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2주년 특집 대담] ‘종전이냐 통일이냐’ 이재정에게 듣는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5.14 10:40:18
  • 호수 11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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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식 해법? 판문점 해법으로 가야 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일요시사>가 창간 22주년을 맞을 즈음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지난 2007년에 이어 11년 만에 열린 3차정상회담. TV를 통해 남북 정상이 손을 잡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요시사>는 2차정상회담 당시 통일부장관으로서 기획준비단을 이끌었던 이재정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 자문위원을 만나 ‘3차정상회담이 남긴 숙제와 성공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이 위원은 역사적인 10·4남북공동선언(이하 10·4선언)을 이끌었던 장본인이다. 2차정상회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지난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서 개최됐다. 당시 참여정부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으로 이뤄진 준비기획단을 꾸렸다.

11년이 흐른 뒤 문 대통령과 이 자문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다시 뭉쳤다. 지난달 12일 남북정상회담 원로 자문단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이 위원은 3차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남북이 절실하게 원하는 걸 미국에 전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종전선언일 것”이라며 정상회담 정례화, 양자-3자-4자 정상회담의 지속화 등을 건의했다.

발표된 ‘판문점 합의문’에 이 위원이 건의한 내용이 대부분 담겨 눈길을 끌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일요시사>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10일, 수원 인계사거리에 위치한 사무소를 찾아 고견을 들었다.

다음은 이 위원과의 일문일답.

-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본 소감이 어떠신지?
▲2007년 정상회담과는 정말 180도 달랐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과 우리 노무현 대통령이 어디서 만나는지, 환영식장이 어딘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이 생중계되고 동선까지 다 발표됐습니다. 보통 다른 게 아니죠.


의제 부분도 이번에 사전 준비가 잘 돼 회의 진행하는 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선언문을 만드는 데도 오후에 짧은 시간 동안 완성됐습니다. 2007년 2차정상회담 때는 10월3일 회의가 끝나고 4일 오전 10∼11시쯤 돼서야 10·4선언문이 만들어졌습니다.

선언문이 발표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10·4선언문은 남북정상이 발표한 게 아니고 그냥 언론에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정상이 직접 발표했습니다. 이번 3차정상회담은 한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주변국과의 정상회담, 그리고 올가을에 열리는 4차정상회담이라는 긴 과정의 출발점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 사전 준비가 잘됐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큼 청와대가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일을 한 겁니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도 주도적인 역할을 중심서 하셨지만 북한 측과 준비과정을 잘 만들어 온 청와대가 큰 역할을 한 겁니다. 3차정상회담을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간 점도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생중계 “2007년과 180도 달라”
2차 회담 대원칙은 ‘경협을 통한 평화’

- 참여정부 때 ‘준비기획단’의 단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기획단서 가장 중점적으로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약 1년이 흐른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핵실험을 막는 방법이 뭐냐. 

결국 남북 간 경제협력을 좀 더 강화해 그러한 틀 속에서 평화를 정착시키자, 이것이 대원칙이었습니다. 개성공단 2단계 개발의 일환으로 기존 100만평이던 곳을 250만평으로 개발하기로 그때 합의했고, 남포와 안변에 각각 조선사업소를 만들고 해주항을 개항해 해주를 중화학공업단지로 만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하나는 당시 북한에 별안간 수재가 나서 2차정상회담이 좀 연기됐었습니다. 좀 더 2차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생겼던 거죠. 그래서 전국 각 부처에 남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의제를 모았습니다. 이를 집약해 회담을 준비했습니다. 전국 각 부처가 모두 참여했다는 점. 그것이 2차정상회담이 갖는 중요한,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합니다.


- 최근 김 위원장이 전향적인 모습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 위원장이 어려서 스위스에 있는 베른국제학교서 수업을 받아 이미 유럽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버지(김정일 위원장)와 할아버지(김일성 주석)는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김 위원장이 유학하는 동안 우리가 잘 아는 김여정(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지금도 김 부부장이 그림자처럼 김 위원장을 보좌하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이 정치적 콤비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판단됩니다.

세 번째는 할아버지를 꼭 닮았습니다. 목소리, 모습 등 할아버지로부터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정무적 감각도?
▲그런 DNA가 그대로 김 위원장에게 이어졌다고 봅니다. 아버지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 예를 들면 정의용 대북특사가 북한을 갔다 올 때 김정은 내외가 주차장까지 나와서 환송했지 않았습니까. 이전 북한 통치자로부터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또 기념식수를 할 때도 노무현 대통령 때는 김정일 위원장이 안 나오고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이 나와서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3차정상회담 때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함께 기념식수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을 보면 김 위원장은 과거 북한의 통치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지난달 12일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신 바 있으십니다. 그때 문 대통령께 어떤 조언을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남북 합의도 중요하지만 북한도 받아들이고 미국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종전선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출발입니다. 종전선언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명분이자 꼬여있던 남북문제를 풀어내는 입구입니다.

이 외에도 미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으로 끝나지 않게 2007년 10·4선언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한반도의 종전과 평화체제를 위한 주변 3국 또는 4국과의 회담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3차정상회담으로 끝내지 말고 다음 정상회담에 대한 약속을 했을면 좋겠다, 그래야만 정상회담이 정례화되지 않겠느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문 대통령께 했던 조언이 대부분 합의문에 담겼습니다.

북중 다롄회동 “자연스럽고 바람직”
국회 비준 “정치권 의무감 가지길…”

- 보수 진영 측은 판문점 합의문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이 명기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북미정상회담서 합의될 내용입니다. 비핵화 문제는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 다시 말해 미국과 북한 간의 외교관계 수립, 그리고 북한에 대한 불가침이 합의돼야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1990낸대부터 지속적으로 나온 얘기입니다. 3차정상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그런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인 거죠.

- 김 위원장은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과 2차정상회동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남북정상회담하면서 미국과 수시로 전화하듯 북중 정상이 만나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미 안보 공조를 하듯 북한과 중국 사이에도 한미만큼의 공고한 방위조약이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중국이 외교적 조율을 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전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종전에 대한 합의를 한다면 중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며 앞으로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 안이 있어야 북미정상회담서 종전에 대한 논의를 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롄서 북중 정상이 만난 건 마지막 의제에 대한 조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리비아식 모델인 ‘선 핵 폐기, 후 보상’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전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보유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수준은 리비아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북한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가지고 있고 파괴력도 엄청난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비아는 그 단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리비아는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서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남북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핵 폐기는 남북합의를 기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지 리비아식으로 주변국가와 합의해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리비아에선 이후 내전이 일어나 카다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한 입장서 리비아식 해법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일 겁니다.

-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말로 ‘판문점 해법’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3차정상회담서 나왔던 기반, 그것이 중심이 돼 비핵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판문점 선언은 북핵에 대한 해법을 내놨습니다. 이 해법을 북미정상회담서 완성시키고, 향후 남북미, 남북중, 남북미중 회담을 통해 한반도 종전과 평화체제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 북미정상회담서 어떤 파격적인 발표가 있을지.
▲저는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를 충족시킨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북미가 PVID에 합의한다면 어떤 과정이 남겠습니까. 

북미 간 연락사무소를 평양과 뉴욕에 두든지, 아니면 대사관에 두든지 하면 됩니다. 이번에 남북도 남북연락사무소를 두기로 합의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 수준의 연락사무소 내지는 외교 관계 채널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게 아마 가장 임팩트있는 발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북미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서의 북한에 대한 대북 제재망이 변화를 보일 것이라 전망하시는지.
▲이미 한중일 회담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 자리서 판문점 선언을 채택한 것처럼, 국제사회가 2차세계대전 후 유일한 분단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특히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한다면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 판문점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서 우리 정부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80%가 넘는 국민이 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3차정상회담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현 정부는 정당·사회를 좀 더 폭넓게 아우르는 합의를 구성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전 반드시 판문점 합의에 대한 국회 비준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판문점 합의를 성공으로 이끌어 가는 열쇠라고 생각하고, 국회도 비준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문점 합의를 절대 정치적으로 보지 말고 민족의 미래라는 관점서 국회도 의무감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이재정은?]

▲제33대 노무현정부 통일부 장관
▲노무현 재단 이사
▲성공회대학교 총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제16대 경기도 교육감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원로 자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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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