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목’ 가로막는 암초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5.08 11:13:16
  • 호수 1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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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남북 정상은 과연 한반도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2018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통일에 대한 염원이 높아지고 있다. 정관계는 물론 민간단체들도 통일에 관한 행사를 주최하며 기대감을 높이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국민적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엇박자를 내는 곳이 있다. <일요시사>는 남북통일이라는 항로에 숨은 암초를 추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서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며 “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는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해 나가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다.

불가침 합의
평화의 시대

합의문의 명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018년 내 종전 선언 ▲완전한 비핵화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 ▲문 대통령의 올가을 평양 방문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다.

최고의 화두는 합의문에 비핵화가 담기느냐의 여부였다. 김 위원장은 직접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의지를 밝혔다. 두 정상은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시기나 방법 등 핵심 사안은 향후 북미정상회담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의 성격이 짙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남북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의 입구가 된다면 북미정상회담은 출구가 된다”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의미서 판문점 선언은 북미정상회담에게 던져주는 아주 좋은 길잡이 메시지를 생산해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정상은 궁극적인 비핵화를 위해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나가기로 했다. 군사적 대치를 해소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다. 남북은 지난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단하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든다는 계획도 추진될 예정이다.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한다는 합의는 남북 평화에 대한 상징성이 크다. 그간 천안함 폭침, 서해대전 등 무수한 군사적 충돌을 낳았던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서 벌어졌다. 이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하는 합의는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함은 물론 어민들의 안전한 어로 활동을 보장하는 실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후 대화를 이어간다는 데 의의가 크다. 남북은 국방부장관 회담 등 군사당국자 회담을 자주 개최하기로 했다.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5월 중순에는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5월 말 내지는 6월 초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가을에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이어간다.

남북정상회담이 불러온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감은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지난 3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성인 100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78.3%로 지난주 주간집계보다 8.3%포인트 급등했다. 
 

반면 ‘잘 못 하고 있다’는 답변은 15.5%로 9.3%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새 정부에 대한 기대효과가 반영된 지난해 5월4주차(84.1%)와 6월1주차(78.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대화 지속
통일 밑거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 비준 동의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가서명한 합의문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 비준 동의를 받고, 이어 대통령 비준 및 국내 공포 등 절차를 밟아야 법적효력을 갖게 된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선언 등이 있었다. 합의문도 이번이 세 번째. 앞서 두 번의 정상회담 합의 내용은 모두 비준 절차를 거치지 못했고,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사실상 폐기됐다.

이를 잘 아는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2차 전체회의서 합의문의 국회 비준을 강조하고 나선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서 합의한 내용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려면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정한 남북합의서 체결 비준 공포 절차를 조속히 밟아주시기 바란다. 정치적 절차가 아니라 법률적 절차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국회의 동의 여부가 또다시 새로운 정쟁거리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미정상회담 일정을 감안하면서 국회의 초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잘 협의해야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합의문 이행을 위한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합의문 국회 비준에 대해 여야는 큰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범진보 성향인 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긍정적 입장을 내놨지만, 범보수 성향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북미정상회담 전 국회 비준 동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당은 표면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준 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남북정상회담 자체를 평가절하하며 사실상 비준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국회서 난항이 예상된다.

파격적인 판문점 선언, 평화의 신호탄
남북회담이 입구라면 북미회담은 출구

국회서의 비준 동의 절차는 한국당의 힘을 빌려야 가능하다. 합의문이 국회 의안과에 접수되면 관련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로 회부된다. 이후 외통위 의결을 거쳐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마지막으로 본회의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얻어내야 비준 동의안이 법적 효력을 지닌다.

문제는 현재 국회의 정당별 의석 구조가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의견 정족수인 과반 찬성을 만들어내기 힘든 ‘여소야대’ 상황이라는 점이다. 

민주당 121석을 비롯해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범여권 성향의 무소속 의원 3석, 바미당 비례대표이면서 평화당 활동에 참여 중인 의원 3명을 합쳐도 147석에 불과하다. 

한국당 116석에 평화당 활동 중인 비례대표를 제외한 바미당 27석, 대한애국당과 무소속 등 2석을 합한 범보수의 145석에 단 2석 차로 앞선다. 즉 범진보 진영서 단 두 표만 반대 또는 기권이 나와도 비준안은 국회를 통과할 수 없다.
 

당장 외통위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다. 심재권 민주당 의원이 외통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간사 수에서 범진보 진영은 1명(민주당 김경협 간사)인데 비해 범보수 진영은 2명(한국당 윤영석 간사, 바미당 이태규 간사)이다.

현 국회 시스템 상 상임위 간사는 상임위원장 만큼이나 큰 권력을 가졌다. 상임위 내 의사 일정을 결정하고 의제를 선정한다. 전체회의에 앞서 주요 의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도 상임위 간사의 역할이다. 간사 수에서 범진보 진영이 범보수 진영에 밀리고 있는 상황서 비준안에 대한 간사 간 협의가 범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은 낮다.

앞서는 범보수
밀리는 범진보

외통위 전체 의석수도 범진보 진영이 밀린다. 외통위 위원의 수는 22명. 그중 범진보에 속하는 위원은 민주당 소속 10명에 불과한 반면, 범보수 쪽 위원은 한국당 10명에 바미당 2명을 합쳐 총 12명으로 우위를 차지한다.

한국당과 바미당은 드루킹 특검 도입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바미당은 지난 3일 의원총회를 통해 “특검 수용과 국회정상화가 타결되지 않으면 ‘특단의 대책’을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지난달 17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소속 의원들이 릴레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같은 장소서 여러 차례 규탄대회를 열어 공세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의원총회서 특검 관철을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에 나선다고 밝혔다. 바미당도 특단의 대책으로 단식농성을 언급한 만큼 범보수 진영이 ‘드루킹 특검’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길 것으로 점쳐진다.

문제는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는 드루킹 특검에 대한 범보수 진영의 이 같은 공조가 ‘드루킹 특검-합의문 비준’ 빅딜이 무산된 이후 나왔다는 점이다.

앞서 민주당은 한국당에 드루킹 특검 수용을 전제로 합의문 비준 동의를 제안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김성태 원내대표와의 비공개 조찬회동 자리서 국회 정상화 방안으로 드루킹 특검 수용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드루킹 특검은 경찰과 검찰 수사를 먼저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서 한 발 물러선 결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특검 수용에 조건이 붙으면 안 된다”며 빅딜 제안을 거절했다. 우 원내대표의 제안이 있은 날 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연 후 합의문 비준과 연계된 특검 수용은 받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합의문 비준 문제는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놨지만, 남북정상회담 후 한국당이 내놓은 반응들을 보면 비준안 자체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비준안 국회통과? 외통위도 장담 못해
미 외교·안보 투톱, 대북 제재 입장차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중 핵심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투톱으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간 북핵 협상에 대한 온도차다.

두 사람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나란히 방송에 출연해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미국의 전략을 공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핵 폐기 전까지는 어떤 제재 완화도 없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하도록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은 이전 정부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있다”고 답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완전한 비핵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제재 완화는 없다는 그간의 미 행정부 태도와 차이가 있다. 행간에는 북한이 어떤 ‘구체적 조처’를 취하면 완전한 비핵화 전이라도 미국이 지금보다 제재 수위를 낮출 가능성도 엿보인다.

막말 퍼레이드
배 아픈 사촌?

반면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모든 핵무기와 핵연료, 탄도미사일 등을 포기·반출할 때까지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그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 완화는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다.

투탑의 이견에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아직 비핵화 로드맵을 조율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이번 달 말 치러질 북미정상회담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의 보상으로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도 안갯속이다.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 체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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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