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도 이제 작게 더 작게

아파트뿐 아니라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도 다운사이징(downsizing: 소형화) 바람이 불고 있다. 다운사이징은 부동산 전반에 확산될 전망이다.

먼저 상가시장의 경우 서울과 경기 일대에 들어서는 신규 상가의 면적이 갈수록 작아지는 ‘다운사이징’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상가시장에도 다운사이징이 본격화된 주요 원인으로 업계는 투자자들이 분양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데다 1~2인 가구 증가에 따른 ‘나홀로 고객’등에 최적화된 소규모 강소 점포의 창업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외면 받던 
골목상권 부활

상가 다운사이징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소형 상가의 임대료도 오르는 추세다. 최근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면도로나 주택가 등에 있는 소규모 상가의 임대료가 처음으로 중대형 상가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안 외면 받던 골목상권이 도시재생사업 등으로 부활 움직임을 보이면서 소규모 상가의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소규모 상가는 주로 이면도로나 주택가에 위치한 상가로, 1호당 전용면적 33㎡ 안팎의 작은 평형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등 주거용 임대시장에도 미니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선 아파트뿐만 아니라 오피스텔도 몸집이 줄어들고 있는데, 10년 전 전용 26~33㎡ 정도였던 원룸형 오피스텔 면적은 최근 10㎡ 대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소형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액의 자금을 갖고 투자할 수 있기 때문에 노후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위한 투자 에너지가 높다.

오피스텔은 철저하게 1인 가구 수요가 집중돼 중대형보다는 중소형 추세로 변화했다. 소형의 경우 투자자나 실거주자의 부담이 덜 되고 오히려 수익률도 더 받쳐주기에 공급 측면에서도 잘게 쪼개되 고급화시키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최근 공급 물량을 보면 전용 20㎡ 이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년 서울에 공급된 브랜드 오피스텔 ‘가산 센트럴푸르지오시티’‘영등포뉴타운 꿈에그린’ 등은 전용면적 17~18㎡를 주력 평형으로 내세웠다. 구 5평 정도 규모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1인당 최소 주거면적은 전용 14㎡(4.2평)이지만 서울 일부지역에 들어선 도시형 생활주택은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작구 노량진동 일대에 자리한 ‘태영오피스텔’의 전용 10㎡는 1억4500만원 선에 거래된다. 임대 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이다. 고시생관악구 신림동에 들어선 도시형생활주택 ‘푸리마타운’에도 전용 12㎡가 일부 포함됐다. 동대문구 답십리동‘현대썬앤빌청계’는 35가구가 전용 13㎡로 설계됐다. 

1인 창업자들 끌어들이는 ‘신개념 오피스’인 섹션 오피스가 침체된 오피스 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1인기업이나 소규모 기업이 늘면서다. 섹션 오피스, 공유형 오피스, 지식산업센터 등 신종 오피스가 급속히 늘고 있다. 기존 오피스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특징은 다운사이징, 고객 맞춤형 시설 배치, 부대시설 공유 등이다. 1인 창업기업 등 소규모 법인이 늘면서 오피스 시장이 수요자 맞춤형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투자자 상가 분양가 부담↓
소규모 강소 점포의 창업↑

섹션 오피스는 보통 전용면적 20~30㎡ 크기다. 필요에 따라 사무공간을 더 넓히는 것도 가능해 입주기업의 다양한 입맛에 맞출 수 있다. 회의실과 화장실, 카페테리아, 복사기 등은 공용으로 제공한다. 입주기업은 필요한 전용공간만 빌려 쓰기 때문에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면적이 작은 섹션 오피스는 투자비용이 적고 오피스텔처럼 화장실 및 주방 등이 포함되지 않아 공간 효율성이 높다. 소형화, 공용화, 다양화 기능을 갖춘 것이 장점이다. 분양업체들은 2~3년 전부터 섹션 오피스 분양에 나서고 있다. 2015년 이후 서울 마곡지구와 위례·문정지구,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화성 동탄2신도시 등에서 공급이 활발하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는 “분양시장에서 소형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공급업체의 입장에서는 같은 면적, 같은 공간에서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수익형 부동산의 경우 공실에 민감하기 때문에 투자자나 입주자들이 느끼는 만족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차별화된 평면, 공간활용, 부대시설을 내세운 수익형 부동산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다운사이징이 적용된 수익형 부동산 현장.

갈수록 작아지는 
다운사이징 바람

▲강원 횡성 밀리언타워= 시행전문회사인 (주)THE 상생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읍하리 558번지 일대에 밀리언타워를 분양 중이다. 분양대상은 1~5층 총 39개 점포로 3.3㎡당 분양가는 650만~2250만원선이며 전용률은 57%대다. 1층 대부분의 점포가 구 11평대로 구성되며 층별 추천업종으로는 1층은 편의점, 약국, 음식점,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 2층은 미용실, PC방, 전문음식점 등 3층은 병의원 등 메디컬존 4층은 학원, 사무실, 독서실 등이 5층은 테라스 공간(서비스 면적)을 독점으로 활용이 가능해 패밀리 레스토랑, 전문음식점 등이 있다. 

횡성의 중심인 횡성오거리 로터리를 끼고 있어 가시적인 홍보 효과를 볼 수 있고 공공시설, 터미널, 학교, 주택단지 등을 배후에 두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접근성도 속속 개선되고 있다. 경기 광주부터 강원 원주를 잇는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까지의 소요시간이 50분 내외다. 제2경인고속도로도 연결돼 인천국제공항과 평창을 오가는 이동거리를 단축시킬 전망이다. 또한 둔내~횡성간 6번 국도도 확장 중으로, 타 지역뿐만 아니라 횡성 도심으로의 교통망도 탁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횡성의 중심생활권으로 꼽히는 해당 사업지는 쾌속교통망인 KTX횡성역(2017년 말 개통)의 개통으로 서울까지 1시간대 접근이 가능하다. 영동고속도로, 제2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가 있어 전국으로 이동이 용이하다. 횡성군은 매년 강원도에서 실시하는 도내 18개 시, 군별 투자유치성과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지자체에 선정됐다. 2016년에는 13개 기업의 투자유치에 성공해 총 1475억원의 투자유치와 111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이끌어 냈다. 

우천일반산업단지의 투자협약, 묵계리 군부대 부지 개발, 우천 제2농공단지가 5년 만에 100% 분양이 완료되면서 투자가 잇따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횡성의 근로자 수요도 더욱 풍부해질 전망이다. 2016년 기준으로 횡성인구가 4만6000명 선을 회복하면서 탄탄한 배후수요의 확보가 가능해졌다.

나홀로 고객 최적화
임대료 중대형 추월 

▲명동 엠퍼스트 플레이스= 명동 역세권에 위치하는 오피스텔 ‘명동 엠퍼스트 플레이스’가 분양 중이다. 이 오피스텔은 95%가 소형평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A1~3, B, C, D의 총 6개 타입으로 구성된다.

사전설문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전 세대에 빌트인 가전과 드레스룸, 붙박이장 등 수납공간 제공으로 소형평형임에도 공간 활용도가 높게 설계했다. 교통 환경으로 서울 2호선 을지로3가역, 3·4호선 충무로역, 4호선 명동역이 도보 거리에 자리한다. 강남은 물론 강남·판교·분당 등 신도시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광역버스도 이용하기 편리하다.

주변 생활환경으로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밀리오레 등 쇼핑시설과 CGV, 국립극장 등 문화시설을 가깝게 누릴 수 있다. 중부경찰서, 백병원, 남산공원 등도 근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오피스텔 인근에는 대신증권, 미래에셋, 유안타 증권 본점 등 대기업 본사를 비롯해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KEB하나은행 본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 4만여 협력 사업체가 모여 있는 중소기업밀집지구도 근거리에 조성돼 있다.

▲미사역 헤리움 애비뉴어= 힘찬건설의 ‘미사역 헤리움 애비뉴어’는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 중심상업용지 중상 15-3, 4BL에 위치한다. 전용 20~8㎡ 총 684실 규모로 구성된다. 올해 개통예정인 지하철 5호선 미사역이 도보 1분 거리(130m 이내)에 위치한다. 미사역은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도 예고돼 있다. 오는 2025년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 완료 시 하남 미사강변도시에서 서울 강남까지 환승 없이 20분대에 이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올림픽대로, 미사IC, 상일IC 등이 인접해 차량을 이용한 이동도 수월하다. 대규모 개발사업도 눈에 띈다. 일단 오는 2020년까지 개발 예정인 ‘고덕상업업무지구’가 있다. 이곳은 고덕강일공공주택1지구에 23만4523㎡ 규모로, 세계적 가구기업 이케아 (IKEA)를 비롯해 유통·판매 복합쇼핑센터, R&D시설, 호텔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강동첨단업무지구는 삼성엔지니어링과 세스코, 세종텔레콤 등 우수기업 40여곳과 1만50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입주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엔지니어링복합지구는 7만8000여㎡ 규모의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지식기반 융복합 단지로 오는 2020년까지 구축될 계획이다. 이곳은 맞은편에 위치한 강동첨단업무지구를 비롯한 인근 업종과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이러한 개발호재로 ‘미사역 헤리움 애비뉴어’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풍부한 배후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변에 풍부한 생활인프라도 돋보인다. 스타필드 하남, 이마트 하남점이 근처에 위치해 편리한 쇼핑·문화생활이 가능하다.

▲동작 협성휴포레 시그니처 스퀘어= 협성건설은 서울시 동작구 대림지구 특별계획3구역에서 상업시설인 ‘동작 협성휴포레 시그니처 스퀘어’를 6월 분양한다. 연면적 1만5566.47㎡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된다. 아파트 274세대와 섹션 오피스 192실 등을 고정수요로 갖추고 있다. 인근에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이 있어 이를 이용하는 유동인구도 흡수할 수 있다. 

전용공간만…
비용도 절감

구로디지털단지역은 향후 2호선·신안산선 환승역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최근 롯데시네마와 계약을 체결해 지하 2층 입점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구로구 음식문화특화거리인 ‘깔깔거리’등 생활편의시설과 도림천 산책로, 보라매공원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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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