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논란’ 대기업 황당 마케팅 백태

관심에 목말라…여성 성적인 도구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경쟁사보다 조금이라 더 돋보여야 시장서 살아남을 수 있다. 강한 생존본능은 종종 무리한 홍보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여혐 논란도 이 같은 맥락서 나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고개를 숙였다.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가 문제가 됐다. 시계를 지난 9일로 돌려보면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영화 <레슬러> 출연배우 이성경의 사진과 “[단독] 체육관에서_타이트한의상_입은_A씨_유출사진_모음.zip”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튀는 광고물에
예측불허 논란

사진에는 이성경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엎드려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네티즌들은 ‘타이트한 의상을 입은 A씨 유출사진 모음’이 이른바 몰카 사진을 연상케 한다면서 비판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불특정 다수 여성에 대한 성희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홍보사의 과욕이었다.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잘못한 일”이라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전했다.


마케팅 담당자 역시 “저희가 게시한 게시글의 문구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작성했던 문구인데,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무리한 마케팅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배스킨라빈스는 지난달 미투로 운동과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고 조민기와 관련된 내용을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고 조민기는 청주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미투 운동으로 발전했고, 조민기가 자살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아 충격에 휩싸였던 시기였다. 
 

그런데 배스킨라빈스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는 문구를 사용해 입길에 올랐다. 당시 배스킨라빈스는 츄파춥스 파티 미러볼 프로모션을 홍보하면서 SNS에 “내적 댄스 폭발할 때 #너무 많이 흥분 #몹시 위험”이라고 게재했다.

“돋보여야 산다” 과장·자극적 문구
툭하면 여혐 논란…홍보파트 과욕

해당 문구는 조민기가 피해여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과 흡사해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조민기 사건이 연상되면서 성희롱을 당하는 느낌”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배스킨라빈스는 “적절치 못한 단어가 포함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해당 콘텐츠를 문제인지 즉시 삭제했다”며 성난 여론을 잠재우는 모습이었다. 이어 “이번 일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책임을 통감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총체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미투 운동을 희화화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기업은 또 있다. 배달의 민족은 지난달 13일 음식을 주제로 한 ‘배민신춘문예’를 개최했다. 매년 열리는 문예인데 당선된 출품작은 카피 문구로 실제 마케팅에 활용된다. 

배달의 민족 입장에서는 소비자와의 거리감도 좁혀 자사를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눈살 찌푸리는 출품작이 나왔다. 출품작 가운데 미투운동을 희화화 한 작품이 나온 것. “Meat Too” “저도 당했어요” “제 다리를 보더니 침을 삼키면서…” 등 미투 운동을 희화화한 듯한 인상이 드는 출품작이다. 

이들 출품작은 배달의민족 이벤트 웹페이지에 노출되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배달의민족 측은 “배민신춘문예 응모페이지를 이용해 악의적인 내용을 작성, 개인 SNS에 올려 불쾌감을 주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주거나 이벤트 취지에 맞지 않는 시는 발견 즉시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과 후
또 사고

삼양식품 역시 부적절한 광고로 곤혹을 치렀다. 지난달 28일부터 SNS 홍보 계정에 ‘불닭행’이라는 제목의 불닭볶음면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불닭행은 ‘불닭볶음면을 사러 가는 길’ 이라는 뜻과 ‘불닭볶음면을 먹고 행복해짐’을 의미를 담고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광고는 통통한 여성이 잠에서 깨 슈퍼로 가 야식으로 불닭볶음면을 사와 먹는다.
 

이때 “예뻐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숫자가 100%까지 올라가는 모습이 나온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날씬한 여성이 스타킹을 신고 귀걸이를 착용한 뒤 외출을 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성에게 예뻐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요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양식품 측은 해당 광고를 내리고 불닭볶음면을 향한 (소비자들의) 사랑을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속설과 연관지어 표현하고자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특정 성향에 대한 비하나 희화화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오랜만에 새로운 CM송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의욕만 앞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히면서 진땀을 빼야 했다.
 


롯데푸드도 지난 1월 여성비하 광고 논란에 입길에 올랐다. 롯데푸드는 자사의 제품 돼지바를 홍보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한 83년생 돼지바 홍보물을 만들었다. 

원작 구절인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를 ‘나보고 관종이래’라고 고치면서 뒷말이 나왔다. 젊은 워킹맘의 힘든 점을 지나치게 희화화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롯데푸드 역시 사과문을 올렸다. 

롯데푸드는 지난 14일 인스타그램에 SNS운영팀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하고 “콘텐츠 제목 부분은 1983년에 출시된 돼지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2017년 베스트셀러였던 책의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패러디하는 과정서 적절치 못한 용어가 사용됐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콘텐츠에 대해 보내주신 염려와 비판에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며 “베스트셀러의 패러디라는 요소에 집중한 나머지 책의 내용이 담고 있는 요소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두 번은 실수!
세 번은 의도?


여성 고객층이 많은 신세계그룹은 꾸준히 여혐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2016년 이마트는 주꾸미 할인행사를 하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홍보글을 올렸다. 당시 사용했던 홍보문구는 “남편이든 애인이든 그만 들들 볶고 주꾸미를 볶으세요”였다. 

여성을 사람을 귀찮게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불가피했다.

이마트는 사과의 말을 올려야했다. 이마트는 해당 논란에 대해 “잘못된 표현으로 인친분들의 마음 상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생각이 짧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올린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이마트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고 주고객층이 여성인 스타벅스코리아도 여혐논란이 일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매장이용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면서 자사 홈페이지에 포스터를 올려 민폐고객을 표현했는데 민폐고객으로 지목된 손님은 여자였다. 고객들의 반발은 당연지사.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성차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향후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훼손된 이미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신세계 제주소주 제품명이 성매매 용어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6년 12월 이마트는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제주소주는 이후 16.9도의 푸른밤과 20.1도의 푸른밤 두 종류 제품을 출시하면서 ‘짧은 밤’과 ‘긴 밤’으로 별칭했다.

문제는 짧은 밤과 긴 밤이 성매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잇달았다는 점이다. 푸른밤 광고모델로 나선 가수 소유가 “너는 어떤 밤이 좋아?”라고 묻는 광고 카피가 불쾌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급기야 여성단체까지 문제를 지적했다. 

제주여성인권연대는 7일 논평을 내고 “현실에서는 이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인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고의든 실수든 소비자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품 홍보 과정서 사용되는 성적 대상화로 인해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바라보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용어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듬는 등 신중한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된장녀 논란서 밥순이 비하까지
나체 연상되는 단어 사용해 눈총

신세계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성매매 은어를 연상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노래 ‘제주도 푸른밤’과 연관 지어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GS25시는 ‘된장녀(여성비하 용어)’ 논란이 일었다. 2016년 GS25시는 페이스북에 신제품 스무디를 홍보하는 영상을 올렸다.

‘왜 안먹었어요? 분노의 스무디’라는 내용으로 두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문제는 에피소드  내용 가운데 명품로고가 새겨진 쇼핑팩을 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는 여성고객이 다른 여성고객의 ‘이게 다 뭐야?’라는 질문에 “카드 받았지롱”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된장각’이라고 자막 처리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된장각’이 이른바 된장녀를 지칭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는 GS25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GS25 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여성 비하 의도가 없던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GS25시가 소비자와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치킨전문브랜드 KFC도 여성비하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때는 2015년. 당시 KFC의 ‘스모키 와일드 치킨버거’의 버스 정류장 옥외 광고 사진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논란이 됐다.

“자기야∼나 기분전환 겸 빽(가방)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와 그 아래 “음.. 그럼 내 기분은?” 문구를 배치했다. 네티즌들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한테 가방을 사달라고 조르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여성혐오 의혹을 제기했다.

KFC는 사과문을 올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광고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문제 발생 직후부터 전직원이 최선을 다해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현재 해당 소재 광고는 모두 철거됐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로서 실망을 안겨드린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더 큰 도약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겠다. 앞으로 더욱 신중한 모습으로 고객분들과 함께 소통하는 KFC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로…
무리한 광고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의 홍보는 실적과 직결되는 만큼 톡톡 튀는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무리한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민감한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기존의 낡은 사고의 마케팅은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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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