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통보안’ 대통령경호처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16 10:49:47
  • 호수 1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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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경호받는 박근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으로 대통령경호처(이하 경호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경호처는 전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을 경호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일요시사>는 이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을 포함해 독자들이 궁금해할 경호처의 업무들을 추려봤다.
 

경호처는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존 대통령경호실을 개편해 현재의 명칭에 이르렀다. 개편 당시 장관급 실장이 차관급 처장으로 하향 조정되면서 예전보다 힘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호처의 경호업무 대상은 ▲대통령과 그 가족 ▲대통령 당선인과 그 가족 ▲퇴임 후 10년 이내의 전직 대통령과 그 배우자 ▲대통령권한대행과 그 배우자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 원수 또는 행정수반과 그 배우자 ▲그 밖에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국내외 요인 등이다.

2027년까지
박근혜 경호

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2027년 3월9일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경호한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변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한 경호다.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관한 법률’을 보면 탄핵된 대통령이라도 필요한 기간의 경호를 받을 수 있다. 

경호를 계속 지속하는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위해서 경호할 목적보다 전직 대통령이 적성단체·적성국(적으로 간주될 수 있거나 전쟁 법규상 공격·파괴·포획 따위의 가해행위를 할 수 있는 범위에 드는 단체 및 국가)에 납치돼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할 소지를 막기 위해서다. 


또 전직 대통령에게 원한을 품은 국내 민간인이나 단체로부터 암살의 우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경호가 여타 다른 전직 대통령이 받는 경호와 다른 점은 기간이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해 경호처가 퇴임 후 10년에 본인이 원할 시 추가로 5년을 더 경호하도록 하는 ‘10+5’다.
 

그러나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심판 선고일로부터 5년에 추가로 5년이 더해지는 ‘5+5’로 그 기간이 여타 대통령 및 배우자에 비해 5년이 적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일은 2017년 3월10일, 이 때문에 2027년 3월9일까지 경호처서 경호가 이뤄진다.

박 전 대통령 경호에 소요되는 예산은 경호처에 배정된 전체 예산서 집행된다. 경호처 관계자는 “(별도로 예산이 책정된 것이 아닌)전체 예산 중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가 차지하는 부분이 있다. 인원과 장비에 예산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경호기간 연장
박근혜도 해당

현재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된 상태다. 앞서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변은 법원과 교정당국에 넘어가 있는 상태. 그렇다면 경호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경호처 관계자는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순 없다”면서도 “현재 신변 안전에 대해서는 법원과 교정당국서 하고 있어 (경호처가)지속적인 임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변은 교정당국서 맡고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신변안전에 대한 부대업무들이 있다. 이에 대해선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다. 그런 부대업무들을 경호처서 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호 기간에 대해서는 “현행법에 따라 2027년에 (경호가)종료되는 게 맞다. (박 전 대통령이)교정당국에 수용돼있다고 해서 시간을 정지시키는 게 아닌 수용된 날까지 기간에 포함해 법이 정하는 날짜에 정확히 종료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변수는 존재한다. 최근 여야가 뜨거운 공방을 벌였던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 만료일은 2027년 3월9일서 5년이 추가된 2032년 3월9일까지가 된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경호 기간이 모두 5년씩 늘어난다.
 

이 때문에 일부 법학자들 사이에선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경호 기간 문제를 특별법으로 따로 제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모 대학 법학과 교수는 “탄핵된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별법으로 경호 기간 연장을 막거나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다르게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헌법서 말하는 탄핵 소추 요건은 대통령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즉 대통령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탄핵된다. 현행법서 규정하는 대통령 경호 기간보다 교정당국서 보내는 기간이 더 길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탄핵된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현행법의)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 경호처가 아닌 경찰이 탄핵된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맡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탄핵된 대통령도 ‘5+5’ 경호
이희호 경호 연장·박통도 해당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10월20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물론 올해 2월24일로 경호처 경호가 종료되는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업무 기간을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경호 기간이 만료되면 경호업무는 경호처서 경찰로 이관된다.

개정안이 발의될 당시 경호처는 경호기간 연장의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사생활 보호 차원서 경호기관 변경에 따른 불편을 사전에 방지 ▲경찰로 이관시 예산 및 담당기구의 준비, 경호 유관기관과의 협조 등에 애로사항 발생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해당 법률 개정안은 이 여사의 경호가 종료되는 지난 2월24일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바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과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출석을 요구, 국회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가 파행을 맞았기 때문이다. 경호처의 소관 상임위가 바로 운영위다.

김성태 VS 임종석
발목 잡힌 개정안


이 여사 경호 종료일을 하루 앞둔 지난 2월23일, 운영위는 경호 연장을 골자로 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임시회를 열었다. 당시 임시회 현장에는 이상붕 경호처 차장이 참석해 개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운영위원장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돌연 임 비서실장의 출석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김영철 참석에 따른 엄청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관 상임위에서 임 비서실장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국회가 국민들을 위해서 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임 비서실장은 오늘(지난 2월23일) 오후 4시에 운영위에 출석해 주실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그 부분은 위원장으로서 판단한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운영위원들은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간사인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는 “간사 간 합의도 없는데 (위원장)마음대로 하시면 되느냐”고 따졌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 농단을 못하니 상임위 농단을 하고 있다”고 맞섰다. 

회의장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됐다. 참석한 이상붕 경호처 차장은 경호 연장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야만 했다.

한 달여가 지나 해당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운영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서 다시 한 번 발목이 잡혔다. 법사위원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일 경호처에 이희호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당일 입장문을 통해 “이 여사에 대한 경호처의 경호는 지난 2월24일로 종료됐다”며 “경호를 즉시 중단하고 경찰청에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나 경호를 계속할 근거는 될 수 없다”며 “4일까지 이 여사에 대한 경호를 중단하고 결과를 알려달라”고 밝했다. 

그는 “불응할 경우 형법상 직권남용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 고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법학자들 “특별법 제정 필요”
한국당 형평성 지적 “손명순은?”

이에 경호처는 개정안의 국회 부결에 대비해 경찰에 인수인계 절차를 밟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법제처에 이 여사에 대한 경호업무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 여사에 대한 경호 연장 건이 난상토론으로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경호처의 이 여사 경호와 관련해 “국회서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6호에 따라 이 여사를 경호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제4조 1항6호에 따르면 경호처장이 그 밖에 경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국내외 요인이 있으면 경호처서 해당 인물을 경호대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국회가 이 여사 경호 연장과 관련한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경호 연장 건은 문 대통령에 대한 공세로 비화됐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경호처서 웬일로 순순히 이 여사 경호를 경찰로 이관하나 했더니 문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다”며 “지금 정부는 법 해석도 다 대통령이 직접 하나보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 원내대표는 “현행법상 경호처장이 인정하는 국내 요인은 경호처가 경호할 수 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미망인 손명순 여사는 경호처 경호 기간이 끝나 경찰 경호를 받고 있다”며 “손 여사에 대해서는 경호처 경호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경찰이 경호하고 있나”라고 형평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 경호처의 경호 대상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 여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반면 손 여사의 경호는 지난 2010년 개정 전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7년이 지난 2005년 2월 경호처의 전신인 대통령경호실서 경찰청으로 이관됐다.

청와대는 즉각 한국당 측의 형평성 지적에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두 분(이희호 여사, 손명순 여사)간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시기상의 문제”라며 “손 여사는 안 해드리고, 이 여사는 해드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커지는 불씨
양보 없는 여야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이 여사 경호 연장 건에 대해 지속적인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당 일각에선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오는 6·13지방선거서 김대중정권 지지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유권해석까지 해가며 이 여사 경호를 경호처서 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여야의 공방은 향후 개정안이 상정되는 국회 본회의장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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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