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4당 ‘천하이분지계’ 로드맵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12 09:02:40
  • 호수 1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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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대 147’ 용쟁호투 정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의 창당.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통합. 정계개편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질 것 같던 4당 체제가 유지됐다. 캐스팅보터의 증가는 이번 정계개편의 가장 뚜렷한 결과물이다. 이로써 여소야대 정국은 더욱 큰 혼란 속에서 공고해진 모습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캐스팅보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일요시사>는 ‘일도양단’으로 나뉜 정치권이 앞으로 보여줄 모습을 전망해봤다.
 

민평당이 지난 6일 닻을 올렸다. 당 대표로 조배숙 의원, 원내대표에는 장병완 의원이 추대됐다. 김경진·윤영일 의원, 배준현 전 부산시당위원장 등 3명이 당 최고위원, 정인화 의원이 사무총장을 각각 맡았다. 대변인에는 최경환 의원을 임명했다. 

민평당 출항
순항할까?

최고위원 4자리는 향후 합류할 의원을 위해 공석으로 비워뒀다. 최 대변인은 “최고위원 공석 4자리는 추후 영입 인사나 당에 참여할 의원들을 안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평당 조배숙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서 열린 중앙당 창당대회서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국민 앞에 선언한다”며 “민생 제일주의, 햇볕정책 계승 발전, 다당제 제도화,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오늘 여기에서 우리는 민평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표로서 “첫째 빠르게 지방선거 체제로 바꿔 경쟁력 있는 인물을 영입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둘째 당의 지지율 높이며, 셋째 외연확장으로 원내교섭단체(이하 교섭단체)를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선언했다. 

민평당은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15명이던 민평당은 박준영 의원이 지난 8일 대법원 최종 선고로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14명으로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된 박 의원에 대해 징역 2년6개월과 추징금 3억1713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의원은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신민당 전 사무총장 김모씨로부터 공천 헌금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3억5200만원 상당액을 받은 혐의로 1·2심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전남도지사를 지낸 박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반대해 지난 5일 국민의당을 탈당해 민평당에 합류한 상태였다.

박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도 대법원 최종 선고로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국회 재적 의원은 296명서 294명으로 줄게 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석수는 121석,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117석, 바른미래당(국민의당 21석+바른정당 9석, 총 30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대한애국당 1석, 민중당 1석, 무소속 4석이다(이용호 의원 지난 11일 국민의당 탈당).

과반을 넘는 정당이 전무한 상태서 누가 국회 운영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느냐가 큰 관심거리로 부상했다. 이를 전제로 재적 국회의원 294석이 147 대 147로 정확히 양분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범여권의 경우 민주당 121석에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 무소속 2석 등 여권에 우호적인 의석수를 합치면 산술적으로 144석에 그친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내에 있지만, 민평당과 뜻을 같이하는 비례대표 3명(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을 합하면 정확히 147석이 완성된다. 

민평당·정의당 등이 무조건 여권의 편에 선다는 보장은 없지만, 정치적 결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서 현안마다 협치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특히 민평당은 바른미래당에 맞서기 위해 민주당과의 연대를 꾀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김영진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민평당은) 햇볕정책의 존중과 평화, 중도개혁 이상의 개혁적 정당을 추구한다”며 “우리(민주당)와 (민평당은) 이념적 스펙트럼의 공통점이 많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는 향후 협치가 가능한 대상으로 민평당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민주당과 민평당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연대 가능성을 높였다. 민평당 조배숙 대표가 지난 7일 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를 예방했을 때 민주당과 정의당을 방문한 자리서 같은 여성 대표라는 공통점을 화두로 꼽는 등 회동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조 대표에게 “환영한다. 어제 훌륭한 연설처럼 (당을)잘 이끌어달라”며 “차제에 여성 당대표가 뭉치면 못해낼 일이 없다. 앞으로 협치의 중심에 서달라”고 당부했다.

여야 대리전
심해진다!

이에 조 대표는 “문재인정부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는 강하게 비판하고 견제하고, 때로는 개혁과제를 위해 협치하는 야당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겠다”면서도 “여성 3인 당 대표(민주당 추미애, 민평당 조배숙, 정의당 이정미)가 오찬이라도 하면서 심도 있게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조 대표를 만난 자리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대한민국의 온전한 평화를 만드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자”고 요청했고, 조 대표는 “정당 개혁과제에 대한 연대의 기회나 고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민평당은 교섭단체 지위 확보를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 중이다. 교섭단체가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예산안과 주요 쟁점 법안을 논의하는 데 장애가 따른다. 

자당의 핵심 지지층이 있는 지역 예산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주요 이슈서 자당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평당이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안과 민주당 합류 가능성 등이 점쳐진다.

민평당 14석에 정의당 6석을 더하면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필요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공동교섭단체를 구성까지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민평당과 정의당은 정치적 색깔과 노선서 다소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아는 정의당도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평당 출범…민주당 2중대론 격화
정계개편 소용돌이 4당 체제 유지

정치권은 민평당이 6·13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으로 합류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민평당 내부에는 이에 대한 공감 여론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민주당이 합류를 받아 줄지가 변수다. 

문재인정부의 순항을 위해 민평당이 가진 호남 영향력을 가져와야 한다는 민주당 내부 목소리가 있는 반면, 지난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계와 호남 중진 의원들이 ‘친노 패권주의’ 및 ‘반문(반 문재인) 정서’를 외치며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을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맞서는 범야권은 산술적으로 한국당 117석, 바른미래당 30석, 대한애국당 1석, 무소속 2석으로 총 150석이다. 이는 범여권의 147석을 3석 차이로 앞서는 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허수가 존재한다.

출당 문제로 원치 않는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 등 비례대표 3명은 바른미래당 내 몸을 담고 있지만, 마음은 민평당을 향해 있다. 앞서 각 정당 지도부를 예방하던 조배숙 대표는 안철수 대표를 만나 비례대표 의원들을 출당시켜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안 대표는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표는 안 대표와의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민평당 창당 과정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쪽(바른미래당)에 합류할 뜻이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드렸다”고 전한 반면, 안 대표는 기자들에게 “조 대표에게 원칙적인 부분을 말했다. 이미 내가 여러 번에 걸쳐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출당을 불허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방선거 후
민주당 합류

실질적으로 바른미래당 범야권 세력은 30석이 아닌 27석에 가깝다. 이를 대입하면 범야권 또한 147석이 된다. 여야 힘의 균형이 맞춰진 셈이다. 수감 중인 한국당 최경환·이우현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범야권이 145석으로 147석의 범여권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이처럼 정치 지형이 급격하게 요동치면서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사이의 3지대 주도권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당 통합파, 즉 바른미래당 측은 바른정당과 통합을 거쳐 탄생할 (바른)미래당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세력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기자들을 만나 “당은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일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되면 여당에 협조하고, 그렇지 않다면 저희가 대안을 내놓고 대안정당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평당 측은 캐스팅보터는 바로 민평당이라며 강조한다. 

조 대표는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교섭단체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회 의석을 보면 과반 기준은 147석이 된다. 지금 (민평당을 제외한) 범여권 의석이 129석이니 우리 당에서 18석(14석+4석)만 투표를 같이하면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국을 주도할 힘이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캐스팅보터로서의 주도권 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전이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은 서로를 각각 한국당과 민주당의 2중대라고 평가절하한다.

맞춰진 균형, 여야대전 시작
개헌부터 삐끗, 말짱 도루묵?

민평당 창당에 대해 바른미래당 측은 “정부여당 편에서 무조건적인 거수기를 자처하며 민주당 2중대, 도로민주당이 되는 불상사가 없기를 진정 바란다”며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부랴부랴 출범한 민평당이 호남의 멱살을 잡고 호남정치의 전국화를 가로막는 등 호남팔이당이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점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란다”고 힐난했다.

한국당도 “국민의당이 실패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시작은 야당, 끝은 여당.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역할을 한 것”이라며 “많은 국민이 민평당이 민주당의 2중대 역할을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바란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반면 민평당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신당 이름이 ‘미래당’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당명서부터 한국당 2중대를 자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며 “우리 정당사에 ‘미래’가 정당명으로 쓰인 사례는 과거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만든 ‘한국미래연합’이 있다”고 응수했다. 

이어 “이명박정부 당시 한나라당 친박(친 박근혜)계가 탈당해 만든 ‘미래희망연대’도 있었다.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만든 ‘시스템미래당’도 있고, 우익 민족주의 정당인 ‘한반도미래연합’도 있다”며 “그런데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미래가 들어간 당명은 죄다 극우보수의 거룩한 계보를 잇는 한국당 계열”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국민의당-바른정당은 ‘미래당’을 신당 이름으로 결정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으로 해당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재논의를 거쳐 외견상 바른정당의 정체성이 담긴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바른미래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바 있다.

불붙은 전쟁
2중대론 심화

정치권은 바른미래당 대 민평당의 대결 구도가 정치권 전체로 번져 범여권과 범야권의 갈등으로 확장될 것이라 예견한다. 당장 개헌 정국만 봐도 이러한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평당은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며 문재인정부 및 민주당에게 힘을 실어준 반면, 바른미래당은 문 대통령의 정부주도 개헌 언급과 민주당의 4년 중임제 당론을 지적하며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맞붙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준용 의혹 2라운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가 정치권서 제기된 ‘평창미디어아트프로젝트’ 특혜 참여 의혹을 전면 반박했다.

문씨 측은 입장문을 통해 “평창미디어아트프로젝트는 정부나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지원 없이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주최했다”며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바른정당 황유정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논평을 통해 “문씨는 아버지가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고용정보원 직원이 됐고 대통령일 때 평창올림픽 미디어아트 전시회 28인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며 “공정한 심사로 선발됐다고 하지만 객관적 기준보다 개인의 선호가 심사기준이 되는 예술 세계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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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