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홍준표 전략공천 히든카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4.02 09:48:58
  • 호수 1160호
  • 댓글 0개

더 빨갛게∼ 더 우클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전략공천 바람이 심상치 않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최근 잇따라 인물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인재난을 겪고 있는 한국당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당선확률을 높일 수 있는 전략공천이 상수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전략공천 대상에서 제외된 예비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등 당은 점점 혼돈 속으로 빠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전략공천보다 경선을 암시했던 홍준표 대표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보다 못한 반홍준표계는 행동에 나섰다.
 

한국당 공관위는 최근 경기 수원·고양·용인·성남과 경남 창원 등 인구 100만명 내외의 대도시 5곳을 중점전략특별지역으로 선정하고, 이 지역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자를 전략공천 대상자로 결정했다. 수원시장 후보인 정미경 전 의원, 성남시장에 박정오 전 성남시부시장, 고양시장에 이동환 고양병 당협위원장, 용인시장에 정찬민 현 시장과 창원시장에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가 그들이다.

속속 확정
지역선 부글

앞서 한국당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경기도지사 후보로 남경필 현 지사, 대전시장에 박성효 전 대전시장, 강원도지사에 정창수 전 국토해양부 1차관을 공천하기로 확정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직후 브리핑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지역 주민에 대한 애정, 여타 후보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봤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16일 한국당은 대대적인 광역단체장 전략공천을 단행한 바 있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부산시장 후보로 서병수 현 시장, 인천시장에 유정복 현 시장, 울산시장에 김기현 현 시장, 충북도지사에 박경국 전 안전행정부 차관, 제주도지사에 김방훈 제주도당위원장을 공천하기로 했다.

전 대변인은 직후 브리핑을 통해 “중앙당 공관위가 광역단체장 공천 신청자 31명에 대한 면밀한 서류 심사와 집중 개별면접, 현지 여론 청취 등을 통해 5개 지역의 단수 후보자를 선정했고, 오늘 최고위를 거쳐 의결했다”고 말했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이번 심사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발전시킬 자격이 있는가, 지방을 발전시킬 능력이 있는가, 시장경제를 통해 국민 행복시대를 열 자격이 있는 후보인가를 봤다”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와의 관계도 살펴봤고, 지역 여론까지 수렴해 심사했다”고 강조했다.

보궐선거 후보도 속속 결정되고 있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의 최측근인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을 부산 해운대을 당협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김 원장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부산 해운대을 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전 대변인은 선임 배경에 대해 “부산의 여론을 많이 청취했고, 부산 지역의 현안과 정치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다는 점을 주요하게 봤다”고 전했다. 

김 원장 외에도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충남 천안갑 당협위원장으로, 배현진 전 MBC 앵커를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으로 선정했다. 두 사람은 해당 지역구에서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사실상 ‘전략공천’ 방침에 여타 후보들의 반발이 격화하고 있다.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당이 조진래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전략공천하자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측근들 줄줄이 공천 받아
이탈자 속출…항의 방문도


지난달 29일 안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문을 통해 “창원시장 공천이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시민과 당원의 지지도가 극히 낮은 꼴찌 수준의 당 대표 측근을 공천하려는 사천의 부정공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과정으로 지역 연고도 없고 지지도 꼴찌 수준으로 적임자도 아닌 자에게 공천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창원시민과 창원·경남의 당원의 뜻을 배신하는 것”라이며 저 “역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승복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시장과 홍 대표의 악연은 정치권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0년 한나라당 7·14 전당대회에서 맞붙었으며, 안 시장이 승리한 후에도 최고위원회의서 번번이 신경전을 벌였다. 

이 때문에 지역 정가에선 홍 대표가 안 시장을 배제하기 위해 조 전 부지사를 전략공천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토사구팽’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 한때 홍준표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이종혁 전 최고위원은 부산시장 후보로 서병수 현 시장이 확정되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나섰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마시던 물에 침 뱉지는 않겠다”면서도 “다만 반시대적, 반개혁적 길을 걷다 망한 새누리당의 전철을 답습하는 한국당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친홍만 득시글
반홍 불만 고조

한국당이 서울과 충남, 경남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정함으로써 선거를 준비하던 기존의 예비후보들은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서울시장 공천을 신청한 김정기 전 중국 상하이 총영사는 한국당이 서울시장 공천을 발표하자 “1995년 서울시장 직선제 도입 후 한국당은 그 전신이 되는 당에서부터 자유경선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는데 이를 홍 대표가 짓밟고 있다”며 “원래부터 전략공천 예정이었다면 서울시장 후보는 왜 공모했나. 정치 사기 아닌가”라고 쏘아붙였다.

충남도지사를 준비하던 정용선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은 최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정치 신인을 배제한 채 기존 정치인 중에서 전략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도민과 당원의 참된 민의를 묻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해달라”고 중앙당에 요구했다.

앞서 한국당 당원 20여명도 홍문표 사무처장의 홍성지역 사무실을 찾아 “일방적으로 공천을 강행하면 당원들이 실망해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는 데 따른 후유증은 커질 것”이라며 “한국당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바라는 일반 유권자들의 실망감도 상당할 것”이라고 항의, 정 전 청장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는 당시 한국당이 충남도지사 후보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을 전략공천하기로 가닥을 잡은 데 대한 반발이었다. 앞서 김태흠·성일종·이명수 의원 등 한국당 소속 충남지역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이 전 최고위원의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 정론관서 열기도 했다.


당적을 옮긴 사람도 있다. 충북도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던 신용한 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박경국 전 안전행정부 차관의 전략공천이 사실상 확정되자 일찌감치 한국당을 탈당해 바른미래당으로 옮겼다.
 

홍 대표를 직접 저격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 신청을 한 박종희 전 의원은 공천 면접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면접서 홍 대표가 당의 얼굴이기 때문에 위기라고 말했다”며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탈당 러시
이대로 끝?

당내 반홍계 의원들의 불만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주영·나경원·정우택·유기준 의원 등 한국당 중진 의원 일부는 지난달 29일 간담회를 갖고 홍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지난달 22일 첫 번째 간담회에 이어 재차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반홍계는 최근 홍 대표의 독선을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첫 번째 간담회를 통해 ▲민주적 당 운영 ▲지지율을 높일 획기적 대책 제시 ▲진중한 언행 ▲인재영입 전력투구 등 네 가지 요구사항을 홍 대표에게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은 두 번째 간담회가 끝난 직후 홍 대표에게 앞서 요구했던 4가지 사항 외에 추가로 ▲품격있는 언행 ▲조기 선대위 구성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외부 우파 경제학자 대거 영입 등 당 역량 극대화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주영 의원은 두 번째 간담회 자리서 “(지난달 22일) 홍 대표에게 요구한 사항들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고 비난과 험담만 되돌아올 뿐이라 매우 착잡하다”며 “공천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주요 지역에선 인재영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많은 걱정들이 있고 또 일부 지역에선 홍 대표의 사천이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 대표는 계속 나만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는 지방선거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판단”이라며 “그래서 홍 대표 자신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방선거에 임하는 결연한 각오를 밝혀주길 거듭 촉구한다”고 전했다.

정우택 의원은 홍 대표의 ‘막말’에 대해 “당대표가 이러니(막말을 하니) 당 대변인도 막말을 한다”며 “우리 중진들에게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연탄가스’를 언급하는 것을 보고 당 대표의 품격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게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들어보면 결국 결론적으로 하는 말은 당 대표 입조심 좀 시키라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유기준 의원은 홍 대표가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다시 대표직을 맡아 다음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홍 대표가 전대를 위해 일단 대표직을 내놓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거기다 우리 중진들을 다음 총선 때 험지에 차출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런 의미(다음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것)가 아니겠냐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당 최고위원회 3석이 공석인데 아직도 최고위를 선출하지 않는 게 조기 전대 위한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중진들 “사당화 심각하다”
당내 비판에 철퇴로 응수

나경원 의원은 최근 한국당 윤리위가 김정기 전 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대해 제명을 결정한 일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과연 이게 공당인가 싶다”며 “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선당후사의 마음이어야 될 텐데 선사후당이 된 게 아닌가 싶어 매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전 총영사는 서울시장 후보 공천을 신청했으나 중앙당이 전략공천 방침을 정하자 “정치 사기 아니냐”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홍 대표에 반발한 당원을 ‘해당행위’ 등 이유로 제명한 사례는 김 전 총영사가 세 번째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홍 대표를 ‘후안무치’ ‘배은망덕’ 등으로 비난한 류여해 전 최고위원을 제명했고, 지난 1월 류 전 최고위원에 동조해 당 위신을 해쳤다는 이유로 정준길 전 대변인마저도 제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세 차례의 제명 조치가 홍 대표의 사당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입을 모은다.

“원수지간이라 해도 이길 사람으로 공천하겠다.” 

홍 대표는 지난해 11월 국회 헌정기념관서 열린 한국당 정치대학원 19기 수료식서 지방선거 공천 기준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공천 매뉴얼을 만들고 대폭적인 물갈이 공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공천권자와 개인적 인연을 가지고 공천하면 당이 망한다. 지난 총선 때 ‘진박(진짜 친박근혜)’ 공천을 해서 국민이 얼마나 역겨움을 느꼈나”라고도 말했다.

홍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에선 곧바로 전략공천 확대를 시사했던 홍 대표가 경선에 중점을 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앞서 대구를 방문한 홍 대표는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전부 전략공천으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도 말했었다. 

그간 “야당이 경선을 남발하면 통제가 안 된다”며 전략공천 확대를 강조해온 모습과는 확연히 대조를 보였다. 당시 출마를 저울질 중이던 한국당 내 인사들은 홍 대표의 이 같은 변화를 믿고 지방선거에 뛰어들었다.

확장 위한
거짓이었나?

경선을 암시하는 발언이 나왔던 자리는 정치대학원 수료식이었다. 여기에는 주로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참여했었다. 당시 홍 대표의 발언은 ‘공천을 받고 싶다면 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하라’는 메시지로도 읽히는 셈이다. 

실제 당시 홍 대표의 경선 암시로 일부 출마예정자들은 경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책임당원 확보에 집중하거나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인 바 있다. 결과적으로 홍 대표의 경선 암시는 지방선거 전 당의 세를 확장하기 위한 노림수였던 것으로 읽힌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