‘이미지 세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세훈 기자 = 넥슨 주식사건과 관련해 지난 2년여간 수사와 재판을 받은 넥슨의 김정주 대표가 지난달 19일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판결 이후 김 대표는 그간 심경을 담은 입장문을 온라인에 게재했다. 김 대표가 이야기한 내용은 두 가지다. 공익사업을 추진해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내용과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공개적인 약속이 성실한 실행을 이끈다”는 이유로 입장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김 대표의 입장문 이면에 숨은 의도는 없는지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진경준에게 주식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한 것과 제네시스 차량을 제공한 것은 나와 넥슨의 형사사건서 도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여행 경비를 부담한 것도 검사인 진경준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우리 사회서 검사는 힘이 있다. 검사여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사건이 있을 때 알아봐 줄 수도 있어서 진경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무죄 났지만…

김정주 넥슨 엔엑스씨(NXC) 대표가 검찰 수사와 재판장서 진술한 내용이다. 지난달 11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진경준 전 검사장이 넥슨의 비상장 주식을 매입해 120억원대의 차익을 얻은 것에 대해 뇌물수수혐의가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금품과 특혜를 제공한 김정주 대표 역시 무죄가 됐다.

무죄판결 이후 김 대표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저와 제 가족이 가진 재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새로운 미래에 이바지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겠다. 현재 서울에만 있는 어린이 재활병원을 전국 주요 권역에 설립될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를 시작으로 청년들의 벤처창업투자 지원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들로 기부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대목이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 투자할 사업이 1000억원 규모의 사업이라고 금액까지 밝혔다.

재판을 겪으며 사회에 진 빚을 갚는 삶을 살기로 했는데 이제 그것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은 차치하고서라도 김정주 대표와 진경준 전 검사장의 사건을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김정주 대표의 이러한 입장문 발표에 숨은 뜻은 없는지 의심하게 된다. 

마치 무죄판결이 나길 기다렸다가 망가진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올해 1분기에 895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413억원과 4611억원을 기록했다. 넥슨의 대표작 ‘던전앤파이터와 ‘메이플스토리는 올해 초 글로벌 시장서 흥행에 성공해 역대 최대실적을 달성했다. 

1000억원 규모의 공익사업계획을 발표한 것은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넥슨이 거둔 성과를 생각해보면 1000억원이라는 액수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넥슨이 사회의 배려 속에서 성장했다”고 말한 김 대표의 말이 무색해진다. 차라리 언론 보도 없이 사업을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 경영승계에 관한 발언도 했다. 김 대표의 자녀들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넥슨의 지배구조를 알아야 한다. 넥슨의 지주회사는 엔엑스씨(NXC)라는 회사다. 

엔엑스씨는 넥슨 일본법인을 지배하고 넥슨 일본법인은 넥슨코리아를 지배한다. 엔엑스씨는 비게임 영역의 글로벌 투자회사다.


넥슨이 보유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회사를 찾아 인수·합병한다. 김 대표는 엔엑스씨의 주식 67.49%를 보유한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넥슨의 게임 관련 사업은 넥슨 일본법인과 넥슨코리아가 맡고 있다. 지난 2016년 김 대표가 일본 넥슨법인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것을 기점으로 넥슨의 게임 산업 부문은 완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김 대표는 넥슨 일본법인과 넥슨코리아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김 대표가 꺼낸 경영승계 발언은 엔엑스씨에 관한 것이다. 김 대표가 자녀들에게 지주회사인 엔엑스씨의 지분 상속까지 포기할 것인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1000억 사회환원에 자녀 대물림 일축
수사와 재판…부정적 시선 털기 목적?

지난해 엔엑스씨는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 주식 125만주를 912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이로써 엔엑스씨는 기존 보유지분을 더해 코빗 주식의 65.2%를 보유하게 됐다.

현재 시장서 코빗의 가상화폐 일간 거래대금은 세계 13위에 수준이다. 코빗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금액은 8600만달러(약 957억원)에 이른다. 엔엑스씨는 코빗 지분을 인수해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가상화폐시장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은 엔엑스씨가 코빗을 인수한 것에 대해 블록체인 관련 기술과 기법을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엔엑스씨는 유모차 업체인 스토케를 인수하고 소셜커머스 위메프에 1000억원을 투자하며 비게임 영역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넥슨이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경영권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모습은 해외시장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 요인이 된다. 자녀에게 기업 경영권을 물려주는 행위를 해외시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창업자의 2세들이 기업을 운영해야만 하는 적당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을 물려받아야 할 창업자 2세들이 지분만 물려받아 안 좋은 뉴스로 입방아에 오르는 일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경영권 승계에 있어 한국사회에도 독야청청 홀로선 소나무 같은 기업이 있다.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좋은 사례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박사는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유일한 박사가 눈을 감을 당시 일곱 살이던 손녀딸에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쓸 학자금 1만불(약 1000만원)을 남겼을 뿐이다.

아들 유일선씨에겐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렇게 창업주는 떠났다. 그 후손들은 현재 유한양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유한양행은 한국서 가장 깨끗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의 창업정신은 아직 유한양행에 또렷이 남아있다. 유한양행은 이사회에서 대표를 선출할 때 어떤 사람이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을 잘 이어나갈 인물인지 평가한다. 유일한 박사의 기업가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은 사회의 공유물이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죽은 다음 이 유한양행에 나의 혈족이 남아있다면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장악할 게 아닌가. 유씨 일가가 회사를 세습하면 ‘기업은 사회 공유물’이라는 대의가 멍들고 전문경영인 인재 육성에도 역행하게 된다.” 

유일한 박사 살아있을 때 남긴 말이다. 김 대표가 입장문에 밝힌 내용 가운데 유일한 박사가 남긴 말과 맥락을 같이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제가 재판을 받을 때 1994년 컴퓨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창업했던 조그만 회사 넥슨이 자산총액 5조를 넘어서는 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성과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함께 일한 수많은 동료의 도전과 열정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사회의 배려 속에 회사가 성장해 온 점 또한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50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하는 기업의 대표로서 저는 더욱 큰 사회적 책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넥슨이 이렇게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한 데에는 직원들의 열정과 투명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가 유지되어야 회사가 계속 혁신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어도 되나

김 대표의 말처럼 기업은 창업자 혼자 만들어 낸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함께 일한 동료, 제품을 구매해준 소비자, 투자 기회를 제공한 주주들까지 함께 키운 공유물이다. 기업을 아들이나 손자에게 물려줘야 창업자의 정신이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창업자 정신은 일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야 한다. 창업자가 기업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기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집단지성에 의해 운영되게 하는 것이 기업을 일궈낸 진짜 창업자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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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