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 이야기는?”
“소장이 고구려의 침략을 봉쇄하겠습니다. 아울러 김흠운(김춘추의 딸인 요석공주의 남편)으로 하여금 백제군의 침략을 방어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시고 속히 장기적인 측면에서 군사력을 강화시켜야 할 일이옵니다.”
“당에 말이오?”
“지금 저들이 합세해서 총공세를 펼친다 함은 단지 국경의 성 몇 개가 아니라 우리 신라 자체를 점령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소장이 목숨을 걸고 방어해 보겠으나 만에 하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당장 당에 지원을 요청해서 그들의 침략행위를 잠시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장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고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이 민족을 통일해야 하옵니다.”
유신의 건의를 받아들인 무열왕은 즉각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김유신과 김흠운은 전장으로 향했다.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 군과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을 즈음 흠운은 급히 백제의 양산(陽山, 충북 옥천)으로 진군하여 조비천성(助比天城) 가까이 이르러 진을 쳤다.
저녁 무렵 진이 완성되자 흠운이 다음날의 결전을 위해 일찌감치 휴식을 취하라 지시하고 막사에 들었다.
막 잠에 빠져들려는 시점에 함성이 일어났다.
급히 밖으로 나서자 화살이 어둠을 가르고 빗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백제군이 야음을 틈타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신라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를 살피던 흠운이 급히 말 위에 올랐다.
“장군, 멈추십시오.”
어둠 속에서 다가선 대사(大舍, 관직) 전지가 급하게 고삐를 잡았다. 그를 확인한 흠운이 잠시 멈칫하다가는 고삐를 빼앗았다.
“어서 물러나거라!”
“이 어둠속에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무얼 하다니, 당연히 저 백제 놈들을 쳐부수어야지!”
“어둠속에서 적진으로 들어감은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입니다. 즉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잠시 고정하시고 수진에 임하시고 내일 설욕하도록 하심이 마땅합니다.”
전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다시 고삐를 낚아챘다.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들려는 게냐. 어서 물러나거라!”
흠운의 고함에 전지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군께서 지금 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다 죽게 되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장군은 전하의 사위이니, 만약 적의 손에 죽는다면 백제는 자랑으로 삼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전지의 말이 절규에 가까웠다.
“대장부로서 이미 나라에 몸을 바쳤는데 남이 알아주고 말고 무슨 상관이더냐. 그러니 어서 손을 놓아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다…김유신 출격
성충, 은고에 빠져있는 의자왕에 직언
말뿐이 아니었다.
칼을 뽑아 고삐를 잡고 있는 전지의 손을 찌르고 그 순간을 틈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내달리지 않아 백제군의 선두와 마주쳐 그야말로 고군분투하는 중에 장수로 보이는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 백제의 계백인데 장군은 누구요!”
흠운이 일언반구 없이 그대로 계백을 향해 칼을 휘둘러나갔다.
순간 계백이 뒷걸음질 쳤고 그 틈을 노려 백제 병사들이 창으로 흠운을 찔렀다. 이어 흠운의 온 몸에서 피가 흐르며 이내 땅으로 떨어졌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흠운의 주위로 백제 병사들이 몰려들어 다시 칼질하려 하자 계백이 급하게 다가가 멈추라 하고는 그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미 저승길로 접어든 그를 살피는 중에 다시 흠운의 출전 소식을 접한 신라의 대감(大監, 장군을 보좌하던 무관) 예파와 소감(小監, 하급 무관) 적득이 칼을 휘두르며 현장으로 급하게 다가섰다.
그러나 계백 앞에 이르기 전에 두 사람 모두 백제군의 칼과 창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진덕여왕의 죽음과 신라군과 전쟁에서의 승리로 의자왕의 은고에 대한 신임은 도를 더해갔다.
단지 신임 여부를 떠나서 오석산을 마시고 빠져드는 황홀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급기야 은고를 위해 태자궁을 사치스럽게 꾸미고 그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은고가 벌이는 향연에 함몰되었다.
“전하, 드시지요.”
“오늘은 무엇을 준비했는고?”
“먼저 말씀드리면 재미가 반감되옵니다. 그러니 직접 보시며 체험하심이 이로울 일이옵니다.”
살짝 눈을 흘기는 은고의 안내로 오석산을 먹고 태자궁의 호화스러운 방에 들자 의자왕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어린 궁녀 네 명이 술상을 앞에 두고 자신을 맞이했던 때문이었다.
그를 의식하며 헛기침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약효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어색함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당당함이 대신했다.
마치 그를 알고 있다는 듯 은고가 달려들어 옷을 벗기자 의자왕 역시 은고의 옷을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그를 신호로 알몸의 여인들이 의자왕에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여인들과의 사투가 이어졌다.
네 여인이 의자왕의 사지를, 중앙은 은고가 담당해나가기를 잠시 후 여섯의 몸뚱이가 한 데 어울려 흐느적거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의자왕이 정신을 가다듬고 은고와 술로 여운을 달래는 중에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전하, 신 성충이옵니다.”
“장군이 어인 일이오!”
“긴급히 아뢸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대전에서 하면 아니 되겠소?”
“아니 되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뢸 일입니다.”
잔을 비우고 은고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라!”
성충이 방에 들자 기상천외한 광경에, 아랫도리 부근이 피로 발갛게 물들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알몸의 여인들을 주변에 두고 의자왕이 은고와 함께 알몸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에 한동안 눈동자를 고정시키지 못하다가는 급하게 부복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하시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성충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렸다.
“무엇을 통촉하라는 게요, 술이나 한잔하자는데.”
“전하, 부디…….”
“부디고 뭐고 어서 이리 와서 잔 받으시오!”
의자왕과 성충의 소리에 널브러져 있던 여인들이 정신이 드는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성충의 존재를 확인한 그녀들이 가벼운 천으로 주요 부분을 가리며 급하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하, 먼저 용포를 거치심이 가당한 줄 아옵니다.”
성충이 의자왕을 직시하자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포로 되는대로 의자왕의 몸을 가리고 저 역시 갈기갈기 찢긴 옷으로 대충 주요한 부분을 가렸다.
순간 성충이 무릎걸음으로 상 가까이 다가갔다.
“장군에게 술 한 잔 따르게.”
은고가 조신하게 움직여 잔을 채워 성충에게 건넸다.
“전하, 왜 이러십니까!”
직언하다
손을 들어 은고가 건네는 잔을 거부하고 성충이 작심한 듯 소리를 높였다.
“뭘 말이오?”
“연이은 이런 행동 말입니다.”
“이게 어떻다고.”
“국정을 소홀히 하고 요망한 계집에게 휘둘러 지내는 지금이 정상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뭐, 뭐라!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