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논란’ 대기업 황당 마케팅 백태

관심에 목말라…여성 성적인 도구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경쟁사보다 조금이라 더 돋보여야 시장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강한 생존본능은 종종 무리한 홍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여혐 논란도 이 같은 맥락서 나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고개를 숙였다.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가 문제가 됐다. 시계를 지난 9일로 돌려보면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영화 <레슬러> 출연배우 이성경의 사진과 “[단독] 체육관에서_타이트한의상_입은_A씨_유출사진_모음.zip”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튀는 광고물에
예측불허 논란

사진에는 이성경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엎드려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네티즌들은 ‘타이트한 의상을 입은 A씨 유출사진 모음’이 이른바 몰카 사진을 연상케 한다면서 비판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불특정 다수 여성에 대한 성희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홍보사의 과욕이었다.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한 일”이라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전했다.


마케팅 담당자 역시 “저희가 게시한 게시글의 문구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작성했던 문구인데,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무리한 마케팅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스킨라빈스는 지난달 미투로 운동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 조민기와 관련된 내용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고 조민기는 청주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미투 운동으로 발전했고, 조민기가 자살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아 충격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그런데 배스킨라빈스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는 문구를 사용해 입길에 올랐다. 당시 배스킨라빈스는 츄파춥스 파티 미러볼 프로모션을 홍보하면서 SNS에 “내적 댄스 폭발할 때 #너무 많이 흥분 #몹시 위험”이라고 게재했다.

“돋보여야 산다” 과장·자극적 문구
툭하면 여혐 논란…홍보파트 과욕

해당 문구는 조민기가 피해여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과 흡사해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면서 성희롱을 당하는 느낌”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배스킨라빈스는 “적절치 못한 단어가 포함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해당 콘텐츠를 문제인지 즉시 삭제했다”며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모습이었다. 이어 “이번 일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미투 운동을 희화화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기업은 또 있다. 배달의 민족은 지난달 13일 음식을 주제로 한 ‘배민신춘문예’를 개최했다. 매년 열리는 문예인데 당선된 출품작은 카피 문구로 실제 마케팅에 활용된다. 

배달의 민족 입장에서는 소비자와의 거리감도 좁혀 자사를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눈살 찌푸리는 출품작이 나왔다. 출품작 가운데 미투운동을 희화화 한 작품이 나온 것. “Meat Too” “저도 당했어요” “제 다리를 보더니 침을 삼키면서…” 등 미투 운동을 희화화한 듯한 인상이 드는 출품작이다. 

이들 출품작은 배달의민족 이벤트 웹페이지에 노출되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배달의민족 측은 “배민신춘문예 응모페이지를 이용해 악의적인 내용을 작성, 개인 SNS에 올려 불쾌감을 주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주거나 이벤트 취지에 맞지 않는 시는 발견 즉시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과 후
또 사고

삼양식품 역시 부적절한 광고로 곤혹을 치렀다. 지난달 28일부터 SNS 홍보 계정에 ‘불닭행’이라는 제목의 불닭볶음면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불닭행은 ‘불닭볶음면을 사러 가는 길’ 이라는 뜻과 ‘불닭볶음면을 먹고 행복해짐’을 의미를 담고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광고는 통통한 여성이 잠에서 깨 슈퍼로 가 야식으로 불닭볶음면을 사와 먹는다.
 

이때 “예뻐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숫자가 100%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나온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날씬한 여성이 스타킹을 신고 귀걸이를 착용한 뒤 외출을 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성에게 예뻐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요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양식품 측은 해당 광고를 내리고 불닭볶음면을 향한 (소비자들의) 사랑을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속설과 연관지어 표현하고자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특정 성향에 대한 비하나 희화화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오랜만에 새로운 CM송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의욕만 앞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진땀을 빼야 했다.
 


롯데푸드도 지난 1월 여성비하 광고 논란에 입길에 올랐다. 롯데푸드는 자사의 제품 돼지바를 홍보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83년생 돼지바 홍보물을 만들었다. 

원작 구절인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를 ‘나보고 관종이래’라고 고치면서 뒷말이 나왔다. 젊은 워킹맘의 힘든 점을 지나치게 희화화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롯데푸드 역시 사과문을 올렸다. 

롯데푸드는 지난 14일 인스타그램에 SNS운영팀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하고 “콘텐츠 제목 부분은 1983년에 출시된 돼지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2017년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는 과정서 적절치 못한 용어가 사용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콘텐츠에 대해 보내주신 염려와 비판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며 “베스트셀러의 패러디라는 요소에 집중한 나머지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요소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두 번은 실수!
세 번은 의도?


여성 고객층이 많은 신세계그룹은 꾸준히 여혐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2016년 이마트는 주꾸미 할인행사를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렸다. 당시 사용했던 홍보문구는 “남편이든 애인이든 그만 들들 볶고 주꾸미를 볶으세요”였다. 

여성을 사람을 귀찮게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불가피했다.

이마트는 사과의 말을 올려야했다. 이마트는 해당 논란에 대해 “잘못된 표현으로 인친분들의 마음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올린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이마트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고 주고객층이 여성인 스타벅스코리아도 여혐논란이 일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매장이용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면서 자사 홈페이지에 포스터를 올려 민폐고객을 표현했는데 민폐고객으로 지목된 손님은 여자였다. 고객들의 반발은 당연지사.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성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향후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훼손된 이미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신세계 제주소주 제품명이 성매매 용어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2월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제주소주는 이후 16.9도의 푸른밤과 20.1도의 푸른밤 두 종류 제품을 출시하면서 ‘짧은 밤’과 ‘긴 밤’으로 별칭했다.

문제는 짧은 밤과 긴 밤이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잇달았다는 점이다. 푸른밤 광고모델로 나선 가수 소유가 “너는 어떤 밤이 좋아?”라고 묻는 광고 카피가 불쾌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급기야 여성단체까지 문제를 지적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7일 논평을 내고 “현실에서는 이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고의든 실수든 소비자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홍보 과정서 사용되는 성적 대상화로 인해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바라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용어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 등 신중한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된장녀 논란서 밥순이 비하까지
나체 연상되는 단어 사용해 눈총

신세계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성매매 은어를 연상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노래 ‘제주도 푸른밤’과 연관 지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GS25시는 ‘된장녀(여성비하 용어)’ 논란이 일었다. 2016년 GS25시는 페이스북에 신제품 스무디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다.

‘왜 안먹었어요? 분노의 스무디’라는 내용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문제는 에피소드  내용 가운데 명품로고가 새겨진 쇼핑팩을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여성고객이 다른 여성고객의 ‘이게 다 뭐야?’라는 질문에 “카드 받았지롱”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된장각’이라고 자막 처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된장각’이 이른바 된장녀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는 GS25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GS25 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여성 비하 의도가 없던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GS25시가 소비자와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치킨전문브랜드 KFC도 여성비하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때는 2015년. 당시 KFC의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사진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됐다.

“자기야∼나 기분전환 겸 빽(가방)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와 그 아래 “음.. 그럼 내 기분은?” 문구를 배치했다. 네티즌들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한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여성혐오 의혹을 제기했다.

KFC는 사과문을 올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광고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문제 발생 직후부터 전직원이 최선을 다해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현재 해당 소재 광고는 모두 철거됐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서 실망을 안겨드린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큰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겠다. 앞으로 더욱 신중한 모습으로 고객분들과 함께 소통하는 KFC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로…
무리한 광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의 홍보는 실적과 직결되는 만큼 톡톡 튀는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무리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민감한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기존의 낡은 사고의 마케팅은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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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