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개소문이 미랑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중에 백제에서 흥수를 비롯한 사신이 왔다는 전갈을 받고 궁으로 들어갔다.
궁에 들자 이미 보장왕을 비롯하여 선도해 등의 신하들이 백제의 사신을 접견하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일일이 백제 사신들의 손을 잡아주고 자리하자 흥수가 가벼이 헛기침했다.
“말씀하시지요.”
“막리지 대감께서 요즈음 너무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이 보여 그러합니다.”
“한가하게 보내다니요?”
백제의 사신
“당나라 말입니다.”
흥수가 슬그머니 선도해를 주시했다.
“싸우지 않겠다는데 천하의 막리지 대감인들 어찌하시겠습니까.”
“단순히 그런 이유입니까?”
“아니지요.”
“하면?”
선도해가 연개소문을 주시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막리지께서는 당나라와 한창 전쟁 중이십니다.”
흥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연개소문을 주시하자 가볍게 웃어넘겼다.
“무슨?”
“혹시 미랑이란 여인을 아십니까?”
흥수가 누구냐는 듯 다시 연개소문을 바라보았다.
“당나라 태종이었던 이세민의 애첩이었는데 이세민이 죽어버리자 그 아들인 고종이 취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미랑이라니요?”
흥수가 미간을 찡그리며 미랑을 되뇌었다.
“그 미랑을 막리지 대감께서.”
“그만 하시오, 책사.”
연개소문이 마뜩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깔았다.
“전하, 저희 의자왕은 지금이 신라를 칠 수 있는 적기라 판단하고 계시옵니다.”
농임을 알아차린 흥수가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적기라 판단하신 이유는 무엇이오?”
“신라가 새로운 왕이 보위에 오르자 그를 구실로 당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와 저희 백제를 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합니다.”
“그래요?”
연개소문이 혀를 차며 선도해를 주시했다. 선도해가 슬그머니 고개 돌렸다.
“대감,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하기야, 신라 정도는 그저 주머니 속에 공깃돌에 지나지 않으니 그를 두고 흥분할 일은 아니지요.”
대신 답한 선도해가 연개소문을 바라보자 보장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하, 어찌할까요?”
“대감께서 판단하시지요.”
보장왕이 잔잔한 미소로 답을 하며 선도해를 주시했다.
“대감께서 판단하시지요.”
선도해 역시 보장왕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연개소문이 운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연개소문에게 쏠렸다.
“두 나라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말갈족도 참여시킵시다.”
“말갈족이오!”
말갈족, 고구려의 배려로 하슬라(강원도 강릉) 이북의 동해안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가던 북방 민족으로 부족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있던 민족이었다.
“신라 놈들 완전히 고립무원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허허 어떻게 그런 생각을.”
연개소문의 제안에 흥수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손바닥을 마주치자 그를 바라보며 보장왕도 가볍게 혀를 찼다.
“이거 참.”
순간 선도해가 짧은 탄식과 함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 책사, 왜 그러시오?”
“왜라니요, 지금 제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데 말입니다.”
말갈족 참여 계책 내놓은 연개소문
김춘추, 김유신을 불러 대책 강구
“그게 무슨 말이오?”
답을 한 연개소문이 주변을 살폈다.
“대감께서 홀로 그런 생각을 해내시니 책사인 제가 할 일이 없어지고, 그러니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 게지요.”
“그야 스승이 훌륭하니 그런 거 아니겠소?”
“이른바 청출어람입니다.”
능청스럽게 답한 선도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모두 파안대소했다.
“좋소. 이왕 내친걸음 내 한마디 더 하겠소.”
연개소문이 곁에 있는 수하에게 지도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그를 살피던 선도해가 다시 가볍게 혀를 찼다.
“이 자리에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 확실하게 해둡시다.”
“그런 경우라면 저희도 적극 환영합니다.”
흥수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어 지도가 도착하자 연개소문이 지도를 펼쳤다.
당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말갈의 위치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지도를 가리키며 하슬라 지역으로 바닷가를 따라 말갈에게, 중앙의 접경 지역은 고구려가 그리고 신라와 백제의 서쪽 접경 지역은 백제가 치자는 설명을 곁들였다.
“저는 이만 물러나렵니다.”
연개소문이 세세하게 설명을 곁들이자 선도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여봐라, 대 고구려의 책사께서 이만 자리를 물린다 하니 잘 모시도록 하거라.”
연개소문이 지지 않고 큰소리로 말을 잇자 대전은 다시 웃음바다로 변해갔다.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말갈이 신라를 공략하자마자 새로 보위에 오른 김춘추(태종 무열왕)가 은밀하게 김유신을 불러들였다.
“처남, 의견을 주시지요.”
유신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무열왕의 얼굴을 주시했다.
“왜 그러시오, 처남?”
“전하, 처남이라니요?”
“우리 둘인데 어떻습니까?”
“우리 둘 만이라니요?”
“하면?”
“주변을 둘러보세요.”
춘추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대전에는 자신과 유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전하, 한 나라의 군주란 무얼 의미합니까?”
“그야.”
김유신 소환
말을 하다 말고 춘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러하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신라라는 모든 공간 그리고 흘러간, 다가올 모든 시간을 반드시 염두에 두셔야 하옵니다.”
“내 반드시 유념하도록 하리다. 그건 그렇고 저들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하는데 어찌 대처했으면 좋겠소.”
“우선 위급한 불부터 끄시지요.”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